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부정 표현의 이해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24. 23:43

 

부정 표현

 

부정 표현이란 긍정 표현에 대하여 언어 내용의 의미를 부정하는 문법 범주를 말한다. 국어에서는 부정 부사 ‘안, 못’과 부정 용언 ‘아니하다, 못하다’를 사용하여 부정 표현을 만들 수 있다. 또 명령, 청유문에서는 ‘말다’를 사용하여 부정 표현을 할 수 있다.

 

 

① 긴 부정문(=장형 부정문)과 짧은 부정문(=단형 부정문)

 

 

㉠ 동생은 학교에 가지 아니하였다./그는 돈을 빌리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 바빠서 동창회에 가지 못했다./ 배가 아파 밥을 먹지 못했다.

㉢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안 만나겠다./그가 죽었지만, 조금도 아니 슬프다.

㉣ 시끄러워서 잠을 통 못 잤다./그는 초등학교도 못 마쳤다.

㉥ * 저는 안 낙제했어요. / * 살림이 아직도 못 넉넉하니? 

 

 

우선 ㉠, ㉡은 긴 부정문이다. ‘용언의 어간 + -지 + ‘아니하다’ 또는 ‘용언의 어간 + -지 + ‘아니하다’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은 짧은 부정문이다. 그런데 ㉥의 경우에서 보듯 짧은 부정문에는 긴 부정문과 달리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로 보아 국어의 부정 표현은 장형 부정문이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예문에서 보듯, ‘않다’와 ‘못하다’는 뜻하는 바가 다르다. 전자는 화자의 의지로 그런다는 뜻을 표현하는데 반해, 후자는 능력이 없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자를 ‘의지(意志) 부정(否定)’이라 하고, 후자를 ‘능력(能力) 부정(否定)’이라 한다.

 

 

 

② ‘말다’ 부정문

 

부정 표현에도 일종의 영역 분담이 이루어진다. 청유문이나 명령문에서는 ‘않다’나 ‘못하다’가 쓰이지 못한다. 이 영역은 ‘말다’가 전담한다.

 

휴지를 함부로 버리지 마라./꽃을 꺾지 마시오./거기는 가지 말자./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위의 예들은 명령문과 청유문에서 ‘말다’가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억해 둘 것은 명령형 어미 ‘-아(라)’가 결합하는 경우 ‘말아, 말아라’가 아닌 ‘마, 마라’가 된다는 점이다. “가지 말아.”는 “가지 마.”로, “떠들지 말아라.”는 “떠들지 마라.”로 써야 옳다. 그렇지만 ‘-(으)라’가 결합하는 경우에는 ‘말라’가 된다. “늦게 다니지 말라고 말했다.”의 ‘말라고’는 ‘말-+-으라고’의 구조이기 때문에 ‘마라고’가 되지 않는다.

 

 

③ 특수 부정사

 

국어에는 ‘않다’, ‘못하다’, ‘말다’ 외에 몇 개의 특수 부정사(否定辭)가 있다. ‘없다’, ‘모르다’, ‘아니다’가 그 예인데, 이들은 긍정문의 서술어를 살려 둔 채로 부정어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통째로 서술어를 교체해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부정 표현이다.

 

 

㉠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다. ↔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

㉡ 그는 서울 지리를 잘 안다. ↔ 그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 여기는 할아버지 산소이다. ↔ 여기는 할아버지 산소가 아니다.

 

 

㉠은 ‘있다’의 부정으로 ‘없다’가 사용되고 있는 예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은 ‘있다’에는 동사와 형용사가 있는데, ‘없다’는 형용사의 부정 표현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있다’가 동사로 쓰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의 경우는 ‘없다’가 부정사 노릇을 할 수 없다.

 

내가 갈 테니 너는 학교에 있어라./그는 내일 집에 있는다고 했다./딴 데 한눈팔지 말고 그 직장에 그냥 있어라./떠들지 말고 얌전하게 있어라./가만히 있어라./우리 모두 함께 있자./모두 손을 든 상태로 있어라./배가 아팠는데 조금 있으니 곧 괜찮아지더라./앞으로 사흘만 있으면 추석이다.

 

 

㉡은 ‘알다’의 부정 표현으로 ‘모르다’가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대체로 ‘알지 못하다’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며, 큰 의미 차이도 없다.

 

 

㉢은 ‘아니다’가 ‘이다’의 부정사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이다’ 자리에 ‘아니다’가 들어가려면, ‘이다’ 자리에 주격 조사를 하나 넣어 주어야 한다. 이는 ‘이다’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생긴 일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니? 아니니?”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며, “기니? 아니니?”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④ 부정 표현의 범위와 중의성

 

 

㉠ 철수가 이 책을 사지 않았다.

㉡ 주문한 물건이 모두 오지 않았다.

 

 

㉠, ㉡ 모두 부정 표현인 것은 맞지만, 부정의 범위는 확실하지 않다. ㉠의 경우 ‘않다’가 부정하는 것이 ‘철수’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으며, ‘사다’일 수도 있다. ㉡처럼 수량 표현(←‘모두’)이 포함된 문장은 더욱 그러하다. 온 것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일부는 오고 일부는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전체 부정’일 수도 있고 ‘부분 부정’일 수도 있다. 물론 부정문의 중의성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맥을 통한 방법, 강세를 통한 방법, 부정하고자 하는 단어에 보조사 ‘는, 도, 만’을 결합시키는 방법 등이 있다.  

 

 

 

⑤ 반어적 부정문

 

형식상 부정문이라고 해서 모두 부정의 내용을 담는 것은 아니다. 부정문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긍정의 뜻을 나타내는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반어적 부정문이다.

 

 

㉠ 내가 말했잖아. 일이 생각만큼 어려울 거라고 하지 않았니?

㉡ 조그마한 일을 그렇게 뻥튀기해서 말하면 남들이 놀라잖니?

 

 

 

㉠의 경우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하지 않았지?’가 아니라 ‘했지?’이다. 어떤 사태를 반어적 기법으로 강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받아들이게 하는 용법이라 할 수 있다. ㉡의 경우는 ‘-잖-’이 ‘-지 않-’의 준말이므로 결국 반어적 부정문에 해당한다. 결국 이 경우도 ‘놀라지 않지?’가 아니라, ‘놀라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환상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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