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화용론; 신정보와 구정보에 대하여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1. 21:41

 

언어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일어난다. 화자가 그의 의식 속에 있는 어떤 정보(information)를 청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우리는 의사소통이라고 말한다. 정보의 전달은 담화 상황에서 문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화자는 정보가 효과적으로 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문장을 구성하게 된다.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각각 서로 다른 정보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의 구성요소를 정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정보(new information)와 구정보(old information)로 나눌 수 있다. 신정보와 구정보의 판정은 화자가 제공하는 정보가 발화시 청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화자는 말을 할 때 청자가 전혀 모르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청자가 의식하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하여 거기에다 새로운 지식을 보태는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따라서 화자는 청자가 그 예비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장이나 담화를 구성하게 된다. 이때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구정보라 하고, 화자가 청자에게 새로이 보태는 지식을 신정보라 한다. 다시 말하면, 화자가 발화할 때 청자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구정보라고 하고, 청자의 의식 속에 들어 있지 않은 지식을 신정보라고 한다. 설령 청자가 이전에 알고 있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화자의 발화시에 청자의 의식 속에 있지 않은 것이면 그것은 신정보이다. 그리고 화자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앞의 맥락을 통해서 청자가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면 그것은 구정보에 해당한다.

 

예문을 통해서 신정보와 구정보를 구별해 보기로 하자. A가 B에게 느닷없이 다음 (1)과 같은 말을 한다면 그 모든 부분이 청자에게는 새로운 정보로서 전달된다.

 

 

(1) 어제 수자를 만나서 수자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했어.

 

 

(1)의 청자인 B는 문장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 하나하나에 대해서 아무런 의식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정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음 (2)에서처럼 그것이 A의 물음에 대한 B의 대답이라면 문장 구성요소의 정보가 다르게 된다.

 

 

(2) A : 어제 수자를 만나서 무슨 말을 했어.B : 어제 수자를 만나서 수자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했어. (=(1))

 

 

A는 B가 어제 수자를 만난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을 전제로 해서 두 사람이 무엇에 대해서 말을 했는가에 대하여 묻고 있다. B의 대답 가운데서 ‘어제 수자를 만났다’는 것은 화자와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구정보에 해당한다. 다만 청자가 모르는 것은 ‘수자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는 부분인데, 이것이 신정보에 해당한다. 실제의 대화에서 B가 ‘수자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했어.’ 또는 ‘수자의 진로에 대해서.’라고 말해도 충분한데, 그것은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인 구정보는 생략하고 청자가 요구하는 신정보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보를 두고서 신정보 또는 구정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정보가 청자에게 있어서 신정보 또는 구정보라는 말이다. 그것은 청자의 의식 속에 그 지식이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서 정보를 분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는 청자 중심의 정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정보가 청자의 의식 속에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대한 판단이나 추정은 화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곧 청자에게 있어서의 신정보 또는 구정보이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화자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사에 의해서 신정보와 구정보가 실현된다. 신정보에는 주격조사 ‘이/가’가 결합되고 구정보에는 보조사 ‘은/는’이 결합되는 것이 그것이다.

(* 이 부분이 시험에 출제됩니다. 기존의 많은 교재는 이 문제를 통사론적으로 접근하는 오류를 범한 경우가 많습니다.)

 

(3) A : 오늘은 누가 청소 당번이지?B : ㄱ. 창수가 당번입니다. ㄴ. *??창수는 당번입니다.

 

 

A의 ‘누구’가 신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에 호응하는 대답은 신정보이어야 한다. 따라서 신정보 표지인 ‘가’가 쓰인(Bㄱ)은 자연스럽지만 구정보 표지인 ‘는’이 쓰인(Bㄴ)은 부적격한 문장이다.

 

 

다음 (4)와 같이 어떤 담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대상을 말할 때 ‘이/가’가 쓰이는데 반하여 ‘은/는’이 쓰이지 못하는 것도 그 대상이 신정보이기 때문이다.

 

 

(4) ㄱ. 아주 오래 전 저 산골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노인은) 살았습니다.ㄴ. 이 무렵 수입 쇠고기 문제로 촛불 집회가(*촛불 집회는) 열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5)는 전래동화의 도입 부분인데, 처음 등장하는 ‘나무꾼’은 신정보이기 때문에 ‘이’가 붙고, 그 다음에 나오는 ‘나무꾼’은 구정보이기 때문에 ‘은’이 붙었다.

 

 

(5) 옛날옛날 어떤 마을에 한 나무꾼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 나무꾼은…….

 

 

이와 같이 국어의 정보 표지로 조사 ‘이/가’와 ‘은/는’이 변별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정보에 ‘은/는’이 붙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은/는’은 대조를 나타낸다.

 

(6) A : 술을 마시느냐?B : 아니요,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담배는 피웁니다.

 

(7) A : 동생이 의사라지요?B : 아닙니다. 형은 의사이지만 동생은 교수입니다.

 

 

(6B)에서 ‘술’은 구정보이고 ‘담배’는 신정보이다. 구정보인 ‘술’에 ‘는’이 결합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신정보인 ‘담배’에 ‘는’이 결합된 것은 ‘는’이 붙음으로서 그것이 대조의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7B)의 ‘형은’도 대조를 나타낸다.

 

 

화자가 전달하는 정보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전달하는 모든 정보가 다 중요하다면 이는 청자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된다. 화자는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적절히 배합하여 중요한 정보에 청자가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 청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신정보가 구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