위대한 식사
-이재무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있고 냉수사발 속으로
아, 새카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 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 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봄 약간의 황사
노량진(鷺梁津)에서 공무원 시험 대비 현대시 강의를 끝내고, 여의도로 향했다. 지척(咫尺)이다. 하지만 가는 길이 녹록하진 않다. 철로와 강변도로가 첩첩(疊疊)이다. 에움길을 택할 수밖에 없고, 대방역 지하 터널을 통해서만 겨우 접근 가능하다.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란 뜻의 ‘노량(鷺梁)’이 무색해진다. 여의도도 마찬가지다. 빌딩과 아파트가 울울(鬱鬱)하니 섬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시인을 만나기로 한 곳은 63빌딩 근처, 내가 사는 대방동과도 지호지간(指呼之間 )이다.
도로변은 벚꽃과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해마다 보게 되는 꽃 터널, 카메라를 챙겨 든 상춘객(賞春客)도 더러 눈에 띈다. 난 인위적으로 조성된 벚꽃길이 그리 내키지 않는다. 선거철 한복을 입고 죽 늘어서 홍보지를 돌리는 아줌마 부대 같아서 싫다. 매연에 찌든 거무튀튀한 밑동을 보면 안쓰럽다. 백로가 노닐던 모래톱을 아스팔트로 덮은 것에 대한 보상인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애먼 벚꽃이 ‘받들어 꽃’을 하고 줄지어 서서 고생이 많다. 말 그대로 홍진(紅塵)에 묻힌 벚꽃이 애처롭다.
이재무 시인.
첫낯이다. 지면(紙面)을 통해 그의 시를 접한 적은 있지만, 열성적인 독자 축에는 끼지 못할 것이다. 내가 게으른 탓이 크지만, 그는 견실한 중견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시와 좋은 시가 늘 일치하는 법이 아니듯, 그가 우리 문단에서 일궈 출가시킨 시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의 시세계가 생각보다 웅숭깊다는 것을 잘 안다. 그의 시는 되바라지지 않고 음전한 여인, 말 수 적고 속 깊은 사내를 연상케 한다. 그를 만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승지(勝地)를 발견했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지인(知人)을 호명하며, 교집합을 확인했다. 꽤나 촌스러운 방식이지만, 서로에 대한 경계를 푸는 데에는 그만한 것도 없다. 시인 오세영, 최두석, 김진경, 평론가 윤여탁(서울대 교수), 송기한(대전대 교수), 방민호(서울대 교수) 등 교집합은 의외로 넓다. 일면식도 없는데, 지인들이 이리 많이 겹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해 온 일이 비슷해서 생긴 일이 아닌가 싶다. 요즘 대학 강의를 나간다고 한다. 한신대 문창과. 한신대라면 내가 첫 대학 강의를 나간 곳이다. 국문과 소속으로 문학과 현대사, 현대시인론 등을 강의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늘 따뜻하게 대해 주시던 유문선 교수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소설가 임철우 교수님이 기억난다. 이래저래 이야기가 잘 풀릴 것 같다. 다행이다.
시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은 궁금한 것이 있어서였다. 그의 시가 EBS 인터넷 수능 운문문학 편에 수록되어 있다. <위대한 식사>라는 작품이다. 특별히 난해한 시구가 등장하는 시는 아니다. 그런데 다소 뜬금없이 ‘태지봉 옆구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교재의 해설에는 이에 대해 언급이 전혀 없다. 혹시 ‘태지붕’을 잘못 쓴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의문은 단숨에 해소되었다. 시인의 고향인 부여에 있는 산봉우리 이름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충남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앞산 이름이다. 지금은 논산 방향으로 길이 놓이면서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곳은 정한모 시인의 생가와도 그리 멀지 않다.
사실 부여는 내게 익숙한 곳이다. 조명암 작사인 <꿈꾸는 백마강>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바로 그곳을 배경으로 한 노래이다. 그런가 하면 시인 신동엽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의자왕의 설화로 유명한 낙화암이 있는 백제의 옛 수도이다.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어, 친숙하다.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여러 도시 중 나중에 가서 살고 싶은 곳으로 내가 첫손으로 꼽았던 곳이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그리고 자연의 숨소리와 고아한 정취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 나는 좋다. 어느 정도 도시의 꼴을 갖추고 있으니, 일상생활에도 크게 불편이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물론 감안한 결과다.
하지만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먹을거리다. 지금도 부여를 떠올리면 침이 고이는 것이 ‘곤드레쌈밥’이다. 잘 모르는 젊은 층에서는 무슨 술안주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겠다. ‘곤드레만드레’라는 말도 있으니까. 물론 아니다. 자세히 설명하긴 그렇고, 일종의 산채나물밥이다. 뭐 호사스러운 별미라고 하긴 그렇고, 빈궁기(貧窮期)에 곤드레밥이라 하여 톳밥처럼 주곡(主穀)의 증대를 목적으로 이용되는 그런 음식이다. 나는 무엇보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곤드레밥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쇠죽 냄새가 나는 듯도 한데,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문할 때마다, 식당을 정할 때, 가벼운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세대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좀 헛헛하긴 하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에 향수(鄕愁)를 느낄까? 혹시 ‘피자헛’의 입맛을 그리워하게 되지나 않을는지, 해서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길들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우리 아이들이 청국장, 매생이굴국, 간제미무침, 갓김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생각해 보면, 고향 친구가 좋은 것은 비슷한 입맛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된장 풀어 삶아 낸 흑돼지 수육 그리고 봄동 배추와 동치미 국물, 그 겨울밤의 배추쌈만 생각하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침이 고인다. 바로 이런 입맛을 공유하는 친구가 진정한 나의 벗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를 두고 좀 거창하게 ‘입맛 공동체’라고 하면 안 될까? 가족(家族)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음식을 도맡는 한 여인의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규정하면 안 될까? 사이비 과학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기질은 기후와 먹을거리가 좌우한다고 나는 믿는다. 따뜻한 날씨에 익숙한 이들은 다혈질이 되고, 차가운 날씨에 익숙한 사람들은 깍쟁이가 된다. 또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한 세대가 조급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요, 발효 음식에 익숙한 세대가 유연(悠然)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식사>가 보여주는 풍경은 어떨까? 신세대라면 공감하기 힘들 것 같지만, 20-30년 전 시골에서 자란 세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먼저 시를 감상해 보자.
위대한 식사
-이재무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있고 냉수사발 속으로
아, 새카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 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 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매캐한 모깃불’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여름 농가의 저녁 식사 풍경이다. 멍석 위에 둥근 밥상을 두고, 식구들이 분주히 숟가락질을 하고 있다. 밥상 차림은 소박하다. 우렁이 된장국, 물김치, 풋고추 그리고 보리밥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家長)은 반주(飯酒)로 막걸리 한 잔 곁들였을 성 싶기도 하다.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가족들 역시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말없이 분주하게 숟가락질을 하는 것이 마치 허청에 널브러진 흙 묻은 연장들을 연상케 한다. 삽으로 흙을 퍼내고, 쇠스랑으로 두엄을 쳐내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밥상을 물리면 그 멍석에서 등걸잠을 잘 것 같다. 그러다가 빗기운이라도 일면, 허둥지둥 안방으로 행랑방으로 엉거주춤 몸을 옮길 것 같기도 하다. 허청에서는 농기구가 흙도 털지 않은 채 잠을 자고, 멍석 위의 식구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등걸잠을 잔다.
사실 이것은 30-40년 전 우리 농가의 익숙한 여름 밤 풍경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궁기(窮氣)가 흐르는 꾀죄죄한 풍경이다. 이 궁기 흐르는 지상의 널브러짐 위에, 천상에서는 별이 빛난다. 그 별은, 겁 없이 우렁된장 속으로 뛰어드는 밤새처럼, 냉수 사발 속으로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처럼, 물김치 속에 되비친다. 물김치 국물에 떠서 번들거리는 비계처럼 얼비친다. 오죽했으면, 김치 국물에 얼비친 별빛을 보며 번들거리는 돼지의 허연 기름 조각을 떠올렸을까? 시인은 까닭 모를 설움이라고 했지만, 어디 세상에 까닭 없는 설움이 있겠는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말해도 알고 말 안 해도 아는 일이니 입에 담지 않을 뿐인 것이지.
그렇다. 궁극적으로 모든 설움의 원인은 가진 것이 적음에서 온다. 이 점에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는 차라리 서럽다. 함포고복(含哺鼓腹)으로 격양가(擊壤歌)를 부를 상황이 아니다. 까닭 없는 설움이 폭식하게 만들고,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는 까닭 모를 설움을 가져온다. 지금이야 이런 경험을 가진 이들이 적지만, 예전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객지의 자취방에서 김치쪼가리 한 접시 놓고, 자장면 그릇에 머슴밥을 먹던 경험이라도 있다면, 쉬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처지가 궁하면 배가 고파도 서럽지만, 배불리 먹어도 서럽다. 주려도 비틀거리고, 배불러도 비틀거리기 때문이다.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대며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달처럼 말이다. 허기진 배를 잔뜩 채웠으니, 조금 어지럽기도 했을 법하다. 그러니 달이 비틀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다.
자, 그러나 시인은 “아, 그 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라고 했다. 향가의 낙구(落句)를 연상시키는 감탄사를 제시한다. 이 낙구가 숨을 고르고, 감정을 집약하기 위한 시적 전략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날의 위대한 식사란다. 제목도 그렇지만, 시인으로선 이제껏 한 이야기는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면 딱 어울릴 소찬(素饌)을 두고 도대체 무엇이 위대하다는 말인가? 실상은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일까? 물론 아니다. 시인은 과거의 풍경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시인은 늘 그런 법이다. 과거를 통해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입맛 공동체, 시인은 이를 식사 공동체라고 했다. 굳이 밥상을 ‘둥근 밥상’으로 한 것도 그 때문이란다. 시인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결여된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다. 그것은 참된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우리가 내놓아야 할 답안과 비슷할 것이다. 이 시를 단순히 개인적인 추억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그게 뭘까? 다음 시구는 그에 대한 답의 일부분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둥글둥글한 돌 하나 꺼내 들여다본다 / 물 속에서는 단색이더니 햇빛에 비추어보니 / 여러 빛 온몸에 두르고 있다 /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 둥글납작한 것이 두루두루 원만한 인상이다 / 젊은 날 나는 이웃의 선의, 반짝이는 것들을 믿지 않았으며 / 모난 상(相)에 정이 더 가서 애착을 부리곤 했다. / 처음부터 둥근 상(像)이 어디 흔턴가 / 각진 성정 다스려온 동안 / 그가 울었을 어둠 속 눈물 헤아려 본다”-이재무 <물 속의 돌> 중에서-
이재무 시인.
그와의 여의도 63빌딩 앞에서의 첫 만남. 나는 시인과 작별을 하고, 잠시 걸어야 하는 결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렸다. 선친께서는 출타하고 돌아오시면, 내게 늘 “밥은 먹었냐?”라고 묻곤 하셨다. 그게 인사였다. 나는 그때 몰랐다. 나는 건성건성 대답할 뿐이었다. 그 인사에 담긴 아버지의 속마음을 몰랐다. 이제 내 나이 마흔, 나도 막내아들에게 묻는다. “밥은 먹었니?”라고. “밥은 먹었니?”라고. 녀석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정신이 없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뭘 먹어 배가 불러도, 밥상머리에 착 달라붙어 멸치 꽁다리라도 받아먹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그립고, 짠물 빨아내고 내 입에 동치미 쪼가리 넣어 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해 긴 여름 저녁, "느그아베오믄"(=너희 아버지 오시면) 같이 먹자시며, 허기진 내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그게 식구(食口)고, 가족(家族)인 것을,
이제야 알다니. 나이 마흔 줄에야.
[참고] 이재무 시인께서 직접 글을 남겨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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