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단 춘향과 이도령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넙우시사 성자성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적은 요순시절이요, 의관문물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은 주석지신이요, 용양호위는 간성지장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 향곡(곡)에 패엿시니 사해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잇다. 충신은 만조하고 효자열녀 가가재라. 미재미재라 우순풍조하니 함포고복 백성들은 처처에 격양가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잇스되, 삼남의 명기로서 일직 퇴기하야 성가라 하는 양반을 다리고 세월을 보내되 연장사순에 당하야 일점혈육이 업서 일로 한이 되야 장탄수심에 병이 되것구나. 일일은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가군을 청입하야 여짜오되 공순이 하는 말이,
“전생에 무삼 은혜 찌쳣던지 이생에 부부되야 창기행실 다 바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여공도 심슷건만 무삼 죄가 진중하야 일점혈육 업섯스니 육친무족 우리 신세 선영향화(화) 뉘라 하며 사후감장 어이하리. 명산대찰에 신고이나 하야 남녀간 나커드면 평생한을 풀 것이니 가군의 뜻이 어떠하오.”
성참판하는 말이,
“일생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나흘진대 무자할 사람이 잇스리요.”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대성 공부자도 니구산에 빌으시고, 정나라 정자산은 우성산에 빌어 나계시고, 아동방강산을 이를진댄 명산대천이 업슬손가. 경상도 웅천 주천의는 늙도록 자녀업서 최고봉에 빌엇더니 대명천자 나계시사 대명천지 밝엇스니 우리도 정성이나 듸려보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근 남기 껙길손가.”
이날부텀 목욕재계 졍이하고 명산승지 찾아갈제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서북의 교룡산은 술해방을 막아잇고, 동으로는 장림수풀 깊은 고대 선원사는 은은이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대 그 가온데 료천수는 일대장강벽파되야 동남으로 둘럿스니 별유건곤 여긔로다. 청림을 더우잡고 산수를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여긔로다. 반야봉 올랏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명산대천 완연하다. 상봉에 단을 두어 제물을 진설하고 단하에 복지하야 천신만고 빌엇더니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는 오월오일갑자라. 한꿈을 얻으니 서기 반공하고 오채영롱하더니 일위선녀 청학을 타고 오는듸 머리에 화관이요, 몸에는 채의로다. 월패 소래 쟁쟁하고 손에는 계화일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거수장읍하고 공순이 여짜오대,
“낙포의 딸일너니 번도진상 옥경갓다 광한전에서 적송자 만나 미진정회하올차에 시만함이 죄가 되야 상제 대노하사 진토에 내치시매 갈바를 몰랏더니 두류산신령께서 부인댁으로 지시하기로 왓사오니 어엽비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새, 학지고성은 장경고라, 학의 소래 놀래깨니 남가일몽이다.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야 가군과 몽사를 설화하고 천행으로 남자를 나을까 기다리더니, 과연 그달부텀 태기잇서 십삭이 당하매 일일은 향기만실하고 채운이 영롱하더니 혼미중에 생산하니 옥녀를 나앗나니, 월매의 일구월심 기루던 마음 남자는 못낫스되 적은듯 풀리는구나. 그 사랑함은 엇지 다 형언하리. 일흠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장중보옥같이 길러내니 효행(회)이 무쌍이요, 인자함이 기린이라. 칠팔세되매 서책에 착미하야 예모정절을 일삼으니 효행을 일읍이 칭송 아니할 이 업더라.
이때 삼청동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잇스되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일일은 전하옵께옵서 충효록을 올려보시고 충효자를 자목지관 임용하실새, 이한림으로 과천현감에 금산군수 이배하야 남원부사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 하직하고 치행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선치민정하니 사방에 일이 업고 방곡의 백성들은 더듸옴을 칭송한다. 강구연월문동요라 시화연풍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조흔 삼춘이라. 호연비조 뭇새들은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토는듸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에 황금조는 벗부른다. 나무나무 성림하고 두견접동 낮이 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때 사또자제 이도령이 년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일일은 방자를 불러 말삼하되,
“이곳 경처 어데매냐 시흥춘흥 도도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짜오되,
“공부하시는 도령님이 경처찾어 부질업소.”
이도령 이른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또 절승강산 구경키는 풍월작문 근본이라. 신선도 두로놀아 박람하니 어이하야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강호에 떳다 대강을 거사릴제 광랑성파에 음풍이 노호하야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이 놀랍고 질겁고도 고흔 것이 글 아닌게 업느니라.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 놀아잇고,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 놀아잇고, 심양강 명월야에 백낙천 놀아잇고, 보은속리 운장대에 세종대왕 노셧스니, 아니노든 못하리라.”
제2단 광한루의 결연
이때 방자 도령님 뜻을 받아 사방경개 말쌈하되,
“서울로 이를ㅈ 자문밧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영양 낙선대, 보은속리 문장대, 안의(안으) 수승대(슈성),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엇더한지 몰라와도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핑양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조싸오나, 남원경처 듣조시요. 동문밧 나가오면 장림숲 천은사 조쌉고, 서문밧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조쌉고, 북문밧 나가오면 청천삭출 금부용 기벽하야 우뚝 섯스니 기암둥실 교룡산성 조싸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령님 이른 말쌈,
“이애 말로 듣더래도 광한루 오작교(오작괴)가 경개로다. 구경(귀경)가자.”
도령님 거동 보소. 사또전 들어가서 공순이 여짜오되,
“금일 일기 화란하오니 잠간 나가 풍월음영 시운목도 생각하고자 싶으오니 순성이나 하여이다.”
사또 대희하야 허락하시고 말쌈하시되,
“남주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
“부교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야 나구 안장지어라.”
방자 분부듣고 나구 안장짓는다. 나구 안장지을제 홍영 자공 산호편 옥안 금편 황금늑 청홍사 고운 굴레 주먹상모 덥벅 달아 청청다래 은엽(은입) 등자 호피돋움에 전후거리 줄방울을 염불법사 염주메듯,
“나구 등대하엿소.”
도령님 거동 보소. 옥안선풍 고흔얼골 전판같은 채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와 궁초당기 석황물려 맵시잇게 잡아따코 성천수주 접동배 세백저 상침바지 극상세목 접보선에 남갑사 다님치고, 육사단 접배자 밀화단초 달아입고, 통행건을 무릎 아래 는짓 내고, 영초단 허리띠 모초단 도리낭을 당팔사 가진 매답 고를 내여 는짓 매고, 쌍문초 진동정 중추막에 도포받쳐 흑사띠를 흉중에 눌러 매고, 육분당혜 끄으면서 나구를 붙들어라 등자딋고 선듯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제, 통인하나 뒤를 따라 삼문밧 나올 적에 쇄금부채 호당선으로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성남 넙운길에 생기잇게 나갈제 취래양주하던 두목지의 풍챌넌가 시시오불(요부)하던 주랑(주관)의 고움이라. 향가자백춘성내요 만성견자유불애라.
광한루섭적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장이조타. 적성아침날에 늦인안개 픠어잇고, 녹수에 저문봄은 화류동풍 둘러잇다. 자각단루분조요 벽방금전상영롱은 임고대를 일러잇고, 요헌기구하최외는 광한루를 이름이라. 악양루 고소대와 오초동남수는 동정호로 흘러지고 연지서북에 팽택이 완연한듸, 또 한곳 바래보니 백백 홍홍 난만중에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경개 둘러보니 에구분 반송솔 떡갈닙은 아주 춘풍 못이기어 흐늘흐늘 폭포유수 세내가에 뻥긋뻥긋 낙낙장송 울울하고 녹음방초승화시라. 계수 자단 모란 벽도에 취한 산색 장강료천에 풍등술 잠겨잇고, 또 한곳 바라보니 엇더한 일미인이 봄새 울음 한가지로 오갖 춘정 못이기어 두견화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보며, 함박꽃도 질근꺾어 입에 함숙 물어보고, 옥수나삼 반만걷고 청산유슈 맑은물에 손도싯고 발도싯고 물머금어 양수하며 조약돌 덥석쥐어 버들가지 꾀고리를 희롱하니 타기황앵 이아니냐. 버들입도 주루룩 훑어 물에 훨훨 띄워보고, 백설같은 흰나부 웅봉 자첩은 화수물고 너울너울 춤을춘다. 황금같은 꾀꼬리는 숩숩이 날아든다. 광한진경 조커니와 오작교가 더욱 조타. 방가위지호남에 제일성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데잇나. 이런 승지에 풍월이 업슬소냐.
도령님이 글 두귀를 지엇스되,
“고명오작선이요 광한옥계루라”
“차문천상수직녀요 지흥금일아견우(아거누)라.”
이때 내아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일배주 먹은 후에 통인 방자 물려주고 취흥이 도도하야 답부푸여 입에물고 일저리 거닐제 경처에 흥을 제워 충청도 고마수영 보련암을 일럿슨들 이곳경처 당할소냐. 붉을단 푸릴청 흰백 붉을홍 고몰이고몰이 단청, 유막황앵환우성은 내의 춘흥 도와낸다. 황봉 백접 왕나부는 향기(기)찾는 거동이라. 비거비래춘성래요 영주방장봉래산이 안하에 가차오니, 물은 본이 은하수요 경개는 잠간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항아 업슬소냐.
이때는 삼월이라 일럿스되 오월단오이엇다. 천중지가절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률이 능통하니 천중절을 모를소냐. 추천을 하랴 하고 향단(상단)이 앞세우고 나려올제 난초같이 고훈 머리 두 귀를 눌러 곱게 따아 금봉차를 정제하고 나군을 두룬 허리 미양에 가는버들 심이 업시 듸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걸어 흐늘걸어 가만가만 나올적에 장림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듸 좌르륵 깔린고대 황금같은 꾁고리는 쌍거상래 날아들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 높이매고 추천을 하랴할제, 수화유문 초록장옷 남방사 홋단초매 훨훨벗어 걸어두고, 자주영초 수당혜을 석석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 진솔속것 턱밑에 훨신추고 연숙마 추천줄을 섬섬옥수 넌짓 들어 양수에 갈라잡고, 백릉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구를제, 세류같은 고흔 몸을 ㄷ나저이 노니난듸 뒤단장 옥비내 은행절과 앞치레 볼작시면 밀화장도 옥장도며 광원사 겹저고리 제색고름에 태가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번 굴러 심을 주니 발밑에 가는 띄골 바람조차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우의 나무 입은 몸을 따라따라 흐늘흐늘, 오고갈제 살펴보니 녹음 속에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 백운간에 번갯불이 쐬이는듯 섬지재전홀언후라, 앞우 얼른 하는 양은 가부야운 저제비가 도화일점 떨어질제 차려 하고 쫓이는 듯 뒤로 번듯 하는 양은 광풍에 놀랜호접 짝을 일코 가다가 돌치는듯, 무산선녀 구름타고 양대상에 나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이애 향단아 근디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질한다. 근디줄 붙들어라.”
붙들랴고 무수이 진퇴하며 한창 이리 노닐적에 세냇가 반석상에 옥비내 떨어져 쟁쟁하고, “비내비내”하는 소래 산호채를 들어 옥반을 깨치는 듯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인물 아니로다.
앵자삼춘비거래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질하야 별생각이 다 나것다.
혼자말로 첨어하되,
“오호에 편주타고 범소백을 좇앗스니 서시도 올리 업고, 해성월야에 옥장비가로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리업고, 단봉궐 하직하고 백룡퇴 간 연후에 독의청총하엿스니 왕소군도 올리 업고,
장신궁 짚이 닫고 백두음을 읊어엇스니 반첩호도 올리 업고, 소양궁 아침날에 시측하고 돌아오니 조비연도 올리 업고, 낙포선년가 무산선년가.”
도령님 혼비중천하야 일신이 고단이라. 진실로 미혼지인ㅇ로다.
“통인아.”
“예.”
“저 건네 화류중에 올가가락 히뜩히뜩 얼른얼른 하는 겨 무엇인지 자서이 보와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짜오되,
“다른 무엇이 아니오라, 이골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히로소이다.”
“도령님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이 조타, 훌륭하다.”
통인이 아뢰되,
“제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야 기생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이며 문장을 겸전하야 여염처자와 다름이 업나니다.”
도령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 여짜오되,
“설부화용이 남방에 유명키로 방첨사 군수 현감 관장님네 엄지발가락이 두뼘가옷씩된 양반외입쟁이덜도 무수이 보려하되 장처의 색과 임사의 덕행이며 이두의 문장이며 태사의 화순심과 이비의 정절을 품엇스니 금천하지절색이요, 만고여중군자오니 황공은 말쌈으로 초래하기 오렵네다.”
도령 대소하고,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를 모르는도다. 형산백옥과 여수황금이 님재 각각 잇나니라. 잔말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듣고 춘향초래 건너갈제 맵시잇는 방자연석 서왕모 요지연에 편지전턴 청조같이 이리저리 건네가서,
“여봐라 이애 춘향아.”
부르는 소래 춘향이 깜짝 놀래여,
“무슨 소리를 그따우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노래나냐.”
“이애야 말말아. 일이 낫다.”
“일이라니 무슨 일.”
“사또자에 도령님이 광한루에 오셧다가 너 노는 모양보고 불러오란 령이 낫다.”
춘향이 화를 내여,
“네가 미친 자식일다. 도령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자식 네가 내 말을 종지리새 열씨까듯 하엿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말을 할 리가 업시되, 네가 글체, 내가 글냐. 너 글은 내력을 들어 보아라. 계집아히 행실로 추천을 하량이면 네집 후원 단장 안에 줄을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은근이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머잔하고, 또한 이곳을 논지할진댄 녹음방초승화시라, 방초는 푸럿는듸 앞내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내버들은 유록장 둘러 한가지 늘어지고 또 한가지 늘어지고 또 한가지 펑퍼져 광풍을 제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듸 광한루 구경처에 근듸를 매고 네가 제 외씨같은 두발길로 백운간에 노닐적에 홍상자락이 펄펄 백방사 속것 가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살거리 백운간에 히뜩히뜩, 도령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시제 내가 무삼말을 한단말가. 잔말말고 건네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날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와 함끼 추천하엿스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가 아니여든 여염 사람을 호래착거로 부를 리도 업고 부른대로 갈 리도 업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못 들은배라.”
방자 이면에 복개여 광한루로 돌아와 도령님께 여짜오니, 도령님 그말듣고,
“기특한 사람일다. 언즉시야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러이러하여라.”
방자 전갈모와 춘향에게 건네가니 그새에 제집으로 돌아갓거늘 제집을 찾어가니, 모녀간 마조앉어 점심밥이 방장이라. 방자 들어가니,
“네 웨 또 오나냐.”
“황송타. 도령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알미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한다기로 청하노라. 여가에 있는 처자 불러보기 청문에 고히하나 혐의하나 아지 말고 잠간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도량한 뜻이 연분되랴고 그러한지 홀연이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침음양구에 말안코 앉엇더니, 춘향모 썩나앉아 정신업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전수이 허사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난데업는 청룡 하나 벽도지에 잠겨보이거늘 무슨 조흔 일이 잇슬까 하엿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자제 도령님 일홈이 몽룡이라 하니 꿈몽자 용용자 신통하게 맞치엿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듸 아니갈 수 잇것나냐. 잠간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서야 못이기는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제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 걸음으로, 양지마당에 씨암탁 걸음으로, 백모래밭에 금자래 걸음으로, 월태화용 고운 태도 완보로 건너갈새 흐늘흐늘 월서시 토성습보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제, 도령님 난간에 절반만 비겨서서 완완이 바래보니 춘향이가 건네오는듸 광한루에 가찬지라. 도령님 조와라고 자서이 살펴보니 요용정정하야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이라. 얼골이 조촐하니 청강에 오난 학이 설월에 비침같고, 단순호치반개하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하상 고운 빛은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온듯 취군이 영롱하야 문채는 은하수 물결같다. 연보를 정이 옮겨 천연이 루에 올라 부끄러이 서잇거늘 통인불러,
“앉이라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염용하고 앉는 거동 자서이 살펴보니 백석창파 새빗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래는듯, 별로 단장한일 업시 천연한 국색이라. 옥안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이요, 단순을 반개하니 약수중지연화로다. 신선을 내몰라도 영주에 노던 선녀 남원에 적거하니 월궁에 뫼던 선녀 벗 하나를 일엇구나. 네 얼골 네 태도는 세상인물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를 잠간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의 호걸이요 진세간 귀남자라. 천정이 높앗스니 소년공명 할 것이요, 오악이 조기하니 보국충신 될 것이매, 마음에 흠모하야 아미를 숙이고 염칠단좌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도 불취동성이라 일럿스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흔 몇살이뇨.”
“성은 성가이옵고 년세는 십육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보소.
“허허 그말 반갑도다. 네 년세 들어하니 날과 동갑 이팔이라. 성자를 들어보니 천정일시 분명하다. 이성(이성)지합 조흔 연분 평생 동락 하여보자. 네의 부모 구존하냐.”
“편모하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너냐.”
“육십당년 내의 모친 무남독녀 나 하나요.”
“너도 남우 집 귀한 딸이로다. 천정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낫스니 만년낙을 이뤄보자.”
춘향이 거동보소. 팔자청산 쯩거리며 주순 반개하야 가는 목 게우 열어 옥성으로 여짜오되,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정녀불경 이부절은 옛글에 일럿스니, 도령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번 탁정한 연후에 인하야 버리시면 일편단심 이내 마음 독숙공방 홀로누워 우는 하는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뉘가 길꼬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일 적에 금석뇌약 맺이리라. 네 집이 어디매냐.”
춘향이 여짜오되,
“방자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다려 묻는 일이 허망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짓 들어 가르치는듸,
“저기 저 건네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은 청청한듸 양 어생풍하고, 그 가온대 기화요초난만하야 나무나무 앉인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암상에 구분 솔은 청풍이 건듯 부니 녹이이 굼니는듯, 문 앞우 버들 유사무사양류지요, 들축 죽백 전나무며 그 가온대 행자목은 음양을 좇아 마주서고, 초당문전에 동대초나무 짚운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 넌출 휘휘친친 감겨 단장밖이 우뚝 솟앗는데 송정죽림 두 새이로 은은이 뵈이는게 춘향의 집이니다.”
도령님 이른 말이,
“장원이 정결하고 송죽이 은밀하니 여자절행 가지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짜오되,
“시속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것내다.”
도령님 그말 듣고,
“기특하다. 그럴듯한 일이로다. 오날 밤 퇴령후에 네의 집에 갈것이니 괄세나 부대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것나냐. 잘 가거라 금야에 상봉하자.”
루에 나려 건네가니, 춘향모 마조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령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곰 앉엇다가 가것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집 오시마 허옵네다.”
“글헤 엇지 대답하엿나냐.”
“모른다 하엿지요.”
“잘 하엿다.”
제3단 교정
이때 도령님이 춘향을 애련이 보낸 후에 미망이 둘데업서 책실로 돌아와 만사에 뜻이 업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래 귀에 쟁쟁 고훈 태도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새 방자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엇나냐.’
‘동에서 아구 트나니다.’
도령님 대노하야,
‘이놈 괘씸한 놈 서으로 지난 해가 동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짜오대,
‘일락함지 황혼되고, 월출동령 하옵내다.’
석반이 맛이 업서 전전반측 어이허리. 도령을 기다리라 하고 서책을 보려 할제 책상을 앞우 노코 서책을 상고하는듸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이며 고문진보 통사략과 이백 두시 천자까지 내어노코 글을 읽을 새, 시전이라.
‘관관저구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일으것다.’
대학을 읽을새,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춘향이로다. 그 글도 못읽것다.’
주역을 읽는듸,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코 딱댄ㅋ코 조코 하니라. 그 글도 못읽것다.’
등왕각이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로다. 올타 그 글 되엿다.’
맹자를 읽을새,
‘맹자ㅣ견양혜왕핫니대 왕왈수ㅣ불원천리이래하시니 춘향이 보시려 오시니잇가.’
사서를 읽는듸,
‘태고라 천황씨는 이쑥덕으로 왕하야 세계섭제하시니 무위이화이라 하야 형제 십이인이 각 일만팔천세하다.’
방자ㅣ여짜오되,
‘여보 도령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란 말은 들엇스되 쑥덕으로 왕이란 말은 금시초문이요.’
‘이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 일만팔천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떡을 잘 자셧거니와 시속 선부들은 목떡을 먹것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을 생각하사 명륜당에 현몽하고 시속선부들은 이가 부족하야 목떡을 못먹기로 물신물신한 쑥떡으로 치라 하야 삼백육십주 향교에 통문하고 쑥떡으로 고쳣나니라.’
방자가 듣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날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래실 거짓 말도 듣것소.’
또 적벽부를 들여 노코,
‘임술지추칠월기망에 소자여객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할새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이라. 아서라. 그 글도 못읽것다.’
천자를 읽을새,
‘하날천 따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령님 점잖이 천자는 웬 일이요.’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싯변 주흥사가 하로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히엿기로 책 일홈을 백수문이라 낱낱이 새겨보면 빼똥 쌀일이 만하지야.’
‘소인놈도 천자속을 아옵내다.’
‘네가 알드란 말이야.’
‘알기를 일르것소.’
‘안다하니 읽어바라.’
‘예, 들으시오. 높고높운 하날천, 짚고짚운 따지, 홰홰친친 가물현 불타젓다 누루황.’
‘예이놈 상놈은 적슬하다. 이놈 어데서 장타령하는 놈의 말을 들엇구나. 내 읽을게 들어라. 천개자시생천하니 태극이 광대 하날천, 지벽어축시하니 오행팔괘로 따지, 삼십삼천공복공에 인심지시 가물현, 이십팔수 금목수화토지정색 누루황, 우주일월중화하니 옥자재영 집자, 연대국도흥망성쇠 왕고래슴에 집주, 우치홍수 기자초에 홍범구주 넓을홍, 삼황오제 붕하신 후 난신 적자 거칠황, 동방장차 계명키로 杲고천변일륜홍 번듯솟아 날일, 억조창생 격양가에 강구연월에 달월, 한시미월 시시불어 삼오일야 밝은달 기망부터 찰영,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달 기망부터 기울측, 이십팔숙 하도낙서 버린법 일월성신 별진, 가련금야숙창가라 원앙금침에 잘숙, 절대가인 조흔풍류 나열춘추에 버릴열, 의의월색야삼경에 만단정회 베풀장, 금일한풍소소래하니 침실에 들거라 찰한,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여라 이마만큼 오너라 올래, 에 후리쳐 질끈 안고 임각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서, 침실이 덥거든 음풍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왕, 불한불열 어느때냐 낙엽오동에 가을추,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를 거둘수, 낙목한천 찬바람 백발강산에 저으동,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귀중)심처에 갈물장, 부용작야 세우중에 광윤유태 부루규,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 백년기약 짚운 맹서 만경창파 이룰성, 이리저리 노닐적에 부지세월 햇세, 조강지처 불하당 안해 박대 못하나니 대전통편 법중율, 군자호구ㅣ 이 아니야 춘향입 내입을 한듸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여자 이 아니야. 애고애고 보고지고.’
소래를 크게 질러노니 이때 사또 저녁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징이 나계옵서 평상에 취침하시다 ‘애고 보고지고’ 소래에 깜짝 놀래여,
‘이로너라.’
‘예.’
‘책방에서 뉘가 생침을 맞너냐 신다리를 주물럿너냐 알아 들여라.’
통인 들어가,
‘도령님 웬 복통이요. 고함소래에 사또 놀래시사 엄문하라 하옵시니 엇지 아뢰잇가.’
도령님 대노하야,
‘이대로 여짜와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차호라 오도의 구의라 몽불견주공 애탄 대문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치로 소래가 높앗스니, 그대로 여짜와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짜오니, 사또 도령님 승벽잇슴을 크게 깃거하야,
‘이리오너라. 책방에 가 목랑청을 가만이 오시래라.’
랑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엇지 고리게 생겻던지 만지 걸음 속한지 근심이 담쑥 들엇던 것이엿다.
‘사또 그새 심심하시요.’
‘아 게 앉소, 할말 잇네. 우리 피차 고우로서 동문수업하여건과 아시에 글읽기같이 실은 것이 업건마는 우리아 시흥보니 어이 아니 길걸손가.’
이 양반은 지간불지간에 대답하것다.
‘아힛때 글읽기같이 실은게 어데 잇스리요.’
‘읽기가 실으면 잠도 오고 꾀가 무수하제. 이 아히는 글 읽기를 시작하면 읽고 쓰고 불철주야하제.’
‘예 그럽디다.’
‘배운배 업서도 필재절등하제.’
‘그러치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추석같고, 한일을 끄어노면 천리진운이요. 갓머리는 작두첨이요. 필법논지하면 풍랑뇌전이요. 내리 그어채는 획은 노송도괘어절벽이라. 창과로 이를진댄 마른 등넌출같이 뻗어갓다 도로 채는듸는 성낸 손우끝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올려도 획은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이 보면 획은 획대로 되옵듸다.’
‘글씨 듣게. 저 아히 아홉살 먹엇슬제 서울집 뜰에 늙은 매화 잇는고로 매화을 두고 글을 지으라 하엿더니, 잠시 지엇스되 정성드린 것과 용사비등하니, 일람요기라 묘당에 당당한 명사될 것이니, 남명이 북고하고 부춘추어 일수허엿네.’
‘장차 정승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야라고,
‘정승이야 엇지 바래것나마는 내 생전에 급제는 쉬 하리만은 급제만 쉽게 하면 출육이야 베면이 지냇거나.’
이때 이도령은 퇴령 노키를 지다릴제,
‘방자야.’
‘예.’
‘퇴령 노왓나 보와라.’
‘아직 아니 노왓소.’
조금 잇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소래 질게 나니,
‘조타조타, 올타올타. 방자야 등롱에 불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네갈제 재초업시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에 불비친다. 등롱을 옆우 쩌라.’
삼문 밧 썩 나서서 협로지간에 월색이 영롱하고 화간 푸린버들 몇 번이나 꺾어시며, 투계(투기)소년 아히들은 야입청루 하얏스니 지체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가련금야료적한듸 가기물색 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자는 도원길을 모르던가. 춘향문전 당도하니 입적심야한듸 월색은 삼경이라. 어약은 출몰하고 대접같은 금부어는 님을 보고 반기는듯, 월하에 두루미는 흥을 게워 짝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 비겨안고 남풍시를 희롱타가 침석에 조우더니 방자 안으로 들어가 개가 짖일까 염려하야 재초업시 가만가만 춘향방 영창 밑에 가만이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들엇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네 엇지 오냐.’
‘도령님이 와겨시다.’
춘향이가 이말 듣고 가삼이 월렁월렁 속이 답답하야 부끄럼을 못이기어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넨방 건네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무니 무슨 잠을 이대지 짚이 지무시요.’
춘향의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뉘가 무엇 달래엿소.’
‘그러면 엇지 불럿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령님이 방자를 모시고 오셧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뉘가 와야.’
방자 대답하되,
‘사또자제 도령님이 와겨시요.’
춘향의 모 그말 듣고,
‘향단아.’
‘예.’
‘ 뒤 초당에 좌석 등촉 신식하여 보전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듸 세상사람이 다 춘향모를 일칼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만이 하는고로 춘향같은 딸을 나엇구나. 춘향모 나오는듸 거동를 살펴보니 반백이 넘엇는듸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표표정정하고 기부가 풍영하야 복이 만한지라.
숫시럽고 점잔하게 발막을 끌어 나오는듸,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 온다.
이때 도령님이 배회면고하야 무료이 서 잇슬제 방자나와 여짜오되,
‘저기 오는게 춘향의 모로소이다.’
춘향의 모 나오더니 공수하고 우뚝 서며,
‘그새에 도령님 문안이 엇더하오.’
도령님 반 웃고,
‘춘향의 모라제 평안한가.’
‘예 게우 지내옵내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하오이다.’
‘글헐 리가 잇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야 대문 중문 다 지내여 후원을 돌아가니 반구한 별초당에 등롱을 밝혓는듸,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 구실발이 갈공이에 걸린 듯 하고 우편에 벽오동은 맑은 이실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는 듯, 우편에 섯는 반송 광풍이 건 듯 불면 노룡이 굽니는 듯, 창전에 심운 파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닙이 빼여나고 수심여주 어린 연꽃 물박기 게우 떠서 옥로를 받쳐잇고, 대접같은 금부어는 어변성룡 하랴 하고 때때마닥 물결쳐서 출렁툼벙 굼실 널때마닥 조룡하고, 새로 나는 연닢은 받을 떠기 벌어지고, 금년상봉 석가산은 층층이 싸엿는듸, 계하의 학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여 두 쭉지를 떡 벌이고 진다리로 징검징검 낄룩뚜루룩 소래하며, 계화 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 중에 반가올사 못가온대 학오리는 손님오시노라 중덩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달으니 그제야 저의 모친 령을 듸듸여서 사창을 반개하고 나오는듸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일륜명월 구름밖이 솟앗는듸 황홀한 저 모양은 측량키 어렵도다. 부끄러이 당에 나려 천연이 섯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녹인다. 도령님 반만 웃고 춘향다려 묻는 말이,
‘곤치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엇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지 못허고 묵묵히 서 잇거늘 춘향의 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령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다를 들어 권하고 담부붙여 올리오니 도령님이 받아 물고 앉으실제 도령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잇서 와겨시제 춘향의 세간기물 귀경온배 아니로되, 도령님 첫외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잇실 듯하더니 들어가 앉고보니 별로이 할 말이 업고 공연의 천촉기가 잇서 오한증이 들면서 아모리 생각하되 별로 할 말이 업는지라. 방중을 둘러보며 벽상을 살펴보니 여간 기물 노얏는대 용장봉장 객게수리 이렁저렁 버렷는듸 무슨 기림장도 붙여잇고 기림도 붙엿스되 서방업는 춘향이요 학하는 계집아히가 세간기물과 기림이 웨 잇슬고마는, 춘향의 모가 유명한 명기라, 그 딸을 주랴고 장만한 것이엿다. 조선에 유명한 명필글씨 붙여잇고 그 새이에 붙인명화 다 후리쳐 던져두고 월선도란 기림 붙엿스되 월선도 제목이 이러턴 것이엿다. 상제고거강절조에 군신조회 받던 기림, 청련거사이태백이 황학전 꿀어앉어 황정경 읽던 기림, 백옥루 지은 후에 자기불러올려 상량문 짓는 기림, 칠월칠석오작교에 견우직녀 만나는 기림, 광한전 월명야에 도락하던 항아 기림, 칭칭이 붙엿시되 광채가 찬란하야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곳 바래보니 부춘산 엄자릉은 간의태후 마다 하고 백구로 벗을 삼고 원학으로 이웃삼아 양구를 떨쳐 입고 추동강칠리난에 낙수줄 던진 경을 역력히 기려 잇다. 방가위지선경이라 군자호구 놀래로다. 춘향이 ㅇ리편단심일부종사하려 하고 글 한 수를 지여 책상 우에 붙엿스되,
‘대운춘풍죽이요, 분향야독서라.’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목란의 절이로다. 이러텃 치하할제, 춘향의 모 여짜오되,
‘귀중하신 도령님이 이 누지에 욕림하시니 황공감격하옵내다.’
도령님 그말 한마듸에 말궁기가 열리엿제,
‘그럴 리가 웨 잇는가. 우연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간 보고 연연이 보내기로 탐화봉접 취한 마음, 오날 밤에 오는 뜻은 춘향의 모 보러 왓거니와, 자네 딸 춘향과 백년언약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엇더한가.’
춘향의 모 여짜오되,
‘말쌈은 황송하오나 들어 보오. 자핫골 성참판영감이 보후로 남원에 좌정하엿실 때 소리기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의 령을 못 이기여 모신 지 삼삭만에 올라가신 후로 뜻밖에 포태하야 나은 게 저것이라. 그 연유로 고목하니 젖줄 떨어지면 다려갈란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야 세상을 바리시니 보내들 못하옵고 저것을 질러낼제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만코 칠세에 소학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잇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이요,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을 하리요, 사서인 상하불급 혼인이 늦어가매 주야로 걱정이나 도령님 말쌈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 한단 말쌈이오나 그런 말씀 마르시고 놀으시다 가옵소서.(이말이 참말이 아니라 도령님이 춘향을 얻는다 하니 래두사를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엿다.)’
이도령 기가 맥혀,
‘호사에 다마로세. 춘향도 미혼전이라 피차언약이 이러하고, 육례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리가 잇나.’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에 하엿스되 지신은 막여주요 지자는 막여부라 하니 지여는 모가 아닌가. 내 딸 심곡 내가 알제, 어려부텀 절곡한 뜻이 잇서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일부종사 하려 하고 사사이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녹죽 전나무 사시절을 다토는 듯 상전벽해 될지라도 내 딸 마음이 변할손가. 금은 오촉지백이 적여구산이라도 받지 아니할 터이요, 백옥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고어를 효칙고자 할 뿐이온듸, 도령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앗다가 소문어려 버려시면 옥결같은 내 딸 신세 문채조흔 대모 진주 고운 구실 구녁노리 깨야진 듯, 청강에 노든 원앙조가 짝 하나를 일엇슨들 어이 내 딸 같을손가. 도령님 래정 이 말과 같을진대 심량하여 행하소서.’
도령님 더욱 답답하야,
‘그는 두 번 염려할라 말소. 내 마음 세아리니 특별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는 다를망정 제와 내와 평생기약 맺일제 존안납폐 아니한들 창파같이 짚운 마음 춘향 사정 모를손가.’
이러타시 이같이 설화하니 청실 홍실 육례가촤 만난대도 이 우에 더 빼쪽할까.
‘내 저를 초파같이 예길터니 시하라고 염려말고 미장전도 염려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박대행실 잇슬손가. 허락만 허여 주소.’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이으키 앉엇더니 몽조가 잇는지라, 연분인줄 짐작하고 흔연이 허락하며,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이 나매 용마가 나고, 남원에 춘향나매 이화춘풍 꽃다웁다. 향단아, 주반등대하엿나냐.’
‘예.’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적에 안주등물 볼작시면 고음새도 정결하고, 대양관 가리찜, 소양관 저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초리탕에 동래부산 대전복, 대모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섭체로 어슥비슥 오려노코, 염통산적 양복기와 춘치자명생치다리, 적벽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 노코, 생율, 숙율, 잣숭이며, 호도, 대조, 석류, 유자, 준시, 앵도, 탕기같은 청슬이를 칫수잇게 고얏는듸, 술병치레 볼작시면 틔결업는 백옥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엽락오동 금정병과, 목진 황새병, 자래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온대 철은 일안자 적동자 쇄금자를 차례로 노왓는듸 구비함도 가질시고, 술일홈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림처사 송엽주와,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온대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여 알안자 가득 부어 청동 화로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끌는 가온대 알안자 둘러, 불한불열 데여 내여, 금잔 옥반 앵무배를 그 가온대 듸엿스니 옥경연화 피는 꼿이 태을선녀 연엽주 띄듯, 대광보국영의정 파초선 띄듯 둥덩실 띄여노코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일배부일배라. 이도령 이른 말이,
‘금야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니어던 어이 그리 구비한가.’
춘향모 여짜오되,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군자호구가리여서 금슬지우 평샹동락하올 적이,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문장들과 죽마지우 벗님내 주야로 질기실제, 내실에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제 보고 배호지 못하고는 어이 곧 등대하리. 내자가 불민하면 가장낯을 깩기미라. 내 생전 심써 갈쳐 아모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 모와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랴고 일시 한때 노지 안코 시긴 바라. 부족다 마르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요.’
앵무배 술 가득 부어 도령님게 드리오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할진대는 육례를 행할터나, 그러털 못하고 개구녁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 술로 알고 묵자.’
이배주 부어들고,
‘네 내말 들어서라. 첫째잔은 인사주요, 둘째잔은 합환주라. 이 술이 다른 술 아니라 근원근본 삼우리라. 대순의 아황 여영 귀히귀히 만난 연분 지중타 하엿스되 월로(원노)의 우리 연분 삼생가약 맺인 연분, 천만년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대육경자손이 만이 번성하야 손자 증손 고손이며 무릎 우에 앉혀 노코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세상수하다가서 한날 한시 마조누워 선후업시 즉거드면 천하에 제일가는 연분이네.’
술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부어 너의 너의 마무래게 드러라.’
‘장모 경사술이니 한잔 먹소.’
춘향의 모 술잔 들고 일희일비 하는 말이,
‘오날이 여식의 백년지고락을 맽기는 날이라. 무삼 실품이 잇슬잇까 마는 저것을 질너낼제 애비업시 설이질러 이 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야 비창하여이다.’
도령님 이른 말이,
‘이왕지사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모 수삼배 먹은 후에, 도령님 통인불러 상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물여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히고, 춘향의 모 향단이 불러 자리 보전 시길제 원앙금침 잣베개와 샛별같은 요광 대양 자리 보전을 정이 하고,
‘도령님 평안이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끼 자자.’
둘이 다 건네갓구나.
춘향과 도령님과 마조 앉어 노왓스니 그 일이 엇지 되것나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 봉학앉아 춤추는듯 두활개를 예구부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드드시 검쳐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듸, 두 손길 석 노터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숙 안고,
‘나상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제 이리 곰슬 저리 곰실, 녹수에 홍련화 마풍 만나 굼니는듯, 도령님 초매 벗겨 제쳐 노코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힐난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시 동해청룡이 구부를 치는 듯,
‘아이고 노와요. 좀 노와요.’
‘애라 안될 말이로다.’
힐난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찌여안고 진드시 누르며 지지개 쓰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백팔십자중략) 그 가온대 진진한 일이야 오직하랴. 하로 이틀 지내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와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도 허고 웃은 말도 잇서 자연 사랑가가 되얏구나.
사랑으로 노난듸 똑 이 모양으로 노던 것이엿다.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 월하초에 무산같이 높운 사랑,
목단 무변수에 여천 창해같이 짚운 사랑,
오산전 달밝은듸 추산천봉 완월사랑,
증경학무 하올적 차문취소 하던 사랑,
유유낙일 월영간에 도리화개 비친 사랑,
섬섬초월 분백한듸 함소함태 숫한 사랑,
월하의 삼생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 업는 부부사랑,
화우동산 목단화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대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직녀 직백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미녀 금침같이 혼술마닥 감친 사랑,
세냇가 수양같이 청처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싸인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로 봄바람에 넘노는 이 황봉백접 꼿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조 둥실 떠노는 사랑,
娟娟 칠월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 초패왕이 우미인을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황이 양귀비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이 고운 사랑,
네가 모도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파자 한들 팔 곳이 어듸 잇서,
생전 사랑 이러하고, 엇지 사후기약 업슬소냐.’
‘너는 죽어 될 것 잇다.
너는 죽어 글자되되 따지자, 그늘음자, 아내처자, 계집여자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되되, 하날천자, 하날건자, 졔애비부, 사내남, 아들자 몸이 되야,
계집녀 변에다 딱 붙이면, 조흘호자로 만나 보자.
사랑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잇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파수, 청계수, 옥계수, 일대장강 더져두고,
칠년태한 가물제도 일생진진 처져 잇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조로 될나 말고,
요지일월, 청조, 청학, 백학이며, 대붕조 그런 새가 될나 말고,
쌍거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야,
녹수에 원앙격으로 어화 둥둥 떠놀거든, 날인 줄을 알려무나.
사랑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 아니 될나요.’
‘그러면 너 죽어 경주 인경도 될나 말고,
전주 인경도 될나 말고,
송도 인경도 될나 말고,
장안종로 인경되고,
나는 죽어 인경마치 되야,
삼십삼천 이십팔숙을 응하야,
질마재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듸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닥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 소리로만 알어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뎅 도령님뎅이라 만나 보자구나.
사랑사랑 내 간간 내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실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이 잇다.
너는 죽어 방아확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애고자 되야,
경신년경신월경신일경신시에
강태공 조작방애 그저 떨꾸덩 떨꾸덩 찌커들랑
날인 줄 알려무나
사랑사랑 내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실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이하백육십육자 중략)
'그러면 너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부되야
나는 네 꼿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이 건 듯 불거던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제.’
‘이리 보와도 내 사랑,
저리 보와도 내 사랑,
이 모다 내 사랑 같으면 사랑걸려 살 수 잇나.
어허 둥둥 내 사랑 내에삐 내 사랑이야.
빵긋빵긋 웃는 것은
화중왕 목단화가 하롯밤 세우 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와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그러면 엇저잔 말이냐. 너와 나와 유정하니 정자로 놀아보자. 음상동하야 정자노래나 불러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러서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장강수에 유유원객정.
하교에 불상송 강수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한태조 희우정, 삼대육경 백관조정, 도장청정, 각씨친정, 친고통정, 난세평정, 우리 둘이 천년인정,
월명성희 소상동정,
세상만물 조화정, 근심걱정, 소지원정, 주워인정,
음식투정, 복업는 저방정, 송정, 관정, 내정, 외정
애송정, 천양정, 양귀비 침향정,
이비의 소상정, 한송정, 백화만발 호춘정, 기린토월 백운정,
너와 나와 만난 정, 일정실정 논지하면
너 마음은 원형리정, 네 마음은 일편탁정,
이같이 다정타가 만일 즉 파정하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하잔 그 정자로다.’
춘향이 조와라고 하는 말이,
‘정속으로 도저하오, 우리 집 재수잇게 안택경(안경)이나 좀 읽어주오.’
도령님 허허 웃고,
‘그 뿐인 줄 아느냐. 또 잇지야. 궁자 노래를 블어 보아라.’
‘애고 얄굿고 우숩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요.’
‘네 들어보아라, 조흔 말이 만흐니라.’
‘좁운천지개태궁, 뇌성벽력풍우속에 서기삼광 풀어잇는 엄장하다 창합궁,
성덕이 너부시사 졸미이 어인일고, 주지객 운성하던 은왕의 대정궁 진시황 아방궁,
문천하득할실적이 한태조 함양궁,
그저듸 장락궁, 반첩여의 장신궁, 당명황제 상춘궁,
이리올라 이궁, 저리올라서 별궁,
용궁 속에 수정궁, 월궁 속에 광한궁,
너와 나와 궁합하니 한평생 무궁이다.(이하사십자 략)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마르시오.’
‘그게 잡담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어붐질이나 하여 보자.’
‘애고, 참, 잡성시러워라, 업무질을 엇더케 하여요.’
어붐질 여러번 한성 부르게 말하엿던 것이엇다.
‘어붐질 천하 쉽니다.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어붐질이제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겟소.’(이하백사십구자 략)
도령님 춘향옷을 벗기려 할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노코 이는 업서 먹던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룬는듯, 북해흑룡이 여의주를 입에다 물고 채운간에 늠노는듯, 단산봉황이 죽실물고 오동 속에 늠노는듯, 구고(구구)청학이 난초를 물고서 고송간에 늠노는듯,(백팔자 략)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엇슬제 도령님 답답하여 가만이 살펴보니 얼골이 복짐하야 구실땀이 송실송실 앉엇구나.
‘이애 춘향아 이리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배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취기시며,
‘업다 그 계집아히 똥집 장이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인게 마음이 엇더하냐?’
‘한끗나게 좃소이다.’
‘조냐.’
‘조와요.’
‘나도 조타. 조흔말을 할 것이니 네가 대답만 하여라.’
‘말쌈 대답하올터이니 하여 보옵소서.’
‘네가 금이지야.’
‘금이라니 당치 안소. 팔년풍진 초한시절에 육출기계 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우랴고 황금사만을 헛텃으니 금이 어이 남울릿까.’
‘그러면 진옥이냐.’
‘옥이라니 당치 안소. 만고영웅 진시황이 형산에 옥을 얻어 이사의 명필로 ‘수명우천기수영창’이라 옥새를 만들어서 만세유전을 하엿스니 옥이 어이 되오릿가.’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안소. 명사십리 아니여든 해당화가 되오릿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밀화 金玻(금) 호박 진주(준쥬)냐.’
‘아니 그것도 당치 안소. 삼대육경 대신재상 팔도방백 수령님네 갓끈 풍잠 다하고서 남운 것은 경향의 일등명기 지환벌 허다이 다만드니, 호박 진주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대모 산호냐.’
‘아니 그것도 내 아니요. 대모간 큰 병풍 산호로 난간하야 광해왕 상량문에 수궁보물 되얏으니 대모산호가 부당이요.’
‘네가 그러면 반달이라니 당치 안소. 금야초생 아니여든 벽공에 돋은 명월 내가 엇지 기오릿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호려먹는 불여수냐. 너 어마니 너를 나서 곱도곱게 질러내여 날만 호려먹으랴고 생겻느냐.
사랑사랑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라냐. 생율 숙율을 먹으랴느냐, 둥굴둥굴 수박 웃봉지 대모장도드는 칼로 뚝떼고 강릉 백청을 두루 부어 은수제 반간지로 붉은 점 한점을 먹으랴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실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시금 털털 개살구를 먹으랴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실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냐. 돝 잡아주랴 개 잡아주랴, 내 몸통차 먹으랴느냐.’
‘여보 도령님, 내가 사람 잡아먹는 것보왓소.’
‘예라 요것 안될 말이로다. 어화 둥둥 내 사랑.’
‘이제 이애 그만 내리려무나. 백사만사가 다 품아시가 잇나니라. 내가 너를 업엇스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령님은 기운이 세여서 나를 업엇거니와, 나는 기운이 업서 못 업것소.’
‘업는 수가 잇나니라. 나를 도두 업울나 말고 발이 땅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자진듯하게 업어 다고.’
도령님을 업고 툭 추워노니 대중이 틀렷구나.
‘애고 잡성시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내가 네 등에 업혀 노니, 마음이 엇더하냐. 나도 너를 업고, 조흔 말을 하엿시니 너도 나를 업고 조흔 말을 하여야제.’
‘조흔 말을 하오리다. 들으시요.’
‘부여리를 업운듯,
여생이를 업운듯,
흉중대락 품엇스니 명만일국 대신되야,
주석지신 보국충신 모도 세야리니,
사육신을 업운듯 생육신을 업운듯,
일선생 월선생 고운선생 업운듯,
재봉을 업운듯, 요동백을 업운듯,
정송강을 업운듯, 충무공을 업운듯,
우암 퇴계 사계 명재를 업운듯,
내 서방이제 내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
진사급제 대바쳐 직부주서 한림학사 이러탓이 된 연후에,
부승지 좌승지 도승지로 당상하야,
팔도방백 지낸후, 내직으로 각신대교복상(각신괴복상) 대제학 대사성 판서 좌상 우상 영상 규장각하신 후에,
내삼천 외팔백 주석지신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이제.’
(제손조 농집나게 문질럿구나.)
‘춘향아 우리 말노림이나 좀 하여 보자.’
‘애고 우수워라, 말노림이 무엇이요.’
‘(말노림 만이 하여본성 부르게) 천하쉽지야.(팔자 략) 너는 온 빙바닥을 기어다녀라. 나는 네 허리를 잔뜩 찌고 볼기짝을 내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이리’ 하거든 ‘흐흥’ 그려 퇴금질로 물러시며 띠여라. 알심잇게 뛰거드면 탈승자 노래가 잇나니라.’
‘타고 노자, 타고 노자.
헌원씨 십용한과 능작대무치무 탁녹야에 사로잡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지남차를 높이 타고,
하우씨 구년치수 다사릴제 육행승차 높이 타고,
적송자 구름타고, 여동빈 백로타고,
이적선 고래타고, 맹호연 나구타고,
태을선인 학을 타고, 중국천자 쾨코리타고,
우리 전하는 연을 타고, 삼정승은 평교자를 타고,
육판서는 초헌타고, 훈련대장은 수레타고,
각읍수령은 독교타고, 남원부사는 별연을 타고,
일모장강 어옹들은 일엽편주 도도타고,
나는 탈 것 업섯시니 금야삼경 짚은 밤에
춘향(사십오자 략)말을 삼아 타량이면 걸음걸이 업슬소냐.
마부는 내가 되야, 네 구경을 는지시 잡아,
구졍거림 반부새로, 화장으로 걸어라. 기총마 뛰듯 뛰어라.’
온갖 장난을 다하고 보니 이런 장관이 또 잇시랴. 이팔 이팔 둘이 만나 밋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던가 부더라.
제4단 이별
이 때 뜻밖에 방자 나와,
‘도령님 사또님께옵서 부릅시요.’
도령님 들어가니 사또 말씀하시되,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1) 교지(敎旨)가 내려 왔다. 나는 문부 사정(査定)2)하고 갈 것이니 너는 내행3)을 배행4)하야 명일로 떠나거라.’5)
[도령님 부교(父敎) 듣고 일편은 반갑고, 일편은 춘향을 생각하니 흉중이 답답하야 사지에 맥시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으로 더운 눈물이 펄펄 솟아 옥면을 적시거늘,]6) 사또 보시고,
‘너 웨 우느니, 내가 남원을 일생 살 줄로 알았더냐, 내직으로 승차되니 섭섭이 생각 말고 금일부텀 치행등절을 급히 차려 명일 오전으로 떠나거라.’7)
게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아에 들어가, 사람이 물론 상중하(上中下)하고 모친께는 허물이 적은지라,8) 춘향의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을 나오는듸, 서름은 기가 막히나 노상에서 울 수 없어 참고 나오는듸 속에서 두부장 끌틋 하는지라.9) 춘향 문전 당도하니 통채 건데기채 보채10) 왈칵 쏟아져 노니,
‘어푸어푸 어허’11)
춘향이 깜짝 놀래여 왈칵 뛰어내달아,
‘애고 이게 웬 일이요,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셧소. 노상에서 오시다가 무삼 분함을 당하겨소.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중복(重服)12)을 입어겨소.13) 점잔하신 도령님이 이것이 웬 일이요.’14)
춘향이 도령님 목을 담쑥 안고 초매자락을 걷어 잡고 옥안(玉顔)15)에 흐르는 눈물 이리 씃고 저리 씃이면서,
‘우지 마오. 우지 마오.’
도령님 기가 막혀, 우름이란 게 말리는 사람이 잇시면 더 우는 것이렸다.16) 춘향이 화를 내여,
‘여보, 도령님 아구지17) 보기 실소. 그만 울고 내력 말이나 하오.’
‘사또께옵서 동부승지하여 계시단다.’18)
춘향이 좋아 하여,
‘댁에 경사요. 그래서 그러면 웬 운단 말이요.’
‘너를 바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살으신 줄 알어겟소. 날과 엇지 함께 가기를 바래리요. 도령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는 예서 팔 것 팔고 추후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말으시요. 내 말대로 하엿스면 군색잔코 졸 것이요.19) [내가 올라가드래도 도령님 큰댁으로 가서 살 수 업슬 것이니 큰댁 가까이 조구만 집 방이나 두엇 되면 족하오니 염탐하여 사두소서. 우리 권구(眷口)20) 가더래도 공밥먹지 아니할 터이니, 그렁저렁 지내다가 도령님 날만 믿고 장개 아니갈 수 잇소. 부귀영총 재상가에 요조숙녀 가리여서 혼정신성(昏定晨省)21) 할지라도 아주 잊든 마옵소서. 도령님 과거하야 벼슬 높아 외방(外方) 가면 신래마다 치행할 제 마마로22) 내세우면 무삼 말이 되오릿까.]23) 그리 알아 조처하오.’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러키로 네 말을 사또게는 못 여쭈고 대부인전 여짜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의 자식이 부형(父兄) 따라 하향에 왓다 화방작첩24)하야 다려간단 말이 전정에도 고이하고 조정에 들어 벼살도 못한다더구나. 불가불 이별될 밖에 수 없다.’
춘향이 이말 듣더니 고닥기 발연 변색이 되며 요두전목에 불그락푸르락 눈을 간잔 조름하게 뜨고 눈섭이 꼭꼿 하여지면서 코가 발심발심하며 이를 뽀도독뽀도독 갈며 온 몸을 쑤순 입 틀듯하며 매 꿩 차는듯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웬 말이요.’
왈칵 뛰어 달려들며 소매자락도 와드득 좌두욱 찢어바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령님 앞우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째고 어째요, 이것도 쓸 없다.’
면경 체경 산호죽절을 두르쳐 방문 밖에 탕탕 부듯치며 발도 동동굴러 손뼉 치고 돌아앉아 자탄가로 우는 말이,
‘서방 없는 춘향이가 세간살이 무엇하며, 단장하여 뉘 눈에 괴일고, 몹슬년의 팔자로다. 이팔청춘 젊은 것이 전별될 줄 엇지 알랴. 부질업신 이내몸을 허망하신 말쌀으로 전정 신세 바렷구나. 애고애고 내 신세야.’
천연이 돌아앉아,
‘여보 도령님 인자 막 하신 말쌈 참말이요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백년언약 맺일 적에 대부인 사또께옵소서 시기시던 일이오닛까. 빙자(憑藉)25)가 웬 일이요, 광한루서 잠깐 보고 내집에 찾어와서 침침(沉沉) 무인 야삼경에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날다려 하신 말짬구망부려 천망이요 신망부려 천망이라고. 전년오월 단오야에 내손질 부어잡고 우둥퉁퉁 밖에 나와 당중에 우뚝 서서 경경이 맑은 하날 천번이나 가르치며 단번이나 맹서키로 내정영 믿엇더니 말경에 가실 때는 톡 떼어 바리시니 이팔청춘 젊은 것이 낭군업시 엇지 살고. 침침공방 추야장에 시름상사 어이할꼬. 애고애고 내 신세야. 모지도다 모지도다 도령님이 모지도다. 독하도다 독하도다 서울양반 독하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 원수로다. 천하에 다정한게 부부정 유별컨만 이러텃 독한 양반 이 세상에 또 잇슬까. 애고애고 내 일이야. 여보 도령님 춘향 몸이 천타고 함부로 바려서도 그만인 줄 아지 마오. 첩지박명 춘향이가 식불감 밥 못먹고 침불안 잠 못자면 며칠이나 살듯 하오. 상사로 병이 들어 애통하다 죽게 되면 애원한 내 혼신 원귀가 될 것이니 존중하신 도령님이 근들 아니 재앙이요. 사람의 대접을 그리 마오, 인물거천(貴賤) 하는 법이 그런 법 웨 잇슬고.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애고 서룬지고.’
한참 이리 자진하야 서리 울제 춘향모는 물색도 모르고,
‘애고 저것들 사랑쌈이 낫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구석 쌍가래톳 설 일 만이 보네.’
하고 아모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질구다. 하던 일을 밀쳐 노코 춘향 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며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로구나.26)
‘허허 이것 별일 낫다.’
두 손뼉 땅땅 마조치며,
‘허허 동네사람 다 들어보오. 오늘날로 우리집에 사람 둘 죽심네.’
이간마루 섭적27) 올라 여창문을 두다리며 우루룩 달려들어 주먹으로 전우면서,
‘이년 이년 썩 죽거라. 살어서 쓸데없다. 너 죽은 신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 간장을 녹일나냐. 이년 이년 말 듣거라. 내 일상 이르기를 후회되기 쉽느니라. 도도한 마음 먹지 말고 여염 사람 가리여서 형세지체 네와 같고 재주인물이 모도 네와 같은 봉황의 짝을 얻어 내 앞우 노는 양을 내 안목에 보왓스면 너도 조코 나도 조체. 마음이 도고하야 남의 별로 다르더니 잘 되고 잘 되얏다.’
두 손벽 꽝꽝 마조 치면서 도령님 앞우 달려들어,
‘날과 말 좀 하여 봅시다. 내 딸 춘향을 바리고 간다 하니 무삼 죄로 그러시요. 춘향이 도령님 모신제 가준 일년 되얏시되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침선이 그르던가 언어가 불순턴가. 잡시런 행실가져 로류장화 음란턴가. 무엇이 그르던가 이 봉변이 웬 일인가. 군자 숙녀 바리는 법 칠거지악 아니며는 못바리는 줄 모르는가. 내 딸 춘향 어린 것을 밤낮이로 사랑할제 안고서는 눕고 지며 백년삼만육천일에 떠나가지 마자 하고 주야장천 어루더니, 말경에 가슬 제는 뚝 떼여 바리시니 양류천만산들 가는 춘풍 어이하며, 낙화낙엽 되거드면 어느 나부가 다시 올까. 백옥 같은 내 딸 춘향 화용신도 부득이 세월이 장차 늙어져 홍안이 백발되면 시호시호부재라. 다시 젊던 못하나니 무슨 죄가 진중하야 허송백년하오릿까. 도령님 가신 후에 내딸 춘향 님 기룰제 월정명 야삼경에 첩첩수심 어린 것이 가장 생각 절로 나서 초당전 화계상 답부피여 입우다 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불꽃같은 시름상사 흉중으로 솟아나 손들어 눈물 쓰고 후유한숨 질게 쉬고 북편을 가르치며 한양계신 도령님도 날과 같이 기루신지, 무정하야 아조 잊고 일장편지 아니하신가. 진 한숨에 듣는 눈물 옥안홍상 다 적시고 제의 방으로 들어가셔 의복도 아니 벗고 외로운 베개 우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장탄 우는것은 병아니고 무엇이요. 시름상사 짚이 든 병 내 구치 못하고서 원통이 죽거드면 칠십당년 늙은 것이 딸 일코 사외 일코 태백산 갈가무개 게발물어 던지듯이 혈혈단신 이내 몸이 뉘를 믿고 사잔 말고. 남 못할 일 그리마오, 애고애고 서룬지고. 못하지요 몇 사람 신세를 마치랴고 아니다려가오. 도령님 대가리가 둘 도쳣소 애고 무서라 이 쇠띙띙아.’
왈칵 뛰어 달려드니, 이말 만일 사또께 들어가면 큰 야단이 나것시던
‘여보소 장모 춘향만 다려갓스면 그만두것네그려.’
‘아니다려가고 젼데낼까.’
‘너머 궛세우지 말고 여기 앉어 말 좀 듣소. 춘향을 다려간대도 가매 쌍괴말을 태워가자 하니 필경에 이 말이 날 것인직, 달리는 변통할 수 업고 내 이 기가 맥히는 중에 꾀 하나를 생각하고 잇내마는, 이 말이 입 밖에 내서는 양반망신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조양반이 모도 망신을 할 말이로시.’
‘무슨 말이 그리 좟든 말이 잇단 말인가.’
‘내일 내행이 나오실제 내행 뒤에 사당이 나올터니 배행은 내가 하것네.’
‘글해서요.’
‘그만하면 알제.’
‘나는 그 말 모르것소.’
‘신주는 모셔내여 내 창옷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에 태와 갈 밖에 수가 업네. 걱정 말고 염예말소.’
춘향이 그말 듣고 도령님을 물그럼이 바래더니,
‘마소, 어마니, 도령님 너머 조르지 마소. 우리 모녀 평생신세 도령님 당중에 매엿스니 알아 하라 당부나 하오. 이번은 아마도 이별할 밖에 수가 업네. 이왕에 이별될 바는 가시는 도령님을 웨 조르릿까마는 우선 각갑하여 그러하제. 내 팔짜야. 어마니 건는방으로 가옵소서. 내일은 이별이 될 턴가 보, 애고애고 내 신세야 이별을 어찌할꼬. 여보 도령님.’
‘웨야.’
‘여보 참으로 이별을 할 터요.’
촉불을 도도 키고 둘이 서로 마조앉어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낼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 한숨질 눈물제워 경경오열하야 얼골로 대여보고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이 몇 밤이요, 애달라 나뿐 수작 오날 밤이 망종이니 내의 설운 원정 들어 보오. 연근육순 내의 모친 일가친척 바이업고 다만 독녀 나 하나라, 도령님게 의탁하야 영귀할까 바랫더니 조물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해하야 이 지경이 되야고나, 애고애고 내 일이야. 도령님 올라가면 나는 뉘를 믿고 사오릿까. 천추만한 내의 회포 주야생각 어이하리. 이화도화 만발할제 수변향락 어이하리. 황금단풍 늦어갈제 고절숭상 어이할꼬, 독수공방 진진 밤에 전전반측 어이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뿌리느니 눈물이라. 적막강산 닭밝은 밤에 두견성을 어이하리. 상풍고절 만리변에 짝찾는 저 홍안성을 위라서 금하오며 춘하추동 사시절에 첩첩이 싸인 경물 보는 것도 수심이요, 듣는 것도 수심이라.’
애고애고 설이 울제 이도령 이른 말이,
‘춘향아 우지 마라. 부술소관첩재오라 소관의 부술들과 오나라 정부들도 동서님 기루어서 규중심처 늙어잇고, 정객관산로기중에 관산의 정객이며, 녹수부용 채련도 부부신정 극중타가 추월강산 적막한듸 연을 캐여 상사하니, 나 올라간 뒤라도 창전에 명월커든 천리상사 부대 마라. 너를 두고 가는 내가 일일평분 십이시를 낸들 어이 무심하랴.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춘향이 또 우는 말이,
‘도령님 올라가며 행화춘풍 거리거리 취하는게 장진주요, 청루미색 집집마닥 보시느니 미색이요, 처처에 풍악소리 간 곳마닥 화월이라. 호색하신 도령님이 주야호강 놀으실제 날같은 하방천첩이야 손톱만치나 생각하오릿가. 애고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우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에 옥여가인 만커마는 규중심처 깊운 정 너밖에 업섯스니 내 아모리 대장분들 일각이나 잊일소냐.’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연연이별 못떠날지라. 도령님 모시고 갈 후배사령 나올 적에 헐덕헐덕 들어오며,
‘도령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낫소. 사또께옵서 도령님 어데 가셧느냐 하옵기에 소인이 여짭기를 노던 친고 작별차로 문밖이 잠간 나가셧노라 하엿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엿느냐.’
‘말 마침 대령하엿소.’
백마욕거 장사하고 청아석별 견의로다. 말은 가자고 네굽을 치는듸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령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제 살리고는 못가고 못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년아 늙은 어미 어쩔라고 몸을 이리 상하느냐.’
춘향이 정신차려,
‘애고 가깝하여라.’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여보, 도령님 남우 생때같은 자식을 이 지경이 웬 일이요. 절곡한 우리 춘향 애통하여 죽거드면 혈혈단신 이내 신세 뉘를 믿고 사잔 말꼬.’
도령님 어이업서,
‘여바라 춘향아, 네가 이게 웬 일이냐. 나를 영영 안 보랴냐. 하양낙일추운기는 소통국의 모자이별, 정객관산로기중에 오희월녀 부부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이별, 그런 이별만 하여도 소식들을 때가 잇고 생면할 날이 잇섯스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 출신하야 너를 다려 갈 것이니 우지 말고 잘 잇거라. 울음을 너머 울면 눈도 붓고 목도 쉬고 골머리도 아프니라. 돌기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내가도 광석될 줄 몰라잇고, 이라도 상사목은 창 밖에 우뚝 서서 일년춘절 다 지내되 입이 필 줄 몰라잇고, 병이라도 회심병은 오매불망 죽나니라. 네가 나를 보랴거든 서뤄말고 잘 잇거라.’
춘향이 할길 업서,
‘여보 도령님, 내 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요. 행찬업시 가실진댄 내의 찬합 갈맛다가 숙소참 잘자리에 날본다시 잡수시요.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이 일배주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이,
‘한양성 가시는 길에 수루청청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하고, 천시가절 때가 되야 세우가 분분커든 로상행인욕단상이라, 마상에 곤핍하야 병이 날까 염려오니 방초우초 저문 날에 일찍 들어 지무시고, 아침 날 풍우상에 늦게야 떠나시며, 한챗족 천리마에 모실 사람 업사오니 부대부대 천금귀체 시사안보 하옵소서. 녹수진경도에 평안이 행차하옵시고 일자음신 듣사이다.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도령님 하는 말이,
‘소식듣기 걱정마라. 요지에 서왕모도 주목왕을 만나랴고 일쌍청조 자래하여 수천리 먼먼 길에 소식전송하여잇고, 한무제 중랑장은 상림원군부전에 일척금서 보와시니, 백안청조 업슬망정 남원인편 업슬소냐. 서러 말고 잘 잇거라.’
말을 타고 하직하니 춘향 기가 막혀 하는 말이,
‘우리 도령님이 가네가네 하여도 거짓 말로 알앗더니 말타고 돌아서니 참우로 가는구나.’
춘향이가 마부불러,
‘마부야 내가 문밖에 나설 수가 업난터니 말을 붙들어 잠간 지체하여서라. 도령님께 한 말쌈만 여쭐란다.’
춘향아 내달아,
‘여보 도령님 인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랴오. 사절소식은 끈어질절, 보내나니 아조영절, 녹죽창송백이숙제 만고충절, 천산에 조비절, 와병에 인사절, 죽절, 송절, 춘하추동 사시절, 끈어져 단절 분절 훼절, 도령님은 날바리고 박절이 가시니 속절업는 내의 정절 독수공방 수절할제 어느 때에 파절할꼬. 첩의 원정 실푼 고절 주야 생각 미절할제 부대 소식 돈절마오.’
대문 밖에 꺼꾸러져 섬섬한 두 손길로 땅을 꽝꽝 치며,
‘애고애고 내 신세야.’
애고일성 하난 소래 황애산만풍소색이요 정기무광일색박이라. 엎더지며 자빠질제 서운찬케 가량이면 몇 날 며칠 될 줄 모를네라. 도령님 타신 말은 준마가편 이 아니야. 도령님 낙루하고 후기약을 당부하고 말을 재쳐 가는 양은 광풍에 편운일네라.
제5단 수난
이때 춘향이 할일 업서 자든 침방으로 들어가서,
‘향단아 주렴걷고 안석 밑애 베개 노코 문 닫어라. 도령님을 생시는 만나보기는 망연하니 잠이나 들면 꿈에 만나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와 보이는 님은 신이 업다고 일러건만 답답이 기룰진댄 꿈이 아니면 어이 보리. 꿈아 꿈아 네 오너라, 수심첩첩 한이 되야 몽불성에 어이하랴. 애고애고 내 일이야. 인간이별 만사중에 독수공방 어이하리. 상사불견 내의신정 게뉘라서 알어주리. 미친 마음 이렁저렁 허터러진 근심 후리쳐 다 바리고 자나 누나 먹고 깨나 님 못 보와 가삼 답답, 어린 양기 고운 소래 귀에 쟁쟁 보고지거 보고지거, 님의 얼골 보고지거. 듣고지거 듣고지거 님의 소래 듣고지거. 전생에 무삼 원수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기린상사 한태 만나 잊지 마자 처음 맹서, 죽지 말고 한태 잇서 백년기약 맺인 맹서, 천금주옥 꿈 박이요. 세사일관 관계하랴 근원흘러 물이 되고 짚고짚고 다시 짚고, 사랑뫼와 뫼가 되야 높고 높고 다시 높아 끈어질 줄 모르거던 무어질 줄 어이 알이. 귀신이 작해하고 조물이 시기로다. 일조 낭군 이별하니 어느 날에 만나보리. 천추만한 가득하야 끝끝이 느끼워라. 옥안운빈공로한이 일월이 무정이라. 오동추야 달밝은 밤은 어이그리 더듸새며, 녹음방초 빗긴 고대 해는 어이 더듸간고. 이 상사 알으시면 님도 나를 기루련만, 독수공방 홀로 누워 다만 한숨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구비썩어 솟아나니 눈물이라. 눈물뫼와 바대되고 한숨지어 청풍되면 일엽주 무어타고 한양낭군 찾이련만 어이 그리 못 보난고. 우수 명월 달밝은 때 설심도군 느껴오니 소연한 꿈이로다. 현야월 두우성은 님계신 곳 비치련만 심중에 앉인 수심 나 혼자 뿐이로다. 야색 창망한듸 경경이 비치난게 창외에 형화로다. 밤은 깊어 삼경인듸 앉앗슨들 님이 올까, 누웟슨들 잠이 오랴. 님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매도 원수로다. 흥진비래 고진감래 예로부텀 잇건마는 지다림도 적지 안코 기룬제도 오래건만 일촌간장 구부구부 맺힌 한을 님 아니면 뉘라 풀꼬 명천은 하감하사 수이 보게 하옵소서. 미진인정 다시 만나 백발이 다 진토록 이별업시 살고지거. 묻노라 녹수청산 우리 님 췌초행색 애연이 이별 후에 소식조차 돈절하다. 인비목석 아닐진대 님도 응당 느끼리라. 애고애고 내신세야.’
앙천자탄에 세월을 보내는듸, 이 때 도령님은 올라갈제 숙소마닥 잠 못이뤄 보고지거 내의 사랑 보고지거, 주야불망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기룬 마음 속히 만나 푸르리라. 일구월심 굳게 먹고 등과외방 바래더라.
이 때 수삭만에 신관사또 낫스되 자학골 변학도라 하는 양반이 오난듸 문필도 유여하고 인물풍채 활달하고 풍유속에 달통하야 외입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괴퍅한 중에 삿정을 겸하야 혹시 실덕도 하고 오결하는 일이 간다고로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것다.
신연하인 현신할제,
‘사령 등 현신이요.’
‘이속이요.’
‘감상이요.’
‘수배요.’
‘이방 불르라.’
‘이방이요.’
‘그 새 너의 골에 일이나 업느냐.’
‘예 아직 무고합내다.’
‘너의 골 관노가 삼남에 제일이라제.’
‘예 부림직 하옵내다.’
‘또 골에 춘향이란 계집이 매우 색이라지.’
‘예.’
‘잘 잇냐.’
‘무고하옵내다.’
‘남원이 예서 몇 린고.’
‘육백삼십리로소이다.’
‘마음이 바쁜지라, 급히 치행하라.’
신연하인이 물러나와,
‘우리 골에 일이 낫다.’
이때 신관사또 출행날을 급히 받아 도임차로 나려올제 위의도 장할시고. 구름같은 별연독교 좌우청장 떠버리고 좌우편 부축급창 물색진한 모수철육 백주전대 고를 늘여 엇비시기 눌러 매고 대모관자 통영갓을 이매 눌러 수겨쓰고, 청장줄 검쳐잡고,
‘에라 물러섯다 나이거라.’
암금이 지엄하고, 좌우구정 진정마에 뒤채잽이 심써라. 통인(퇴인) 한쌍 책전립에 행차배행 뒤를 딸코, 수배 감상 공방이며 신연이방 가선하다. 노자 한쌍 사령 한쌍 일산보종 전배하며 대로변에 갈라서고, 백방수주 일산복판 남수주 선을 둘러 주석 고리 얼른얼른 호기잇게 내려올제 전후에 혼금 소래 청산이 상응하고 권마성 높은 소래 백운이 담담이라. 전주에 득달하야 경기전 객사 연명하고 영문에 잠간 다녀, 쪼분목 썩 내달아 만마관 노구바우 넘어 임실 얼른 지내여 별수들러 중화하고 즉일도임할새, 오리정으로 들어갈제 천총이 영솔하고 육방하인 청노도로 들어올제 청도 한쌍, 홍문기 한쌍, 주작 남동각 남서각 홍초남문 한쌍, 청룡 동남각 서남각 남초 한쌍, 현무 북동각 북서각 흑초홍문 한쌍, 동사 순시 한쌍, 영기 한쌍, 집사 한쌍, 기비관 한쌍, 군노 열두쌍, 좌우가 요란하다. 행군 취타 풍악 소래 성동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권마성은 원근에 요란하다. 광한루에 보전하야 개복하고 객사에 연명차로 남여(나메)타고 들어갈제, 백성소시 엄숙하게 보이랴고 눈을 벼량 궁글궁글 객사에 연명하고, 동헌에 좌기하고 도임상을 잡순 후,
‘행수 문안이요.’
행수 군관 집례받고, 육방관속 현신받고, 사또 분부하되,
‘수노 불러 기생점고하라.’
호장이 분부듣고 기생안책 들여노코 호명을 차례로 부르는듸 낱낱이 글귀로 부르는 것이엿다.
‘우후동산 명월이.’
명월이가 들어를 오는듸 나군자락을 거듭거듭 걷어다가 세요흉당에 딱 붙이고 아장 아장 들어를 오더니,
‘점고맞고 나오.’
‘어주축수애산춘에 양편낯만 고운 채색이 이 아니야 도홍이.’
도홍이가 들어를 오는듸 홍상자락을 걸어 안고 아장 아장 조촘 걸어 들어를 오더니,
‘점고맞고 나오.’
‘단산에 저 봉이 짝을 일코 벽오동에 짓들이니 산수지령이요 비충지정이라, 기불탁율 굳은 절개 만수문전 채봉이.’
채봉이가 들어오는듸 나군을 두른 허리 맵시잇게 걷어 안고 연보를 정이 옮겨 아장 걸어 들어와,
‘점고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청정지연부개절에 묻노라 저 연화, 어여쁘고 고흔 태도 화중군자 연심이.’
연심이가 들어오는듸 나군을 걷어 안고 나말 수혜 끌면서 아장 걸어 가만 가만 들어오더니,
‘좌부진퇴로 나오.’
‘화씨같이 밝은 달 벽해에 들엇나니 형산백옥 명옥이.’
명옥이가 들어오는듸 기하상 고흔 태도 이행이 진중한듸 아장 걸어 가만 가만 들어를 오더니,
‘점고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운담풍경근오천에 양류편금에 앵앵이.’
앵앵이가 들어오는듸 홍상자락 에후리쳐 세류흉당에 딱 부치고 아장 걸어 가만 가만 들어오더니,
‘점고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사또 분부하되,
‘자주 부르라.’
‘예.’
호장이 분부듣고 넉자화도로 부르는듸
‘광한전 높은 집에 헌도하던 고흔 선배 바기보니 계향이.’
‘예, 등대하엿소.’
‘송하에 저 동자야 묻노라 선생소식 수첩청산에 운심이.’
‘예 등대하엿소.’
‘월궁에 높이 올라 계화를 꺾어 애절이.’
‘예, 등대하왓소.’
‘차문주가하처재오 목동요지 행화.’
‘예, 등대하왓소.’
‘아미산월반륜추 영입평羌에 강선이.’
‘예 등대하엿소.’
‘오동복판 거문고 타고 나니 탄금이.’
‘예 등대하왓소.’
‘팔월부용군자용 만당추수 홍련이.’
‘예 등대하엿소.’
‘주홍당사 가진 매답 차고 나니 금낭이.’
‘예 등대하왓소.’
사또 분부하되,
‘한숨에 열두서넛씩 부르라.’
호장이 분부듣고 자조 부르난듸,
‘양대선, 월중선, 화중선이.’
‘예 등대하엿소.’
‘금선이, 금옥이, 금련이.’
‘예 등대하엿소.’
‘농옥이, 난옥이, 홍옥이.’
‘예 등대하엿소.’
‘바람맞인 낙춘이.’
‘예 등대 들어를 가오.’
낙춘이가 들어를 오는듸, 제가 잔뜩 맵시잇게 들어오는체 하고 들어오는듸 시면한단 말은 듣고, 이마빡에서 시작하야 귀뒤까지 파재치고, 분성적 한단 말은 들엇던가, 개분 성냥일곱돈어치를 무지금하고 사다가 성갓테 회칠하듯 반죽하야 온낯에다 맥질하고 들어오는듸 키는 사그내 장승만헌 년이 초매자락을 훨씬추워다 턱 밑에 딱 붙이고 무논에 곤이 걸음으로 찔룩 껑중껑중 엉금섭적 들어오더니,
‘점고맞고 나오.’
연연이 고흔 기생 그 중에 만컨마는 사또께옵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엇는지라 아무리 들으시되 춘향의 일홈 업는지라. 사또 수노불러 묻난 말이,
‘기생점고 다 되야도 춘향은 안부르니 퇴기냐.’
수노 여짜오되,
‘춘향모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내다.’
사또문왈,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엇지 규중에 잇는 아해 일홈이 높이 뜬다.’
수노 여짜오되,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이 장한고로 권문세족양반네와 일등재사 할양들과 내려오신 등내마닥 귀경코자 간청하되 춘향모녀 불청키로 양반상하 물론하고 액내지간 소인등도 일년ㅇ리득 댐녀하되 언어수작 일삽더니, 천정하신 연분인지 구관사또 자제 이도령님과 백년기약 맺사옵고 도령님 가실 때에 입장 후에 다랴가마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여 잇삽내다.’
사또 분을 내여,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부시하요 미장전 도령님이 하방에 작첩하야 사자 할꼬.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내여서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무 내가 저 하나를 보라다가 못 보고 그저 말랴. 잔말 말고 불러오라.’
춘향을 부르란 청령이 나는듸, 이방 호방이 여짜오되,
‘춘향이가 기생도 아닐 뿐 아니오라, 구등사또자제 도령님과 맹약이 중하온듸 연치는 부동이나 동반의 분의로 부르라기 사또정치가 해상할까 저어하옵내다.’
사또 대노하야,
‘만일 춘향을 시각지체 하다가는 공형 이하로 각청 두목을 일병태 가할 것이니, 빨리 대령 못 시길까.’
육방이 요동 각청 두목이 넋을 일어,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일이 또 잇나냐, 불쌍하다 춘향정절 가련케 되기 쉽다. 사또분부 지엄히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사령 관노 뒤섞여서 춘향문전 당도하니, 이 때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관노가 오는지 모르고 주야로 도령님만 생각하야 우는듸, 망칙한 환을 당하랴거던 소래가 화평할 수 잇시며 한때라도 공방살이 할 계집아히라, 목성에 청승이 찌여 자연 실푼 애원성이 되야 보고 듣는 사람의 심장인들 아니 상할소냐. 님기뤼 서룬 마음 식불감 밥못먹어 침불안석 잠 못 자고 도령님 생각 적상되야 피골이 모도 다 상연이라. 양기가 쇠진하야 진양조란 울음이 되야,
‘갈까부다 갈까부다 님을 따라 갈까부다. 천리라도 갈까부다, 만리라도 갈까부다. 풍우도 쉬여 넘고 날진 수진 해동창 보래매도 쉬여 넘는 고봉정상 동선령 고개라도 님이와 날 찾이면 나는 발벗어 손에 들고 나는 아니 쉬여가제.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기루는가. 무정하야 아조잊고 내의 사랑 옮겨다가 다른 님을 고이는가.’
한참 이리 서리 울제, 사령 등이 춘향의 애원성을 듣고 인비목석 아니여던 감심아니 될 수 잇냐. 육천마듸 사대삭신이 낙수춘비 얼음 녹듯 탁 풀리여,
‘대체 이 아니 불쌍하냐. 이 애 오입한 자식들이 저른 계집을 추앙못하며는 사람이 아니로다.’
이 때 재촉 사령 나오면서,
‘오너냐.’
웨난 소래에 춘향이 깜짝 놀래여 문 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군노 나왓구나.
‘아차차차 잊엇네. 오날이 기 삼일점고라 하더니 무삼 야단이 낫나보다.’
밀창문 열다리며,
‘허허 번수님네 이리오소 이리오소. 오시기 뜻밖이네. 이번 신연길에 로독이나 아니나며, 사또정체 엇더하며, 구관댁에 가겨시며 도령님 편지 한장도 아니하던가. 내가 전일은 양반을 모시기로 이목이 번거하고, 도령님 정체 유달라서 모르는체 하엿거만, 마음조차 업슬손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김번수며 이번수며 여러번수 손을 잡고 제방에 앉힌후에 향단이 불러
‘주반상 들여라.’
취토록 매긴 후에 궤문 열고 돈만냥을 내여노며,
‘여럽너수님네 가시다가 술이나 잡숫고 가옵서 뒷말업게 하여주소.’
사령 등이 약주를 취하야 하는 말이,
‘돈이라니 당치 안타. 우리가 돈바래고 네게 왓냐.’
하며,
‘되려노와라. 김번수야 네가차라. 불가타마는 입 수나 다오르냐.’
돈받아 차고 흐늘흐늘 들어갈제 행수기생이 나온다. 행수기생이 나오며 두 손뼉 딱딱 마조치면서,
‘여바라 춘향아 말듣거라, 너만한 정절은 나도 잇고, 너만한 수절은 나도 잇다. 네라는 정절은 웨 잇스며, 네라는 수절이 웨 잇나냐. 정절부인 애기씨, 수절부인 애기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망연하야 육방이 손동 각청 두목이 다 죽어난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춘향이 할 수 업서 수절하던 그 태도로 대문 밖 썩 나서며,
‘성님 성님 행수성님 恝視를 그리 마소. 게라는 대대행수며, 내라야 대대 춘향인가. 인생일사제 한 번 죽제 두 번 죽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에 들어가,
‘춘향이 대령하엿소.’
사또보시고 대희하야 춘향일시 분명하다.
‘대상으로 오르거라.’
춘향이 상방에 올라가 렴슬단좌 뿐이로다.
사또 이때 대노하야,
‘책방에 가 회계 나리님을 오시래라.’
회계생원들이 들어오던 것이엿다. 사또 대희하야,
‘자내 보게. 저게 춘향일세. 하 그년 매우 에뿐듸.’
‘잘 생겻소. 사또께서 서울 계실 때부텀 춘향 춘향하시더니 한번 구경할만 하오.’
사또 웃으며,
‘자네 중신하겟나.’
이윽히 앉앗더니,
‘사또이 당초에 춘향을 불르시지 말고 매파를 보내여 보시는 게 울은 것을 일이 좀 경이 되얏소마는 이무 불럿스니 아매도 혼사할 밖이 수가 업소.’
사또 대희하며, 춘향다려 분부하되,
‘오날부텀 몸단장 정이 하고 수청으로 거행하라.’
‘사또분부 황송하나 일부종사 바래오니 분부시행 못 하것소.’
사또 우어왈,
‘미재미재라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에어쁘냐. 당연한 말이오다. 그러나 이수재는 경성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귀족의 사우가 되얏스니 일시 사랑으로 잠간 로류장화하던 너를 일분 생각하것너냐. 너는 근본 절행잇서 전수일절하엿다가 홍안이 낙조되고 백발이 산수하면 무정세월약류파를 탄식할제 불쌍코 가련한 게 너 아니면 뉘가 기랴. 네 아무리 수절한들 열녀포양 뉘가 하랴. 그는 다 바려두고 네 골 관장에게 임이 오르냐 동자놈에게 매인게 오르냐. 네가 말을 좀 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충불사이군이요 열불경이부절을 본받고자 하옵는듸 수차 분부 이러하니 생불여사이옵고 열불경이부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 때 회계나리가 썩 하는 말이,
‘네 여바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로고. 부유일생 소천하에 일색이라 네 여러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추앙하여 하시는 말쌈이제. 너 같은 창기배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다.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사또 영접함이 법전에 당연하고 사례에도 당당커든 고이한말 내지마라. 너이 같은 천기배게 충렬이자 웨 잇시랴.’
이 때 춘향이 하 기가 막혀 천연이 앉아 여짜오되,
‘충렬열녀 상하잇소. 자상이 듣조시요. 기생으로 말합시다. 충효열녀 업다 하니 낱낱이 아뢰리다. 해서기생 농선이는 동선령에 죽어잇고, 서천(셔천)기생 아히로되 칠거학문 들어잇고, 진주기생 논개는 우리나라 충열로서 충열문에 모셔노코 천추향사 아여잇고, 청주기생 화월이는 삼층각에 올라잇고, 평양기생 월선이도 충열문에 들어잇고, 안동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 지은 후에 정경가자 잇사오니 기생해폐 마옵소서.’
춘향 다시 사또전에 여짜오되,
‘당초에 이수재 만날 때에 태산서해 굳은 마음 소첩의 일심정절 맹상 같은 용맹인들 빼여내지 못할 터요, 공명선생 높은 재조 동남풍은 빌엇시되 일편단심 소녀 마음 굴복지 못하리로다. 기산에 허유는 부촉수요거천하고, 서산에 백숙양인은 불식주율하엿스니, 만일 허유 업섯스면 고답지사 뉘가 하며 만일 백이숙제 업섯스면 난신적자 만하리다. 첩신이 수 천한 계집인들 허유백인들 모르릿가. 사람의 첩이 되야 배부귀가 하는 법이 벼슬하는 관장님네 망국분주 같사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사또 대노하야,
‘이년 들어라. 모반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여잇고, 조롱관장하는 죄는 겨서율에 율써잇고, 거역관장하는 죄는 엄형정배하느니라. 죽노라 서러 마라.’
춘향이 또 포악하되,
‘유부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요.’
사또 기가 막혀 어찌 분하시던지 연상을 뚜다릴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토 고가 탁 풀리고 대마듸에 목이 쉬여,
‘이년 잡아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의 수청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끄어내며,
‘급창 예 이년 잡아내리라.’
춘향이 떨치며 ‘노와라’ 중계에 나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어
‘요년 요년 어떠하신 존전이라고 대답이 그러하고 살기를 바랠소냐.’
대뜰 아래 내리치니 맹호같은 군노사령 벌떼같이 달려들어 감태같은 춘향의 머리채를 선전시정(젼정시졀) 연실감듯, 배사공이 닻줄감듯, 사월팔일 등대감듯, 휘휘친친 감어쥐고 동당이쳐 업지르니 불쌍타 춘향 신세 백옥 같은 고흔 몸이 육자백이로 업더졋구나. 좌우나졸 늘어서서 능장 곤장 형장이며 주장짚고,
‘아뢰라 형리 대령하라.’
‘예 수게라 형리요.’
사또 분이 엇지 낫던지 벌벌 떨며 기가막혀 허푸허푸하며,
‘여보아라 그년에게 다짐이 웨 잇슬리, 묻도 말고 동틀에 올려매고 정치를 부수고 물고장을 올리라.’
춘향을 동츨에 올려매고 사정의 거동 보라.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아람 담숙 안아다가 형틀 아래 좌르륵 브드치는 소래 춘향의 정신이 혼미한다. 집장사령 거동 봐라. 이놈잡고 능청능청 능심조코 빳빳하고 잘 부러지는 놈 골라잡고 오른 어깨 벗어메고 형장짚고 대상청령 기다릴제,
‘분부뫼와라. 네 그년 사정두고 형장하여서는 당정에 명을 바칠 것이니 각별이 매우 치라.’
집장사령이 여짜오되,
‘사또분부 지엄한듸 저만한 년을 무삼 사정 두오릿가. 이년 다리를 까딱 말라. 만일 소동하다가는 뼈 부러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 금장소리 발맞추워 서면서 가만이 하는 말이,
‘한두 개만 견듸소. 어쩔 수 업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다리는 저리 틀소.’
‘매우 치라.’
‘에잇 때리요.’
딱 부치니 부러진 형장 가비는 푸두두 날라 공중에 빙빙 솟아 상방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푼 대를 참으랴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루면서,
‘애고 이게 웬일이여.’
[곤장 태장28) 치는듸는 사령29)이 서서 한나 둘 세거마는, 형장30)버텀은 법장31)이라, 형리32)와 통인33)이 닭쌈하는 모양으로 마조 업데서 하나치면 하나 긋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없는 놈 술집 벼람박34)에 술값 긋듯35) 그여노니 한일자가 되얏구나.]36) 춘향이는 제절로 셔름제워 맞으면서 우는듸,
‘일심단편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형벌 치읍신들 일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릿가.’37)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업시 모와 구경할제 좌우에 한량38)들이,
‘모지구나 모지구나, 우리골 원님이 모지구나. 저런 형벌이 웨 잇시려, 저런 매질이 웨 잇슬까. 집장사령39)놈 눈익혀 두워라, 삼문40)밧 나오면 급장41)을 주리라.’42)
보고 듣는 사람이야 뉘가 아니 낙루43)하랴.44) 둣째낱 딱 부치니,
‘이비절(二妃節)45)을 아옵는듸 불경이부46)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 못 잊것소.’
셋째 낱을 딱 부치니,
‘삼종지례47) 지중한 법 삼강오륜 알엇스니 삼치형문48) 정배49)를 갈지라도 삼청동50) 우리 낭군 이도령을 못 잊것소.’
넷째 낱을 딱 부치니,
‘사대부 도령님은 사면공사51) 살피잔코 위력공사 심을 쓰니 사십팔방 남원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요.52)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 동거(死生同居)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 잊것소.’
다섯 낱애 딱 부치니,
‘오륜윤기53) 끈치잔코 부부유별 오행으로 맺인 연분 올올이 찢어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이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54)은 님계신듸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올까 내일이나 기별올까 무죄한 이내 몸이 악사55)할 일 업사오니 오결죄수56) 마옵소서. 애고애고 내 신세야.’
여섯 낱에 딱 부치니,
‘육육은 삼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번 죽인대도 육천마듸 어린 사랑 맺힌 마음57) 변할 수 전혀 업소.’
일곱 낱을 딱 부치니,
‘칠거지악58) 범하엿소. 칠거지악 아니여든 칠개형문 웬일이요. 칠척검 드는 칼로 동동이59) 장글러서60) 이제 바삐 죽여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닥 고찰 마소. 칠보홍안61) 나 죽것네.’
야달째 낱 딱 부치니,
‘팔자쪼흔 춘향몸이 팔도방백 수령중에 제일명관 만낫구나. 팔도방백 수령님네 치민하러 내려왓제 악형하러 내려왓소.’
아홉 낱애 딱 부치니,
‘구곡간장 구부석어 이내 눈물 구년지수 되것구나. 구고62) 청산 장송베여 청강선(淸江船) 무어 타고63) 한양성중 급히 가서 구중궁궐 성상전에 구구원정64) 주달65)하고 구정뜰에 물려나와 삼청동을 찾아가서 우리 사랑 반기 만나 구비구비 맺힌 마음 적은듯 풀연마는.’
열째 낱을 딱 부치니,
‘십생구사66) 할지라도 팔십년 정한 뜻을 십만 번 죽인대도 가망업고 무가내지67). 십육세 어린 춘향 장하 원귀68) 가련하오.’
열 치고는 짐작할 줄 알엇더니, 열다섯째 딱 부치니,
‘십오야69) 밝은 달은 띄구름에 무쳐잇고, 서울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무쳣스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시물치고 짐작할까 여겻더니, 시물다섯 딱 부치니,
‘이십오현탄야월에 불승청원70) 저 기르기 너 가는듸 어데매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러 삼청동 우리님께 내말 부대 전혀다고. 내의 형상 자시 보고 부대부대 잊지 마라.’
삼십삼천 어린 마음 옥황전에 아뢰고저 옥같은 청춘 몸에 솟나니 유혈이요 흐르나니 눈물이라. 피눈물 한태 흘러 무릉도언 홍류수라.
청춘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소녀를 이리 말고 살지능지하여 아조 박살 죽여주면 사후 원조라는 새가 되야 초혼조 함끼 울어 적막강산 달밝은 밤에 우리 도령님 잠든 후 파몽이나 하여지다.’
말못하고 기절하니, 업졋던 형방 통인 고개들어 눈물씃고, 매질하든 저 사령도 눈물씃고 돌아서며,
‘사람의 자식은 못하건네.’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이 눈물씃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맞는 거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것다.’
모지도다 모지도다, 춘향정절이 모지도다. 출천열녀로다. 남녀노소업시 서로 낙루하며 돌아설제, 사또인들 조흘리가 잇스랴.
‘네 이년 관정에 발악하고 맞으니 조흔게 무엇이냐. 일후에 또 그런 거역관장할까.’
반생반사 저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여보 사또 들으시요. 일년포한 부지생사 어이 그리 모르시요. 계집에 곡한 마음 오류월 서리칩네. 혼비중천 다니다가 우리 성군 좌정하에 이 원정을 아뢰오면 사또ㄴ들 무사할까. 덕분에 죽여주오.’
사또가 기가 맥혀,
‘허허 그 년 말못할 년이로고. 큰칼 쓰여 하옥하라.’
하니 큰칼 쓰여 인봉하야 사정이 등에 업고 삼문밧 나올제 기생들이 나오며,
‘애고 서울집아, 정신차리게. 애고 불쌍하여라.’
사지를 만지며 약을 갈아 듸루며 서로 보고 낙루할제, 이 때 키크고 속업는 낙춘이가 들어오며,
‘얼시고 절시고 조을시고, 우리 남원도 현판감이 생겻구나.’
왈칵 달려들어,
‘애고 서울집아 불쌍하여라.’
이리 야단할제, 춘향의 모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업시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애고 이게 웬 일이냐 죄가 무삼 죄며 매는 무삼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질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삼 죄요. 장군방 두목들아 집장하던 사정이도 무슨 원수 맺혓더냐. 애고애고 내 일이야. 칠십당년 늙은 것이 의지업시 되얏구나. 무남독녀 내 딸 춘향 규중에 은근이 질러내여 밤낮이로 서책만 노코 내측편공부 일삼우며 날보고 하는 말이 마오마오 서뤄마오, 아달 업다 서뤄마오 외손봉사하리잇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단 더할손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상중하가 다를손가. 이내 마음 둘데업네. 가삼에 불이 붙어 한숨이 연기로라. 김번수야 이번수야 웃령이 지엄타고 이대지 몹시 첫느냐. 애고 내 딸 장처보소, 빙설같은 두 다리에 연지같은 피비쳣네. 명문가 귀중부야 눈먼딸도 원하더라. 그런듸가 못 생기고 기생월매 딸이 되야 이 정색이 웬 일이냐. 춘향아 정신차려라. 애고애고 내 신세야. 향단아 삼문 밧게 가서 삯군 둘만 사오너라. 서울 쌍급주 보낼란다.’
춘향이 쌍급주 보낸단 말을 듣고,
‘어마니 마오. 그게 무삼 말쌈이요. 만일 급주가 서울 올라가서 도령님이 보시며는 칭칭시하에 어찌 할 줄 몰라 심사 울적하야 병이 되면 근들 아니 훼절이요. 그런 말쌈 말으시고 옥으로 가사이다.’
사정이 등에 업혀 옥으로 들어갈제, 향단이는 칼머리들고 춘향모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야 옥형방 문을 열소. 옥형방도 잠들엇나.
옥중에 들어가서 옥방형상 볼작시면 부서지면 죽창틈에 살쏘나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 베록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
이 때 춘향이 옥방에서 장탄가로 우든 것이엿다.
‘이내 죄가 무삼 죄냐. 국곡유식 아니거든 엄형중장 무삼일꼬. 살인죄인 아니여든 항쇄족쇄 웬 일이며, 역률강상 아니여든 사지결박 웬일이며, 음양도적이 아니여든 이 형벌이 웬일일꼬. 삼강수는 연수되야 청천일장지에 내의 설음 원정지여 옥황전에 올리고저, 낭군길워 가삼 답답 불이 붙네. 한숨이 바람되야 붙난 불을 더부치니 속절업시 나죽것네. 홀로 섯는 저 국화는 높은 절개 거룩하다. 눈 속에 청송은 천고절을 지켯구나. 푸른 솔은 날과 같고 누른 국화 낭군같이 슬픈 생각 뿌리나니 눈물이요 적시나니 한숨이라. 한숨은 청풍삼고 눈물은 세우삼어 청풍이 세우를 몰아다가 불거니 뿌리거니 님의 잠을 깨우고저. 견우직녀성은 칠석상봉하올 적에 은하수 맥혓시되 실기한 일 업섯건만, 우리 낭군 계신 고대 무삼 물이 맥혓는지 소식조차 못듣는고. 살아 이리 기루나니 아조 죽어 잊고지거. 차라리 이몸 죽어 공산에 두견이 되야 이화월백 삼경야에 슬피 울어 낭군 귀에 들리고저. 청강에 원앙되야 짝을 불러 다니면서 다정코 유정함을 님의 눈에 보이고저. 삼춘에 호접되야 향기무인 두 나래로 춘광을 자랑하여 낭군 옷에 붙고지거. 청천에 명월되야 밤당하면 돌아올라 명월이 밝은 빛을 님의 얼굴에 비치고저. 이내 간장 석는 피로 님의 화상 기려내어 방문 앞우 족자삼아 걸어두고 들며나며 보고지거. 수절정절 절대가인 차목하게 되엇구나. 문채조흔 형산백옥 진퇴중에 무쳣는듯, 향기로운 상산초가 잡풀속에 섞엿는듯, 오동속에 노든 봉황 형극속에 길듸린듯, 자고로 성현네도 무죄하고 국계시니 요순우탕 인군네도 걸주의 포악으로 함진옥에 갇쳣더니 도로 뇌야 성군되고, 만고성현 공부자도 양호의 일을 입어 광야에 갇쳑더니 도로 뇌야 대성되시니, 이른 일로 볼작시면 죄업는 이내 몸도 살아나서 세상구경 다시 할까. 답답하고 원통하다. 날 살릴 이 뉘 잇슬까. 서울 계신 우리 낭군 벼살길도 나려와 이러탓이 죽어갈제 내목심을 못 살릴까. 하운은 다기봉하니 산이 높아 못오던가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되거든 오랴신가. 병풍에 기린 황계 두 나래를 툭툭 치며 사경일점에 날새라고 울거던 오랴신가. 애고애고 내일이야.’
죽창문을 열따리니 명정월색은 방 안에 든다마는 어린 것이 홀로 앉어 달다려 묻는 말이,
‘저 달아 보느냐 님계신듸 명기 빌려라 나도 보게야. 우린미이 누웟더냐 앉앗더냐 보는대로만 네가 일러 내의 수심 풀어다고.’
애고애고 설이 운다. 홀연이 잠이 드니 비몽사몽간에 호접이 장주되고 장주가 호접이 되야 세우같이 남운 혼백 바람인듯 구름인듯 한 곳을 당도하니 천공지활하고 산령수려한듸 은은한 죽림간에 일층와각이 반공에 잠겻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대풍기하고 승천입지하니 침상편시 춘몽중에 행진강남수천리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대자로 만고정열 한양지묘라 뚜렷이 부쳣거늘 심신이 황홀하야 배회터니 천연한 낭자 서이 나오는듸, 석숭의 애첩 녹주 등롱을 들고 진주기생논개, 평양기생월선이라. 춘향을 인도하야 내당에 들어가니 당상에 백의한 두 부인이 옥수를 들어 청하거늘 춘향이 사양하되,
‘진세간천첩이 엇지 황릉묘를 오르잇가.’
부인이 기특이 여겨 재삼 청하거늘 사양치 못하야 올라가니 좌를 주워 앉힌 후에,
‘네가 춘향인다. 기특하도다, 일전에 조회차로 요지연에 올라가니 말이 낭자키로 간절이 보고 싶어 네를 청하엿스니 심이 불안토다.’
춘향이 재배주왈,
‘첩이 비록 무식하나 고서를 보옵고 사후에나 존안을 뵈올까 하엿더니 이러틋 황릉묘에 모시니 황공비감하여이다.’
상군부인 말쌈하되,
‘우리 순군 대순씨가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에 붕하시니 속절업는 두 몸이 소상죽림에 피눈물을 뿌려노니 가지마닥 알롱알롱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을 천추에 짚은 한을 하소할 곳 업섯더니 네 절행 기특기로 네다려 말하노라. 송건 기천년에 청백은 어느 때며, 오현금 남풍시를 이제까지 전하더라.’
이릇탓이 말쌈할제, 어떠한 부인이,
‘춘향아 나는 변주명월음도성에 화선하던 농옥일다. 소사의 안해로서 태화산 이별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야 옥소로 한을 풀제 곡종비거 부지처하니 산하벽도춘자개라.’
이제할제 또 부인 말쌈하되,
‘나는 한궁녀 소군이라. 호지에 오거하니 일평청총 뿐이로다. 마상비파 한 곡조에 화도성식춘풍면이요 환패공귀월야혼이라. 어찌 아니 원통하랴.’
한참 이러할제 음풍이 일어나며 촛불이 벌렁벌렁하며 무엇이 촛불 앞에 달려들거늘 춘향이 놀래여 살펴 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데 의의한 가온대 곡성이 낭자하며,
‘여바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뉜고 하니 한고조 안해 척부인이로다. 우리 황제 용비후에 여후의 독한 솜씨 내의 수족 끈어 내여 두 귀에다 불지르고 두 눈 빼여 음약먹여 측간 속에 너헛스니 천추에 짚은 한을어느 때나 풀어보랴.’
이리 울제 상군부인 말쌈하되,
‘이곳이라 하는 데가 유명이 로수하고 행오 자별하니 오래 유치 못할지라.’
여동불러 하직할새 동방실솔성은 시르렁, 일쌍 호접은 펄펄. 춘향이 깜짝 놀래 깨여 보니 꿈이로다.
(이러틋 종종 꿈을 꾸는듸 어느 때는) 옥창앵도화 떨어져보이고 거울복판이 깨어져 뵈고 문우에 허수애비 달려뵈이거늘 나죽은 꿈이로다. 수심걱정 밤을 샐제 기러기 울고 가니 일편서羌달에 행안남비 네가 아니냐. 밤은 짚어 삼경이요 궂은 비는 퍼붓는듸 도체비 삑삑, 밤새 소래 븟븟, ㅁ누풍지는 펄렁펄렁, 귀신이 우는듸 난장맞아 죽은 귀신, 사방에서 우는듸 귀곡성이 낭자로다. 방 안이며 추녀 끝이며 마루 아래서도 애고애고 귀신 소래에 잠들 길이 전혀 업다. 춘향이가 처음에는 귀신 소래에 정신이 업시 지내더니 여러 번을 들어나니 파겁이 되야 청성국거리 삼재비 새악소래로 알고 들으며,
‘이 몹슬 귀신들아, 나를 잡아 갈랴거던 조르지나 말려무나, 엄급급여율령 사파쒜.’
진언치고 앉앗슬 때 옥 밖으로 봉사 하나 지내가되 서울봉사 같을진대 ‘문수하오’ 웨련마넌, 시골봉사라 ‘문복하오’하며 웨고 가니, 춘향이 듣고,
‘여보, 어머니 저 봉사 좀 불러주오.’
춘향의 모 봉사를 부르는데,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불러노니 봉사 대답하되,
‘계 뉘기니.’
‘춘향 어미요.’
‘어찌 찾나.’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간 오시라 하오.’
봉사 한번 웃으면서,
‘날찾기 의외로세, 가제.’
봉사 옥으로 갈제 춘향의 모 봉사의 지팽이를 잡고 길을 인도할제,
‘봉사님 이리 오시요. 이것이 독다리요. 이것이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네시요.’
앞에 개천이 잇서 뛰여볼까 무한히 벼르다가 뛰는듸, 봉사의 뛰염이란게 멀리 뛰던 못하고 올라가기만 한자리나 올라가는 것이엿다. 멀리 뛴단 것이 한가온데가 풍덩 빠져 노왓는되, 기여나오랴고 짚난게 개똥을 짚어제 ‘어풀사 이게 정영 똥이제’ 손을 들어맡아보니 묵은 쌀밥 먹고 썩은 놈이로고. 손을 내뿌린게 모진독에다 부듯치니 엇지 아푸던지 입우다가 훌 쓸어너코 우는듸 먼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애고 애고 내 팔짜야. 조고마한 개천을 못 건네고 이 봉변을 당하엿스니 수원수구 뉘다려 하리. 내 신세를 생각하니 천지만물을 불견이라. 주야를 내가 알랴 사시를 짐작하며, 춘절이 당해온들 도리화개 내가 알며, 추절이 당해온들 황국단풍 어찌 알며, 부모를 내 아느냐 처자를 내 아느냐, 신구벗님을 내 아느냐, 세상천지 일월성신과 후박장단을 모르고 밤중같이 지내다가 이 지경이 되엿구나, 진소위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 소경이 글체 아조 생긴 개천이 그르냐.’
애고 애고 설이 우니 춘향의 모 비감하야,
‘그만 우시요.’
봉사를 목욕시계 옥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반기 예겨,
‘애고 봉사님 어서 오.’
봉사 그 중에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을 듣고 반가하며,
‘음성을 들으니 춘향각씬가부다.’
‘예 기읍내다.’
‘내가 발서 와서 자내를 한번이나 볼 테로되 빈즉다사라 못 오고 청하여 왓스니 내 인사가 아니로세.’
‘그럴 이가 잇소. 안맹하옵고 노래에 기력이 어떠하시요.’
‘내 염예는 말게. 대체 나를 어찌 청하엿나.’
‘예, 다름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하얏삽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 때나 나를 찾일까, 길흉여부 점을 하랴고 청하엿소.’
‘그러게.’
봉사 점을 하는데,
‘정이 태세 유상천 경이축축왈 천하언재심이요 지하언재시리요마는 고지즉응허시느니 신기령이시니 감이순통언 하소서. 망이소고와 망석궐의를 유심 유령이 망지소보하야 약가 약비를 상명 고지 즉을어시느니 복희 문왕 무왕 소공 주공 공자 오대 성현이 설이천 안회 사맹 성문 십철 제갈공명선애 이순풍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주렴계 주효염 엄군평 사마군 귀곡 손빈 진의 왕보사 유훈장 제대 선생은 명찰 명기 하옵소서. 마의도사 구천선녀 육경육갑 신장이 년월 일시 사지 공조 배괘 동자 척괘 동남 허공 유감 여왕봉가 복사 달뇌 상화 육신 무차 보양 원사 강림언하소서. 전라좌도 남원부 천변에 거하는 일자 생신 곤명 열녀 성춘향이 하월하일에 방사옥중하오며 서울 삼청동 거하는 이몽룡은 하일하시에 도차본부하오릿까, 복걸첨신은 신명소시하옵소서.’
산통을 철겅철겅 흔드더니,
‘어듸보자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허허 조타 상괘로고. 칠간산이로구나, 어유피망허니 소적대성이라. 옛날 주무왕이 베살할제 이 괘를 얻어 금의환향하얏스니 엇지 아니 조흘손가. 천리상지하니 친인이 유면이라. 자네 서방님이 불원간에 나려와서 평생한을 풀것네. 걱정 마소. 참 조커든.’
춘향이 대답하되,
‘말대로 그리하면 오직 좃사오릿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듸 자생이 말슴하소.’
‘단장하든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에 앵도꼿이 떨어져 보이고, 문 우에 허수애비 달려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대물이 말라 뵈이니, 나 죽을 꿈 아니요.’
봉사 이윽히 생각다가 양구에 왈,
‘그꿈 장이조타. 화락하니 능성실이요, 파경하니 기무성가, 능히 열매가 열어야 꼿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업슬손가. 문상에 현우하니 만인이 개앙시라, 문우에 허수애비 달렷스면 사람마닥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하니 용안견이요 산붕허니 지택평이라, 바대가 마르면 용의 얼골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조타 쌍가매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머지 안네.’
한참 이리 수작할제 뜻밖이 가마구가 옥담에 와 앉더니 까옥까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후여 날리며,
‘방정맞인 가마구야 나를 잡아 갈랴거든 조르기나 말려무나.’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가만잇소, 그 가마구가 가옥 가옥 그러케 울제.’
‘예, 그래요.’
‘조타 조타 가자는 아름다울 가자요 옥자는 집옥자다. 아름답고 질겁고 조흔 일이 불원간에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마소. 지금은 복책 천양을 준대도 아니받어 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귀하게 되는 때에 괄세나 부대 마소. 나 돌아가네.’
‘예 평안이 가옵시고 후일 상봉하옵시다.’
춘향이 장탄수심으로 세월을 보내니라.
제6단 재봉
이때 한양성 도령님은 주야로 시서백가어를 숙독하얏스니 글로는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국가에 경사잇서 태평과를 뵈이실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보니 억조창생 허다선배 일시에 숙배한다. 어악풍류 청애성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 택출하야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 우에 걸어노니 글제에 하엿시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엇거늘 이도령 글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제를 펼쳐 노코 해설을 생각하야 용지연에 먹을 갈아 당황색 무심필을 반중등 덤벅풀어 왕희지필법으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휘지 선장하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자자이 비점이요 구구이 관주로다. 용사비등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로다. 금방에 일흠불러 어주삼배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진퇴나올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유가 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에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조 조정에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하사 전라도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수의 마패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본댁에 나어갈제 철관풍채는 심산맹호 같은지라. 부모전 하직하고 전라도로 행할새 남대문 밧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나리고 청파역말 잡아타고 칠패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내 동적이(동작)를 얼픗 건네 남태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화하고, 사그내(사근)미륵당이 수원숙소하고, 대황교(대함괴) 떡전거리 진개울 중밑 진위읍에 중화하고, 칠원(갈원) 소사 애고다리 성환역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새술막 천안읍에 중화하고, 삼거리 도리터(도리치) 짐게(금제)역말 갈아타고, 신구덕평을 얼른 지내 원리(원기)에 숙소하고, 팔풍정 화란(궁원) 광정 모란(모로원) 공주 금강을 건네 금영에 중화하고, 높은 행길 소개 문 어미널틔 경천(정천)에 숙소하고, 노성 풋개(초포) 사다리(사교) 은진 간치당이 황화정 지에미고개 여산읍에 숙소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불러 분부하되,
‘전라도 초읍 여산이라 막중국사거행 불명즉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 이 팔읍을 순행하여 아모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중방역졸 네의 등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흥덕 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순행하야 아모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종사너는(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창평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모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분발하신 후에 어사또 행장을 채리는듸 모양보소. 숫사람을 속이랴고 모자업는 헌 파립에 버레줄 총총매여 초사갓끈 달어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갑풀 관자 노끈 당줄 달아 쓰고, 으몽하게헌 도복에 무명실띠를 흉중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초달어 일광을 가리고 나려올제, 통새암삼이 숙소하고, 한내 주엽젱이 가린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내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호강남 여기로다. 기린토월이며 한벽청연 남고모정 곤지망월 다가사후 덕진채련 비비낙안 위봉폭포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ㅇ마행하야 나려올제, 각읍수령들이 어사 낫단 말을 듣고 민정을 가다듬어 전공사를 염려할제 하인인들 편하리요, 이방 호방 실혼하고 공사회계하는 형방 서기 얼른 하면 도망차로 신발하고, 수다한 각청상이 넋을 일어 분주할제, 이 때 어사또는 임실 구홧들 근처를 당도하니 차시 마침 농절이라. 농부들이 농부가하며 이러 할제 야단이엿다.
‘어여로 상사뒤요, 천리건곤 태평시에 도덕높은 우리 성군 강구연월 동요듣던 낭군 성덕이라, 어여로 상사뒤요.
순님군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밧을 갈고, 어여로 상사뒤요. 신농씨 내신따부 천추만대 유전하니 어이 아니 높우던가. 어여로 상사뒤요.
하우씨 어진 님군 구년홍수 다사리고, 어여로 상사뒤요.
은왕 성탕 어진 님군 태한칠년 당하엿네, 이이라 상사뒤요.
이 농사 지어내여 우리 성군 공세후에 남운 곡식 장만하야 앙사부모아니하며 하육 처자아니할까 어여라 상사뒤요.
백초를 심어 사시를 집작하니 유신한게 백초로다. 어여라 상사뒤요.
청운공명 조흔 호강 이 업을 당할소냐 어여로 상사뒤요.
남전북답 기경하야 함포고복 하여보세, 얼럴럴 상사뒤요.‘
한참 이리할제 어사또 주령짚고 이만하고 서서 농부가를 구경하다가
‘거기는 대풍이로고.’
또 한편을 바래보니 이상한 일이 잇다. 중씰한 노인들이 찔찔이 모와서서 등걸밭을 이루는듸 갈멍덕 숙여쓰고 소시랑 손에 들고 백발가를 부르는듸,
‘등장가자 등장가자 하날님 전에 등장가량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젊은 사람 늙지 말게 하나님 전에 등장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랴고 우수에 도치들고 좌수에 가시들고 오는 백발 뚜다리며 가는 홍안 걸어당겨 정사로 결박하야 단단이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절로가고 백발은 시시로 돌아와 귀 밑애 살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되니 조여청사 모성설이라 무정한 세월이라. 소년향락 짚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인가. 천금준마 잡아타고 장안대도 달이고저 만고강산 조흔 경개 다시 한번 보고지거. 절대가인 졋대두고 백만교태 놀고지거. 화초월색 사시가경 눈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업고 들을 수 업서 알일 업는 일이로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데로 가겟난고. 구추단풍 입진 듯이 선아선아 덜어지고 새벽하날 별진 듯이 삼오삼아 실어지니 가던 질이 어듸맨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인가 하노라.’
한참 이리 할제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부먹새 담부먹새.’
갈멍덕 숙여쓰고 두던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뭉이 더듬더니 가죽쌈지 빼여노코 담배에 세우 침을 뱉어 엄지가락이 잡바라지게 비빗비빗 단단이 너허 집불을 뒤져노코 화로에 푹질러 담부를 먹는듸,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색기 소리가 나것다. 양볼태기가 오목오목 코궁기가 발심발심, 연기가 홀홀나게 푸여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하기는 공성이 낫제,
‘저 농부 말 좀 물어보면 조커꾸만.’
‘무삼 말.’
‘이골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들어 뇌물을 만이 받어묵고 민정이 작폐한단 말이 올흔지.’
저 농부 열을 내여,
‘게가 어데 삽나.’
‘아무듸 사든지.’
‘아무듸 사든지라니, 게는 눈콩알 귀꽁알이 업나. 지금 춘향이는 수청 아니 든다 하고 형장맞고 갇쳣스니 창가에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설같은 춘향 몸에 자네같은 동냥치가 누설을 지치다는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뒤여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 놈의 자식은 일거후 무소식하니 인사가 그러코는 벼살은커니와 내○도 못하제.’
‘어 그게 무슨 말인가.’
‘웨 어찌 됩나.’
‘되기야 어찌 되야마는 남의 말로 구습을 넘어 고약히 하는고.’
‘자네가 철모르는 말을 하매 그러체.’
수작을 파하고 돌아서며,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하오.’
‘예.’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히 하나 오는듸 주령막대 끄으면서 시조 절반 새살 절반 섞어 하되,
‘오날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을 며칠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의 월강하던 천총마가 잇거드면 금일로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야 옥중에 갇치여서 명재경각 불쌍하다. 몹실 양반 이서방은 일거소식 돈절하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헌가.’
어사또 그말 듣고,
‘이애 어데 잇늬.’
‘남원읍에 사오.’
‘어데를 가늬.’
‘서울 가오.’
‘무삼 일로 가니.’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댁에 가오.’
‘이애 그 편지 좀 보자꾸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 소린고.’
‘글씨 들어보오. 남의 편지 보기도 어렵거든 황차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요.’
‘이애 들어라 행인이 임발 우개봉이란 말이 잇나니라. 좀 보면 관계하냐.’
‘그 양반 몰골은 숭악하구만 문자 속은 기특하오 얼풋 보고 주오.’
‘호로자식이로고.’
편지받어 떠여보니 사연에 하엿스되,
일차이별후 소식이 격조하니 도령님 시봉체후만안하옵신지 원체복모하옵내다. 천첩춘향은 침대뇌상에 관봉치패하고 명재경각이라 지어사경에 혼비황릉지묘하야 출몰귀관하니 첩신이 취유만사나 단지 열불이경이요 첩지사생과 노모형상이 부지하경이오니 서방님 심량처지하옵소서,
편지 끝에 하엿스되,
거세하시군별첩
작기동설우동추라.
광풍반야우여설하니
하위남원옥중퇴라.
혈서로 하엿는듸, 평사낙안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도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듯거니 맺거니 방올방올이 떨어지니 저 아히 하는 말이,
‘남우 편지 보고 웨 우시요.’
‘엇다 이애 남우편지라도 설운사정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여보 인정 잇는체 하고 남우 편지 눈물묻어 찌여지요. 그 편지 한장 값이 열닷냥이요. 편지값 물어내오.’
‘여바라 이도령이 날과 죽마교우 친고로서 하향에 볼 일이 잇서 날과 함끼 나려오다 완영에 들럿스니 내일 남원으로 만나자 언약하엿다. 나를 따라가 잇다가 그 양반을 뵈와라.’
그 아히 방색하며,
‘서울을 저 건네로 알으시요.’
하며 달려들어,
‘편지 내오.’
상지할제, 옷 앞자락을 잡고 실난하며 살펴보니 명주견대를 허리에 둘럿는듸 제기접시 같은 것이 들엇거늘 물러나며,
‘이것이 어듸서 낫소. 찬 바람이 나오.’
‘이놈 만일 천기누설하여서는 생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제 전석퇴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옛보던 산이요 물도 옛보던 물이라. 남문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잇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구매고 노던데요,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발싯던 청계수라 녹수진경 너룬 길은 왕래하던 옛길이요, 오작교 다리밑에 빨래하는 여인들은 계집아히 석겨앉어
‘야야.’
‘웨야.’
‘애고애고 불쌍터라. 춘향이가 불쌍터라. 모지더라 모지더라 우리 골사또가 모지더라. 절개높은 춘향이를 위력겁탈 하려 한들 철석같은 춘향 마음 죽는 것을 세아릴까. 무정터라 무정터라 이도령이 무정터라.’
저의찌리 공론하며 추적추적 빨래하는 모양은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능파 추경홍 심요연 가춘운도 같다마는, 양소유가 업섯스니 뉘를 보자 앉엇는고. 어사또 누에 올라 자상이 살펴보니 석양은 재서하고 숙조는 투림할제 저 건네 양류목은 우리 춘향 근듸매고, 오락가락 노던 양을 어제 본듯 반갑도다. 동편을 바래보니 장림심처 녹림간에 춘향 집이 저기로다. 저 안에 내동원은 예보던 고면이요 석벽에 험한 옥은 우리 춘향 우니난듯 불쌍코 가긍하다. 일락서산황혼시에 춘향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엇는듸, 옛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여 추레하고 서 잇거늘, 단장 밑에 백두룸은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틔 물렷는지 짓도 빠지고 다리를 칭금낄룩 뚜루룩 우름울고, 비창전 누린 개는 기운 업서 조우다가 구면객을 몰라보고 꽝꽝 짖고 내달으니,
‘요개야 짖지 마라. 주인같은 손님이다. 네의 주인 어데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중문을 바래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충자 완여터니 가온대 중은 어데가고 마음심자만 남어 잇고, 와룡장자 입춘서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도와낸다. 그렁저렁 들어가니 내정은 적막한듸 춘향의 모 거동보소. 미음 솥에 불 너으며,
‘애고애고 내 딸 일이야. 모지도다 모지도다 이서방이 모지도다. 위경 내 딸 아조 잊어 소식조차 돈절하네. 애고애고 서룬지거. 향단아 이리 와 불 너어라.’
하고 나오더니 울안 개울물에 흰 머리 감아 빗고 정화수 한 동우를 단하에 받쳐노고 복지하야 축원하되,
‘천지지신일월성신은 하위동심하옵소서. 다만 독녀 춘향이를 금쪽같이 질러내여 외손봉사 바랫더니 무죄한 매를 맞고 옥중에 갇쳣스니 살릴길이 업삽내다. 천지지신은 감동하사 한양성 이몽룡을 청운에 높이 올려 내 달 청춘 살려지다.’
빌기를 다한 후에,
‘춘향아 담부 한 대 붙여다구.’
춘향모 받아물고 후유한심 눈물질제, 이때 어사 춘향모 정성보고,
‘내의 벼살한게 선영음덕으로 알엇더니 우리 장모 덕이로다.’
하고,
‘안에 뉘 잇나.’
‘뉘시요.’
‘내로세.’
‘내라니 뉘신가.’
어사 들어가며,
‘이서방일세.’
‘이서방이라니 올체, 이풍헌 아들 이서방인가.’
‘허허 장모 망영이로세. 나를 몰라 나를 몰라.’
‘자네가 뉘기여.’
‘사위는 백년지객이라 하엿시니 어찌 나를 모르난가.’
춘향의 모 반거하야,
‘애고 애고 이게 웬 일인고. 어데갓다 인자와 풍세대작터니 바람결에 풍겨온가. 봉운기봉터니 구름 속에 싸여온가. 춘향의 소식듣고 살리랴고 와 계신가. 어서 어서 들어가세.’
손을 잡고 들어가서 촛불 앞우 앉혀노코 자서이 살펴보니, 걸인중에는 상걸인이 되얏구나.
춘향의 모 기가 맥혀,
‘이게 웬 일이요.’
‘양반이 그릇되매 성언할 수 업네. 그때 올라가서 벼살길 끈어지고 탕진가산하야 부친께서는 학장질가시고 모친은 친가로 가시고, 다 각기 갈리여서 나는 춘향에게 나려와서 돈천이나 얻어갈까 하엿더니, 와서 보니 양가 이력 말이 아닐세.’
춘향의 모 이말 듣고 기가 막혀,
‘무정한 이 사람아 일차이별후로 소식이 업섯스니 그런 인사가 잇시며, 후긴지 바랫더니 이리 잘 되얏소. 쏘와논 살이 되고 엎지러진 물이 되야 수원수구를 할까마는 내 딸 춘향 어쩔남나.’
화짐에 달려들어 코를 물어 뗄라 하니,
‘내 탓이제 코 탓인가. 장모가 나를 몰라보네. 하날이 무심태도 풍운조화와 뇌성 전기는 잇나니.’
춘향모 기가 차서,
‘양반이 그릇되매 갈농조차 들엇구나.’
어사 짐짓 춘향모의 하는 거동을 보랴 하고,
‘시장하여 내 죽것네. 날 밥 한술 주소.’
춘향모 밥달라는 말을 듣고,
‘밥업네.’
어찌 밥 업실꼬마는 화김에 하는 말이엿다.
이때 향단이 옥에 갓다 나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소래에 가삼이 우둔우둔, 정신이 월렁월렁, 정처업시 들어가서 가만이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겻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향단이 문안이요.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옵시며 대부인기체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이 행차하시닛까.’
‘오냐 고상이 어떠하냐.’
‘소녀 몸은 무지하옵내다. 아씨 아씨 큰아씨, 마오 마오 그리마오. 멀고먼 천리질에 뉘 보랴고 와겨관듸 이 괄세가 웬 일이요.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러 야단이 날 것이니 너머 괄세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초 저리짐채 양념너코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반에 받쳐 듸리면서,
‘더운 진지 한 동안에 시장하신듸 우선 요구하옵소서.’
어사또 반기하며,
‘밥아 너 본제 오래구나.’
여러가지를 한태다가 붓더니 숟가락 댈것 업시 손으로 뒤져서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맛파람에 게눈 감추덧 하는구나. 춘향모 하는 말이,
‘얼시고 밥 빌어먹기는 공성이 낫구나.’
이 때 향단이는 저의 애기씨 신세를 생각하여 크게 우든 못하고 체읍하여 우는 말이,
‘어찌 할끄나, 도덕 높은 우리 애기씨를 어찌하여 살리시랴오. 엇저끄나요 엇저끄나요.’
심성으로 우는 양을 어사또 보시더니 기가 막혀,
‘여바라 향단아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의 아기씨가 설마 살지 죽을소냐. 행실이 지극하면 사는 날이 잇나니라.’
춘향모 듣더니,
‘애고 양반이라고 오기는 잇서서.’
‘대체 자네가 웨 저 모양인가.’
향단이 하는 말이,
‘우리 큰아씨 하는 말을 조금도 과렴마옵소서. 나만 하야 노망한 중에 이일을 당해노니 화짐에 하는 말을 일분인들 노하릿까. 더운 진지 잡수시요.’
어사또 밥상 받고 생각하니 분기탱천하야 마음이 울적 오장이 월렁월렁 석반이 맛이 업서,
‘향단아 상 물려라.’
담붓대 툭툭 털며,
‘여보소 장모 춘향이나 좀 보아야제.’
‘글헛지요, 서방님이 춘향이를 아니 보와서야 인정이라 하오릿까.’
향단이 여짜오되,
‘직금은 문을 닫엇스니 파루치거든 가사이다.’
이 때 마침 바래를 뎅뎅치는구나. 향단이 미음상 이고 등롱들고 어사또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니 인적이 고요하고 사정이도 간 곳 업네.
이 때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서방님이 오셧는듸 머리에는 금관이요, 몸에는 앵삼이라. 상사일념에 목을 안고 만단정회 하는 차라.
‘춘향아.’
부른들 대답이나 잇슬소냐. 어사또 하는 말이,
‘크게 한번 불러 보소.’
‘모르는 말쌈이요. 에서 동헌(동원)이 마조치는듸 소래가 크게 나면 사또 염문할 것이니 잠간 지체하옵소서.’
‘무어 엇대 염문이 무엇인고. 내가 부를 게 가만 잇소. 춘향아.’
부르난 소래에 깜짝 놀래여 일어나며,
‘허허 이 목소래, 잠결인가 꿈결인가. 그 목소래 고이하다.’
어사또 긔가 막혀,
‘내가 왓다고 말을 하소.’
‘왓단 말을 하거드면 기절담락할 것이니 가만이 계옵소서.’
춘향이 저의 모친 음성듣고 깜짝 놀래어
‘어마니 어찌 와겻소. 몹쓸 딸 자식을 생각하와 천방지방 다니다가 낙상하기 쉽소. 일훌낭은 오실라 마옵소서.’
‘날랑은 염려말고 정신을 차리여라. 왓다.’
‘오다니 뉘가 와요.’
‘그저 왓다.’
‘각갑하여 나 죽엇소. 일러주오. 꿈 가온데 님을 만나 만단정회 하엿더니 혹시나 서방님께서 기별왓소. 언제 오신단 소식왓소. 벼살 띄고 나려온단 노문왓소. 애고 답답하여라.’
‘네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이 나려왓다.’
‘허허 이게 웬 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몽중에 보던 님을 생시에 보단말까.’
문 틈으로 손을 잡고 말 못하고 기절하며,
‘애고 이게 뉘기시요. 아매도 꿈이로다. 상사불견 기룬 님을 이리 수이 만날손가. 이제 죽어 한이 업네. 엇지 그리 무정한가. 박명하다 내의 모녀 서방님 이별 후에 자나 누나 님 기루어 일구월심 한일느니 이내 신세 이리되야 매에 감겨 죽게 되니 날 살리랴 와겨요.’
한참 이리 반기다가 님의 형상 자시 보니 어찌 아니 한심하랴.
‘여보 서방님 내 몸 하나 죽은 것은 서른 마음 업소마는 서방님 이 지경이 웬일이요.’
‘오냐 춘향아 서러 마라. 인명이 재천인데 설만들 죽을소냐.’
춘향이 저의 모친 불러,
‘한양성 서방님을 칠년대한 가문 날에 갈민대우 기두린들 날과 같이 자진턴가. 심근 이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졋네.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할일 업시 되얏구나. 어마님 나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업게 하옵소서. 나 입던 비단장옷 봉장 안에 들엇스니 그 옷 내여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곱게 도포짓고 백방사 주진초매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망건 신발 사 듸리고, 절병천은 비내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엇스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찬케 하여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두어 무엇할까, 용장 봉장 빼다지를 되는대로 팔어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업다 마르시고 날본닷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 들으시요. 내일이 본관사또 생일이라 취중에 주망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인다리 장독이 낫시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허트러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피하여 죽거들란, 삯군인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둘이 처음 만나노던 부용당에 적막하고 요적한데 뉘여노코 서방님 손소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끝에 묻엇다가 서방님 귀히 되야 청운에 오르거던 일시도 둘라말고 육진장포 개렴하야 조촐한 상예우에 덩글어케 시른 후에 북망산천 찾어갈제 앞남산 뒷남산 다 바리고 한양으로 올려다가 선산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야달자만 새겨주오. 망부석이 아니될까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려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주오, 애고애고 내 신세야. 불쌍한 내의 모친 나를 일코 가산을 탕진하면 할일 업시 걸인되야 이집 저집 걸식다가 언덕 밑애 조속조속 조을면서 자진하야 죽거드면 지리산 갈가무개 두 날개를 떡 버리고 둥덩실 날아들어 까옥까옥 두 눈을 다 파 먹은들 어느 자식잇서 후여하고 날려주리.’
애고 애고 설이울제,
‘우지 마라 하날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가 잇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러탓이 서러하냐.’
작별하고 춘향집에 돌아왓제. 춘향이는 어둠침침 야삼경에 서방님을 번개같이 얼른 보고 옥방에 홀로 앉어 탄식하는 말이,
‘명천은 사람을 낼제 별로 후박이 업건마는 내의 신세 무삼 죄로 이팔청춘에 님보내고 모진 목숨 살아 이 형문 이 형상 무삼일꼬. 옥중고생 삼사삭에 밤낮 업시 님오시기만 바랫더니 이제는 님의 얼골 보왓스니 광채업시 되얏구나. 죽어 황천에 돌아간들 제왕 전에 무삼 말을 자랑하리.’
애고애고 설이 울제 자진하야 반생반사하는구나.
어사또 춘향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하고 문안 문밧 염문할새, 질청에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여보소, 들으니 수의사또 새문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키여들고 츤향모 앞세우고 폐의파관한 손님이 아매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채 끝에 일십을 귀별하여 생탈업시 십분 조심하소.’
어사 그말 듣고,
‘그놈들 알기는 아는듸.’
하고, 또 장청에 가 들으니 행수군관 거동 보소,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거리 바장이는 노인 실로 고이하네. 아매도 분명 어산듯 하니 용모파기 내여노코 자상이 보소.’
어사또 듣고,
‘그놈들 개개여신이로다.’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한다. 육방염문 다한 후에 춘향집 돌아와서 그 밤을 샌 연후에 이튿날 조사 끝에 근읍수령이 모와든다. 운봉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원님의 차례로 모와든다. 좌편에 행수군관 우편에 현령사령 한가온대 본관은 주인이 되야 하인불러 분부하되 관청색불러 다담상을 올리라, 육고자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불러 잡인을 금하라. 이러탓 요란할제 기치군물이며 육각풍류 반공에 떠잇고, 녹의홍상 기생들은 백수나삼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야자 둥덩실 하는 소래 어사또 마음이 산란하구나.
‘여바라 사령들아 네의 원전에 여쭈어라. 먼듸 잇는 걸인이 조흔 잔채에 당하엿스니 주회 좀 얻어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늬 양반이간듸 우리 안전님 걸인혼금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밀쳐내니, 어찌 아니 명관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람누하나 양반의 후옌듯 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이 하는 말이,
‘운봉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래 훗입맛이 사납것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래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야,
‘제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하야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에 모든 수령 다담을 앞우 노코 진양조가 양양할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저붐 콩나물 깍대기 목걸리 한사발 노왓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대 먹고지거.’
‘다라도 잡수시요.’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채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 한수씩 하여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올타 하니, 운봉이 운을 낼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도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엇더니 조은 잔채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을 내어주니 좌중이 다 못하야 글 두 귀를 지엇스되 민정을 생각하고 본관정체를 생각하야 지엇것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낙시민루낙이요,
가성고처원성고라.
이 글 뜻은 금동우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고대 원망 소래 높앗더라. 이러탓이 지엇스되 본관은 몰라보고 운봉이 글을 보며 내념에,
‘업풀사 일이 낫다.’
이 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낫다. 공방불러 포진단속, 병방불러 역마단속, 관청색불러 다담단속, 옥형이 불러 죄인단속, 집사불러 형고단속, 형방불러 문부단속, 사령불러 합번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제 물색업는 저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대를 다니시요.’
‘소피하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이를 급히 올리라. 주광이 날제, 이 때 어사또 군호할제 서리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불러 단속할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 수군. 서리역졸 거동보소. 외올망건 공단쌔기 새펴립 눌러쓰고 석자감발 새짚신에 한삼 고의 산뜻 입고 육모방치 녹피끈을 손목에 걸어쥐고, 예서 번듯 제서 번듯 남원읍이 우군우군. 청파역졸 거동 보소. 달같은 마패를 해빛같이 번듯 들어,
‘암행어사출도야.’
웨는 소래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듯 초목금순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서문 출도 소래 청천에 진동하고, 공형들나 웨는 소래 육방이 넋을 일어,
‘공형이요.’
등채로 휘닥닥,
‘애고 중다.’
‘공방, 공방.’
공방이 보전들고 들어오며,
‘안할랴는 공방을 하라더니 저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휘닥닥,
‘애고 박터졋네.’
수좌 별감 넋을 일코, 이방 호장 실혼하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제 거동 보소. 인궤 일코 과절들고, 병부 일코 송편들고, 탕근일코 용수쓰고, 갓일코 소반쓰고, 칼집쥐고 오줌뉘기, 부서지니 문고요 깨지나니 북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궁기 새양쥐 눈뜨듯 하고 내아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들어온다 바람닫어라. 물마른다 목듸려라.’
관청색은 상을 일코 문짝니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휘닥닥,
‘애고 나 죽네.’
이 때 수의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를 금하고 객사로 사처하라.’
좌정 후에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파직이요 사대문에 방붙이고 옥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골 옥수를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 후에 무죄자 방송할새,
‘저 계집은 무엇인다.’
형리 여짜오대,
‘기생월매 딸이온듸 관정에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잇삽내다.’
‘무삼 죈다.’
형리 아뢰되,
‘본관사또 수청으로 불럿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랴 하고 관청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년이 수절한다고 관정포악하엿스니 살기를 바랠소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마닥 개개이 명관이로고나. 수의사또 듣조시요, 층암절벽 높은 바우 바람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린 이 눈이 온들 변하릿까. 그른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데 계신가 보와라. 어젯밤에 옥문간에 와겻슬제 천만당부 하엿더니 어데를 가셧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골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들어 대상을 살펴보니 걸객으로 왓던 낭군 어사또로 두렷이 앉엇구나. 반웃움 반울음에,
‘얼시구나 조을시고 어사낭군 조을시고, 남원읍내 추절들어 떨어지게 되얏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 날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연여)로다.’
한참 이리 질길 적에 춘향모 들어와서 갓업시 질거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잇게 되얏스니 어찌 아니 조을손가.
어사또 남원공사 닦은 후에 춘향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할제 위의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뉘가 아니 칭찬하랴. 이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새 영귀하게 되얏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가 아니되랴.
‘놀고 자던 부용당아 네부대 잘 잇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도 잘 잇거라.
춘초는 년년 록하되 왕손은 귀불귀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제 만세무량하옵소서.
다시 보기 망연이라.’
이 때 어사또는 좌우도 순읍하야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에 숙배하니 삼당상 입시하사 문부를 사증 후에 상이 대찬하시고 직시 이조참의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사은숙배하고 물러나와 부모 전에 뵈온대 성은을 축사하시더라.
이때 이판호판 좌우영상 다 지내고 퇴사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할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이녀를 두엇시니 개개이 총명하야 그 부친을 압두하고 계계승승하야 직거일품으로 만세유전하더라.
♣ 핵심 정리 ♣ |
▣ 작품 개관
⇒ '춘향전'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 양식으로 설화, 판소리, 소설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한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응하고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단원에서는 '춘향전'을 단순히 문학적 갈래로서 고전 소설이라는 관점에서만 감상할 것이 아니라 언어 자료로서 인물들의 재치와 해학, 표현 방식의 묘미, 인간성을 존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 등 주제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인 부분들을 찾아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통이 막연히 어렵고 쓸모 없으며 골치 아픈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표현이나 사고에 내재해 있는 가치 있는 속성임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 작품은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이야기인 '열녀 설화'를 바탕으로 여러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판소리로 불리어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널리 전파되자, 그 판소리 사설을 소설로 펴낸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오는 동안 한 사람의 지은이가 아닌 여러 사람이 이 이야기의 형성에 관여했 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를 가리켜 적층 문학(積層文學)이라고도 한다. 또, '설화 → 판소리 → 소설'의 순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판소리계 소설'이라고도 한다. 판소리계 소설에는 "춘향전" 이외에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등이 있다.
▣ 작가 : 미상(未詳) - 민중의 적층 문학
◉ 적층문학 ◉ ⇒ 여러 사람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작품을 계속 창작하는 방식. 문자로 기록되지 않는 구비문학(口碑文學)은 구전되면서 여러 사람의 창작이 계속 누적된다. 이것을 적층문학이라고 하며 계속 변하기 때문에 유동문학(流動文學) 또는 표박문학(漂泊文學)이라고도 한다. |
▣ 연대 : 미상(未詳) - 영․정조 시대로 추정
▣ 종류 : 판소리계 사설, 애정 소설
▣ 문체 :
① 운문이 중심이나 부분적으로 산문도 보임
② 호흡이 짧은 어구를 반복하여 역동성을 자아내고 있다.
③ 일상적 언어를 구어체로 사용
④ 전라도 방언을 다수 사용하여 현장감을 높혔다.
▣ 특징 :
① 판소리 특유의 해학(諧謔)과 풍자(諷刺)가 많다.
② 서술자가 인물과 사건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다.
▣ 성격 : 서사적, 운문적, 해학적, 풍자적
▣ 배경 : 조선 숙종조 전라도 남원과 한양
▣ 사상 : 인간 평등사상, 사회 개혁 사상, 자유 연애 사상, 열녀불경이부 사상
▣ 설화 : 열녀 설화, 염정 설화, 암행어사 설화, 신원 설화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① 소재의 현실성 - 당대 사회의 현실적인 생활에서 취재
② 표현의 사실성 - 장면과 인물 등의 묘사가 사실적임
③ 배경의 향토성 -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함
④ 성격의 창조성 - 각 계층 인물들의 전형적인 성격을 잘 창조
⑤주제의 저항성- 실학사상과 근대 정신의 영향으로 성장하던 서민의식 표현
▣ 주제 : 신분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 불의(不義)한 지배 계층에 대한 서민의 항거
▣ 춘향전의 형성 과정
근원설화 |
|
판소리 |
|
고전소설 |
|
신소설(이해조) |
남원추녀 설화, 암행어사 설화, 관탈민녀형설화, 신원설화 |
→ |
춘향가 |
→ |
춘향전 |
→ |
옥중화 |
구토지설 |
→ |
수궁가 |
→ |
별주부전 |
→ |
토의간 |
방이 설화, 박타는 처녀 설화 |
→ |
박타령 흥부가 |
→ |
흥부전 |
→ |
연의각 |
맹인개안설화,효행설화,용궁설화 환생설화,효녀지은 설화, 거타지 설화 |
→ |
심청가 |
→ |
심청전 |
→ |
강상연 |
☺ 감상의 길잡이 ☺ |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작자·연대 미상. 현재 국문본·한문본·국한문혼용본 등 70여 종에 달하는 이본이 전한다. 전라도 남원의 기생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남모르는 사랑을 계속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지조를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신관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서울로 올라가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시대에 생성되어 개화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구전과 필사본으로 전해오다가 독자들의 요구가 증대하면서 목판본과 활자본 등으로 출간되었다. 이에 따라 그 내용이 늘어나기도 하고 축약되기도 하면서 내용과 형식상의 변모가 있었다. 그리하여 경판 16장과 같이 불과 7,000자 안팎의 짧은 이본이 있는가 하면, 완판 84장본같이 2만 자 정도의 긴 작품도 있고, 필사본 〈남원고사 南原古詞〉처럼 무려 10만 자에 이르는 장편도 있다. 이 작품의 개작과정에서 일어난 변모는 단지 내용전개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작품의 양식에서도 보인다. 이 작품은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판소리·희곡·시나리오·오페라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개작되었다. 이에 따라 제목도 〈춘향전〉·〈춘향가〉·〈열녀춘향수절가〉·〈광한루기 廣寒樓記〉·〈광한루악부 廣寒樓樂府〉·〈남원고사〉·〈옥중화 獄中花〉·〈옥중가인 獄中佳人〉 등으로 다르게 붙여졌다.
〈춘향전〉은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작품의 근원설화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는데, 작품의 근간을 이룬 설화로는 〈박색터설화〉·〈암행어사설화〉를 들 수 있다. 〈박색터설화〉는 일명 〈신원설화 伸寃說話〉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원지방에 추하게 생긴 기생이 있었는데 너무나 박색이라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냇가에 빨래하러 나갔다가 마침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또의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남몰래 그를 사모하게 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병이 되어 죽게 되었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를 소원했으나 끝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기생은 한을 품고 죽었고, 그후 남원지방에는 가뭄이 들어 3년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 사또가 그 사정을 알고 기생의 혼을 달래는 굿을 했더니 비가 왔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춘향전〉의 전반부와 일치한다. 〈암행어사설화〉는 양반 자제와 지방의 기생 사이에 일어난 연애담으로서 노진·성이창·박문수 등 실존 인물과 관련된 설화이다. 양반의 자제가 어떤 연유로 시골에 갔는데 어린 기생을 사귀다가 헤어지게 된다. 기생은 양반의 자제와 사귄 이후로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다. 그러다가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양반 자제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인데, 〈춘향전〉의 전체 줄거리와 대체로 일치한다. 〈춘향전〉에는 이 2가지 설화 외에도 다른 많은 국내외의 설화들이 수용되어 있으며, 그 양상은 이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춘향전〉은 유동(流動)의 문학, 적층(積層)의 문학으로서 개방성을 가진다. 이 작품은 구전설화를 근원으로 해서 흘러다니다가 문자로 정착되었고, 이후에도 구전설화·소설·판소리 등의 형태로 끊임없이 유동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쌓이고 덧붙여지게 되는데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받아들였다. 한시·시조·가사·속담·서간문·민요 등 여러 형식의 문학양식이 다양하게 수용되어 있다. 따라서 문체도 복합적 성격을 보이고 있어서 양반사회의 고상한 어투와 서민사회의 상스러운 어투가 혼재한다.
〈춘향전〉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여인의 정절을 고취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부정한 관리에 대한 저항으로 보기도 하며, 남녀간의 사랑으로 보기도 한다. 한 작품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견해가 나오게 된 것은 작품을 보는 시각과 이본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초기의 경판계 이본에서는 춘향의 정절을 강조하는 데 반해 그후에 나온 판소리계 이본에서는 부정한 관리에 대한 저항의식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후대의 개화기 이본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 속에는 위의 3가지 측면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지만, 정절과 저항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작품은 일관성의 결여, 논리의 상실 등 몇 가지 결함을 가진 것으로 지적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서민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첫째, 서민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취택하고 있고, 둘째, 서민사회의 예술양식인 설화와 판소리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셋째, 서민사회의 꿈과 정서를 절실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국서민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새롭게 개작되면서 작품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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