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향수-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국어의 시작과 끝 2012. 4. 3. 03:57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작품감상>

정지용의 초기 이미지즘 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동원․ 박인수에 의해 노래로 불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제목 그대로 도회지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 시인이 고향(충북 옥천군)의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아마도 다음 세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애틋한 향수를 자아내는 전원 풍경이 농경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쉽게 공감을 줄 수 있었다. 둘째 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이 작품이 은연중에 국권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민족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이 시를 단순한 전원시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노래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시는 허다하며, 당연히 이 점만으로 이 시에 대한 높은 문학적 평가와 대중적 인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 작품의 성가를 높인 중요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향수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형상화 방법이 매우 ‘모던(modern)’하다는 점이다. 전원 풍경을 담아내는 세련된 감각을 제외하고 이 작품의 의의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먼저 이 시에는 하나의 사건이 통일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즉 각 연의 내용이 인과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형식이 아니다. 각 연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나름대로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유사한 내용으로 몇 연을 추가해도 틀이 흔들리지 않는다) 각 연을 이 회상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단시(短詩)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각 장면은 통일적인 이미지를 유지한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구절의 삽입이 그 통일성 유지의 거멀못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회화성 짙은 이 작품에 리듬(음악성)을 부여하는 기능도 한다. 이 모두가 시인의 치밀한 기획의 결과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시의 현대적인 감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매우 감각적인 표현 수법에서 찾아진다. 먼저 원경 묘사로 이루어진 제1연에서 회상되는 고향 풍경의 중심점은 ‘실개천’과 ‘얼룩배기 황소’이다. 시인은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이 옛이야기를 지절거린다고 했다. 또 황소의 울음소리를 ‘금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청각적인 이미지로 전이시켜 표현하는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단조로울 수도 있는 풍경 묘사가 생동감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황금 들녘을 연상케 하는 ‘금빛’과 한가로움을 연상케 하는 ‘게으름’을 연결시킨 것도 절묘하다.

다음 제2연의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는 시인의 감각적인 표현 수법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확인케 한다. 이 소리는 정지된 시각적 이미지로 전이(轉移)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영상 차원에 이르고 있다. 바람의 형상을 말갈기의 생동감 넘치는 영상과 대응시키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절묘한 자음과 모음의 사용을 통해, 음악적으로 그 생동감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빈밭’과 ‘밤바람’의 사이에 사용된 시어에는 무려 네 개의 ‘ㅂ’자음이 나타나고, 그것은 속도감 있게 달리는 말의 발, 즉 바람 소리의 움직임을 청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밤바람’에서 ‘달리고’의 사이에 사용된 시어에는 ‘ㅏ’ 모음이 무려 다섯 개나 사용되면서 길고 힘있게 뻗는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 이 연에서 때로 긴장되고 때로 이완되는 겨울 밤바람의 동영상이 마치 귓전을 스치듯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개 우리 시가 운율을 살리기 위해 자수율에만 의존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인의 감각이 얼마나 수준 높은 것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제3연은 동화 속의 아름다운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제2연의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장면(정겨운 풍경이긴 하지만)이 갖는 구태(舊態)가 싹 가시는 청신한 풍경 묘사이다. 성인이 된 자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고향은 유년의 꿈이 배인 공간이기 때문인 것이다. 파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면서 풀 섶을 뛰어다니던 유년의 추억이 배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고향의 추억이 늘 이렇게 평화로운 곳만은 아니다. 제4연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고향 역시 삶의 공간이다.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는 아내의 노동은 고향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고향은 유년의 꿈과 현실의 고된 노동이 병존하는 공간인 것이다. 시인은 이 두 장면을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묘사함으로써, 제1,2연의 현재 상황과 대비시키고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 고향의 모습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논리에 따를 때에만 그렇다. 일정한 시간적 거리감이 개입하여 추억의 대상이 될 때, 고향의 초라한 지붕도 정겨움의 대상일 뿐이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시인이 갈구하는 안온함, 가족이 둘러앉아 정답게 도란 도란거리는 안온함이 있기 때문이다. (제5연)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현대인에게는 마음 편히 쉴 정신적 안식처가 절실한 것이고,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고향 풍경은 그것의 전형적인 한 모델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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