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들

'나는 가수다' 관전평(1)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3. 29. 01:17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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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저는 TV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TV를 껌처럼 씹으며 자란 세대인 제가 TV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은하철도 999>, <마징가 Z> 같은 만화 장르를 좋아했고, 좀 커서는 <영11>, <가요 톱 10> 같은 가요 장르를 좋아했습니다. 그 이 후에는 <주몽>, <이산> 같은 사극을 좋아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를 TV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소위 예능 프로가 득세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이경규, 유재석, 강호동 등 예능 스타들이 TV를 종횡무진 활보할 시점부터 저와 TV는 완전히 코드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남다른(?) 집중력 때문인지. 일단 한 프로그램을 보면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봅니다. 아니, 재방송을 포함해서 3-4차례 반복하여 봅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프로그램 평도 해 봅니다. 참 충성스러운 시청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아무리 봐도 시시껄렁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집중이 안 됩니다. 그러니 멀어질 수밖에요.

 

 

좀 더 결정적인 것은 가요 프로그램을 이른바 아이돌 가수들이 장악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이후 가요프로그램은 제 관심 영역 아주 너머였습니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가수가 나와서 쟁반에 얻어맞기, 엉터리 해물매운탕 끓이기, 계곡의 찬 물에 몸 담그기 등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렇게 해서 음반을 좀 더 많이 팔고, CF 하나 더 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수가 저래서야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잠시 제가 가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콘서트 7080>이 그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첫 장면에 개인적으로 저의 고3 담임 선생님이기도 하셨던 분(=‘가시리’의 이명우)이 출연하기도 해서 그랬지만, 제 구미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요의 평을 짧게짧게 하나 둘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경향신문에 연재되기도 했습니다. <하희정의 노래읽기>라는 칼럼 연재가 그것입니다. 때마침 박중훈 주연의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그 나름대로 히트했고, ‘나도 한번 그래 봐’ 하는 생각에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TBN 교통방송 ‘하희정의 노래읽기’>가 그것입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 1년간 출연했는데, 결국 방송국 경비 절감이라는 바람이 불면서 그냥 잘렸습니다. 물론 제가 부족한 탓이었겠지요.(좀 허전했습니다. 그 동안 칼럼 원고로 방송 원고로 쓴 글들이 아깝기도 하고. 그래서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 둘 요량으로 만든 블로그가 이 블로그입니다. 'goodballad'인 이유를 아시겠죠.)

 

 

그랬는데, 제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 포맷의 가요 프로가 등장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포맷과 너무 흡사해서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그것입니다. 담당 PD를 보니 같은 과 출신의 아는 선배님이시더군요. MBC 예능 국장을 지낸 김영희 선배였죠.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프로는 3주 안에 7명 중 1, 2위 안에 한 번도 못 들면 탈락하는 방식이었거든요. 6주 안에 1위를 한 번도 못하면 역시 탈락하고요. 지금이라도 이 방식을 한번 고려해 봤으면 합니다. 프로들 그 중에서도 가창력을 인정받는 프로들이 출연하는 방식의 프로에서 꼴찌를 탈락시키는 방식은, 각 가수들의 팬들을 고려할 때, 좀 무리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평가단의 평가를 받는 경연은 생방송으로 했으면 합니다. 전체 순위도 공개하고요. 출연 가수가 직접 진행하는 방식도 개선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리고 평가단에 이른바 전문 평가단(관련 작곡가, 작사가, 가수는 제외-오해 소지 있으니)의 평가도 10% 정도 가미하면 좋을 듯합니다. 가사 소화력 이런 부문 만들어서 저를 초대해 주면 얼마나 황송할까요.(ㅋㅋ)

 

 

오늘은 강의 준비 때문에 이만하고, 내일은 이번에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에 대한 구체적인 평을 한 명씩 한 명씩 해 볼 생각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가수다>의 이른 재개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PD 교체, 김건모의 자진 사퇴 등 다양한 소동을 일으킨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는 어쨌거나 ‘핫’했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노래는 곧바로 음악 차트를 출렁이게 했고,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관련 노래에 대

한 신청곡 요구가 물밀듯 쏟아진다. 출연 가수들의 절판된 음반이 다시 제작되는 경우도 생겼다.

 

 

27일 방송에서 정엽이 탈락했고 프로그램은 숨고르기를 거쳐 4주 이후에나 재개된다. 그럼에도 애초 출연한 7인의 영향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주 인터넷 조사기관인 (주)엔아이리서치의 조사(20대 이상 6천109명 설문)에 의하면 이들중 이 프로그램을 봤던 사람 중 67.1%가 ‘나가수’를 계속 시청하겠다고 밝혔다. 태진아 가수협회장도 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고, 신해철은 김건모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서기도 했다. 여하튼 ‘7인 가수들’ 속내는 사뭇 다양하다. 이들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이소라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동시에 많은 케이스다. 그가 1회분에서 열창한 ‘바람이 분다’ 등의 노래는 온오프라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멜론 벅스 등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도 그의 음원 ‘바람이 분다’는 10위권을 오르내리며 힘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미지다. 그가 상당히 민감한 가수라는 건 음악계 내부에서나 알만한 사안이었다. 그동안 푸근한 이미지에 노래 잘하는 가수로만 이해했을 대중들은 이번 프로그램으로 사뭇 놀란 눈치다. 녹화를 갑작스레 중단하거나, 마음이 선뜻 동하지 않은 무대에 출연을 거부하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이후 진행 논란 등 후폭풍에 휘말렸다. 인터넷에 뜬 다양한 댓글에는 이소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음악 실력 뿐 아니라 성품 등에서도 완벽하길 원하는 까다로운 성향의 한국 음악 대중들이 앞으로 이소라에게 어떻게 반응할까.

 

 

 

▲윤도현

 

의외로 많은 걸 얻은 가수가 윤도현이다. 로커 윤도현이 이른바 R&B 솔 장르로 무장한 흑인음악계의 보컬리스트들과 벌일 싸움은 사실 애초부터 불리했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그루브’(groove·구불구불 노래하는 방식) 등 다양한 기교의 흑인 음악 창법에 가창력의 기준을 둔다. 윤도현이 방송 중 “요즘 누가 록을 좋아해”라고 체념투로 이야기했던 것은 꽤나 현실적인 언급이기도 했다. 이왕 내려갈 거 한바탕 즐기겠다는 심사는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켰다. 한 중견 가수는 “프로가 보기에는 유일하게 윤도현만이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며 “마음을 비운 채 맘껏 꾸며본 무대는 청중평가단과 시청자들에게 차별화된 무대를 선사했고 결국 20일 방송분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도현이 출연 중인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그가 얻은 많은 걸 보여준다. 지난 20일부터 막이 오른 뮤지컬은 최근 들어 표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세 명은 공통적으로 가치가 재발견된 가수들이다. 다행히 ‘실’은 없었다. 댄스 장르의 가수에서 짙은 음색의 발라드 가수로 변모했고, 다시 두 장르를 오가는 가수 백지영은 이번 기회를 통해 보컬리스트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히게 됐다. 원래부터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던 김범수는 사실 군복무 후 이렇다할 기회를 잡는데 애를 먹곤 했다. 향후 군입대 전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과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현 역시 주춤했던 그간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현재 콘서트 업계에선 근래들어 단독 콘서트가 거의 없었던 박정현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세 명은 구관이 명관이란 점을 과시한 가수였다.

 

 

 

▲김건모

 

데뷔 20주년을 맞는 김건모는 올 한해 만큼은 뜨겁게 갈채받아야 했던 가수였다. 뜻밖으로 ‘꼴찌’를 경험하고, 재도전 논란에까지 휩싸이면서 외형적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7일 방영분에서 청중평가단과 시청자들이 그의 녹록지 않은 기량을 재차 확인한 건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는 “앞서 힘을 빼려고 했던 것과 달리 목에 힘을 가득 주고 불렀다”며 프로그램에 임한 독한 심경을 토로키도 했다. 자진사퇴를 발표할 때 만났던 그는 “꼴찌가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볼 땐 실보다 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그는 올 하반기께 발표될 20주년 기념 앨범을 잔뜩 벼르고 있다. 김건모 측은 “혹시 모를 자만심이 사라지고 달라진 음악적 열성으로 음반과 공연을 준비할게 자명하다”고 최근의 기류를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도 그에겐 희망적인 요소가 된다. “함부로 욕할 만한 가수가 결코 아니다”는 글도 수두룩했다.

 

 

 

▲정엽

 

최고의 수혜자다. 젊은 팬층만을 갖고 있었던 정엽은 이번 기회를 통해 대중 인지도를 두텁게 쌓았다. “다른 6명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는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정엽은 말그대로 ‘샛별’이었다. 40대 회사원 김영환씨는 “정엽이란 가수를 처음 알게 됐고, 이렇게 빼어나게 노래를 하는 가수가 있다는 걸 알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정엽의 경우는 <나는 가수다>가 호평받아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 프로그램이 다시 안정된 상태로 돌아간다면 정엽처럼 대중적으로 발굴될 가수가 제법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엽의 뒤를 이어 들어온 김연우는 마니아 팬층만 뚜렷했던 가수였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대중들이 절대 다수였다. 아이돌 가수의 매니저는 “아이돌로만 한정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좋은 보컬리스트들이 있는 게 사실이고 이들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