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음운의 개념-음성, 음소, 운소, 음운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6. 23:58

 

음운의 개념-음성, 음소, 운소, 음운

 

 

언어는 말소리와 의미의 결합체이다. 이 때 말소리를 음성(音聲)이라고 한다. 자연계에는 많은 소리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사람의 발음 기관으로 내는 소리를 음성 또는 언어음(言語音)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음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즉 음성은 다양한 음가(音價)로 실현된다. 예를 들면, ‘학교’라는 단어의 현실 발음은 매우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핵교]’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고, 기분에 따라 ‘[학꾜]’라고 발음하기도 하며, ‘[학교]’라고 발음하는 경우에도 기분에 따라 발음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음성의 음가가 다양하더라도 각각의 말들이 말의 뜻을 구별하여 인식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자다’를 사람마다 조금씩 달리 발음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그것을 ‘짜다’나 ‘차다’로 듣지는 않는다. 즉 ‘ㄱ’의 다양한 음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ㄲ’이나 ‘ㅋ’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면, 모두 ‘ㄱ’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같은 소리로 인식하는 소리를 음소(音素)라고 한다. ‘감기’를 문자로 쓸 때, 서로 다른 필기구를 이용하여 써도, 각기 다른 개성적인 필체로 써도 모두 같은 말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다.

 

이 점에서 음성은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소리로 어느 언어에서나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나, 추상적으로 인식하는 말소리의 단위인 음소는 언어마다 다를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각 음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르다. 즉 자신의 모국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음성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 예를 들어 한국어 사용자에게 ‘불, 뿔, 풀’은 각기 다른 단어이며, 차별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영어 사용자라면, ‘불’과 ‘풀’은 구별해도, ‘불’과 ‘뿔’은 구별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영어권 사람은 ‘pie’를 ‘[스파이]’에, 'spy'를 [스빠이]에 가깝게 발음하지만, 둘은 차별 없이 같은 음가로 인식한다. 한국어에서는 ‘ㅂ ㅃ’이 의미를 변별(辨別)해주는 역할을 하는 음소이지만,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영어에서 ‘fan’과 ‘pan'은 그 발음이 다르다. 그러나 한국어 사용자는 그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음성’과 ‘음소’는 분명히 구별된다. 동일한 소리로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단어의 의미를 분화시키든 그렇지 않든, 음가가 다른 말소리는 모두 음성이다. 이에 비해 의미 변별에 관여하며, 언중의 머릿속에서 다른 음가로 인식되는 말소리를 음소(音素)라고 한다. 당연히 음소는 개별 언어에 따라 다른 체계를 이룬다. 한국어와 영어에서 음소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은 다음의 설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어에서 ‘불’의 [ㅂ]은 [p]로, ‘뿔’의 [ㅃ]은 [p?]로 각기 다른 음성이고, 이 두 음성의 차이가 의미 변별에 기여하므로 한국인들은 [p]와 [p?]를 각각의 음소 /p/와 /p?/로 구별하여 인식한다. 그러므로 [p]와 [p?]는 각각 음성이면서 음소 /p/, /p?/이다. 그러나 ‘park, spike’에서 ‘p’의 음가는 각각 무성 유기음 [ph]와 무성 유기음 [p?]이지만, 영어에서는 이 차이로 인해 뜻이 달라지는 단어가 없어서 둘 다 무성음 /p/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영어에서 [ph]와 [p는 하나의 음소 /p/이다.”

 

 

그런데, 의미에 변별에 기여하는 것은 음소의 차이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말[言]’과 ‘말[馬, 두斗]’는 다른 말이다. 의미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말소리도 다르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길게 발음하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짧게 발음한다. 즉 ‘말의 길이’의 차이가 의미를 변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말의 길이’ 역시 음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음소와 달리 독립적인 분절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분절 가능한 음소가 아니면서, 의미 변별 기능을 하는 것을 운소(韻素)라고 한다. 달리 초분절 음소, 비분절 음소, 얹힘 음소라고도 한다.

 

운소의 대표적인 예로는 ‘길이, 높이(=고저)와 세기, 억양’ 등을 들 수 있는데, 우리말 표준어에서 운소로 기능하는 것은 길이, 즉 장단(長短)이다. ‘장단’은 한 음소를 발음하는데 걸리는 시간, 즉 지속시간을 말하는데, 운소로서의 길이는 절대적인 길이가 아니라, 상대적인 길이다.

 

소리의 길이가 길고 짧음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단어로는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말:(言), 말(馬, 斗)

눈:(雪), 눈(眼)

굴:(窟), 굴(石花)

밤:(栗), 밤(夜)

성:인(聖人), 성인(成人)

묻:다(問), 묻다(埋)

무:력(武力), 무력(無力)

가:정(假定), 가정(家庭)

말:다(禁止), 말다(券)

배:(倍), 배(腹, 梨)

손:(損), 손(客, 手)

솔:(옷솔), 솔(松)

굽:다(燔), 굽다(曲)

물:다(納), 물다(입에-)

걷:다(步), 걷다(收)

깁:다(補), 깊다(深)

달:다(火), 달다(甘)

발:(簾), 발(足)

벌:(蜂), 벌(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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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는 중국어에서 흔히 성조(聲調)라고 하는 것으로, 한국어의 경우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일부 방언에서 ‘고저’가 의미 변별 기능을 하지만, 표준 발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중세 국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중세 한국어는 성조 언어였고, 운소도 표기에 반영하였다. 이를 사성점 또는 방점이라고 한다. 세기(=강세)의 경우는 영어에서 운소로 쓰이고 있다. ‘억양’의 경우는 우리말의 경우 문장의 끝 높이를 말하는데, 단어의 의미를 변별한다기보다 문장의 의미를 변별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면 “밥 먹었어”라는 입말의 경우 그 자체로는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억양에 따라 그 문장의 성격이 변한다.

 

 

음운(音韻)이란 위에서 말한 음소와 운소를 아울러 이르는 개념이다. 따라서 음운이란 말의 뜻을 구별해주는 기능을 가진 소리의 최소 단위라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음운이라고 하면 대개 음소를 말하는 것이므로,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음소를 그냥 음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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