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김성원의 시조에 대한 오해

국어의 시작과 끝 2012. 6. 9. 08:29

 

“지나는 구름이 심히 궂어 밝은 달 가리우니,/한밤중 홀로 앉아 애달픔이 그지없다./바람이 이 뜻을 알아 비를 몰아 오도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간신(奸臣)의 전횡(專橫)을 풍자(諷刺)한 작품으로 오독(誤讀)하기 쉽겠다.

(실제로 이렇게 오독하는 경우가 많다)

 

기록에 따르면 어머니 생신 날 새벽에 날이 흐리자 이 시조를 지었다 한다. 날이 밝으면 어머니의 생신 잔치를 할 참인데 구름이 하는 짓이 얄밉다. 자식으로서 홀로 마음은 애달프다. 이러한 효성을 바람도 알았는지 비를 올아 온다. 바람이 구름을 몰아 비를 뿌리고 지나가니 곧 화창하게 갤 것이므로 그의 걱정도 말끔히 씻겼을 것이다. 요컼대 이 작품은 간신의 전횡을 풍자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날씨 걱정을 하는 아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김성원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서하당과 식영정을 짓고 풍류를 즐길 만큼 유족한 형편이었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채 명사들과 사귀며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효행으로 천거될 만큼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의 작자는 외척(外戚)이기도 한 정철(鄭澈)과 깊이 교유(交遊)했고, 정철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은 김성원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성산별곡>의 “엇던 디날손이 星셩山산의 머믈며셔/棲셔霞하堂당 息식影영亭뎡 主쥬人인아 내 말 듯소/人인生世셰間간의 됴흔 일 하건마/엇디 江강山산을 가디록 나이 녀겨/寂젹寞막 山산中듕의 들고 아니 나시고.”에서 ‘서하당’은 서하(棲霞) 김성원(金成遠)이 지은 정자 이름이고, ‘식영정’은 김성원이 임억령을 위하여 지은 정자 이름이다.

 

 

                  -식영정

 

[참고]

1525(중종 20)∼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

내용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강숙(岡叔), 호는 서하(棲霞). 아버지는 교위(校尉) 홍익(弘翼)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장사랑(將仕郞) 한종(漢宗)의 딸이다.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7세 때 아버지는 잃고 숙부에게 수학하여 1551년(명종 6) 향시(鄕試)에 일등하였으며, 정철(鄭澈)과 특계(特契)를 맺고 『근사록(近思錄)』ㆍ『주역(周易)』 등을 공부하였다. 155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60년 침랑(寢郞)에 임명되었다.

1581년(선조 14)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가관(同福假官) 및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역임하면서 군량과 의병을 모으는데 큰 공을 세웠다. 1596년 조카 김덕령(金德齡)이 무고(巫誥)로 옥사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하고 말았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던 중 성모산(聖母山)에서 왜병을 만나자 부인과 함께 몸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다 살해되었다.

그는 『성리서(性理書)』ㆍ『주역(周易)』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나 시(詩)로서도 이름이 높아 「식영정잡영(息影亭雜詠)」ㆍ「척서도(滌署圖)」 등은 세상에 유행하였다. 저서로는 『서하당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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