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속격, 관형격 조사 '의'에 대하여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6. 15:00

 

명사와 명사 사이에 나타나 두 명사를 더 큰 명사구로 묶어주는 조사 ‘의’를 흔히 속격(屬格) 또는 소유격(所有格)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고 하여 속격조사, 또는 소유격 조사라고 한다. 이처럼 더 큰 명사구를 이룰 때, ‘의’는 앞 명사로 하여금 뒤의 명사를 수식하는 구실을 하게 한다. 이 때문에 ‘의’는 관형격조사라 불리기도 한다.

 

속격과 소유격은 일차적으로 한 명사가 다른 명사에 소속되는(또는 소유되는)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로 묶어지는 두 명사(구)의 의미 관계는 반드시 소유주와 피소유물의 관계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면 ‘하나의 목표’라는 명사구에서 ‘목표’가 ‘하나’에 속해 있다든가, ‘독서의 계절’라는 명사구에서 ‘계절’이 ‘독서’에 소속되는 관계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속격은 전통적으로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격(格)’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격은 원칙적으로 명사가 서술어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를 나타내 주는 문법범주다. 이 점에서 속격은 격 중에서 예외적인 존재다. 속격은 명사와 명사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심층격(深層格)을 중시하는 격문법 체계에서 속격을 격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에 말미암는다. 심층에서는 앞 명사와 어떤 서술어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격이 표면에서는 ‘의’로 변형(變形)을 일으켰다고 해석하여 속격을 인정치 않는 것이다.

 

백마고지 전투

(a) 김 군의 논문은 매우 훌륭하다.

(b) 백마고지의 탈환은 대단한 전과였다.

 

 

 

위의 예에서 ‘김 군의’는 ‘김 군이 쓴’과 관련되는 것으로 심층에서는 주어이며, ‘백마고지의’는 ‘백마고지를 탈환’으로 풀어 심층에서는 목적어로 이해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의’에 의해서 묶이는 두 명사의 관계는 상당히 여러 가지로 상정할 수 있다. 또 때로는 심층의 어느 한 가지 격으로 한정시켜 해석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심층격 때문에 속격을 격으로 인정치 않는 입장보다는 속격을 독립된 격의 하나로 인정하고, 그 기능을 두 명사구를 보다 큰 명사구로 묶는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c) 학생으로서의 본분

(d)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e) 적지에서의 승리

 

 

위의 예문들은 조사가 결합된 명사구에 다시 ‘의’가 결합된 구성으로 예전에는 없던 일종의 번역투이다. 그래서 ‘학생의 본분’, ‘일상의 탈출’, ‘적지에서 거둔 승리’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논란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적지의 승리’나 ‘적지에서 거둔 승리’가 주지 못하는 효용이 있어 ‘적지에서의 승리’ 류는 자리를 잡아 가고 있으며, 심지어 ‘맏아들에의 기대’와 같은 표현도 쓰이고 있다. 그것은 어떻든 이 구성의 ‘의’는 두 명사구를 한 명사구로 묶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