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허용(Poetic License)
시적 허용의 상위 개념은 예술적 허용입니다. 즉 시학에서는 시적 허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극예술에서는 극적 허용, 서사문학에서는 소설적 허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입니다. 물론 이 용어는 전문용어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담화에서도 사용됩니다. 어느 경우든 이 용어는 사실 뒤틀기, 언어적 관습 뒤틀기, (어구 바꾸기 등을 통한) 기존 예술 텍스트의 뒤틀기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시각 예술의 경우라면 세종대왕이 2000년대 광화문 네거리를 걷는 모습을 그린다면, 이는 사실 뒤틀기에 해당하고, 예술적 허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나는 어제 간 길을 간 적이 없다.”라고 하면 언어적 규범을 일탈한 것이므로 이 역시 시적 또는 예술적 허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나를 죽인 것은 8할이 바람이다.”라고 한다면, 유명 시인의 시를 뒤튼 것이므로 , 이 역시 시적 혹은 예술적 허용에 해당합니다. 물론 ‘바람이 분다’를 의도적으로 ‘바아람이 부운다’라고 해도 시적 허용 내지는 예술적 허용에 해당합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시적 허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전적으로 시적 허용은 시인에 의한 왜곡입니다.
② 시적 허용은 독자가 관용 또는 수용할 수 있도록 기획됩니다.
③ 기존 표현으로 메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운다는 점에 유용성이 있습니다.
④ 시적 허용은 의도적인 차원에서 시도될 수고 있고, 무의식중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은. 은. 이 밀려 오는 듯 머얼리 우는 오ㄹ간 소리”
위의 시구는 일상적인 언어적 규범으로부터 일탈해 있습니다. 물론 시인에 의한 왜곡입니다. 또 독자가 관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또 일상적인 표현이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용성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보입니다만,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은은히’은 ‘은. 은. 히’로 한 것은 띄어쓰기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물론 느릿하게라는 의미를 덧칠하려는 의도의 반영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오ㄹ간 소리’를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든지, ‘은은히’를 은은이‘로 한 것이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면, 틀린 이야기가 됩니다. 그것은 당시의 맞춤법 문제이며. 위에서 언급한 시적 허용의 기본 요건으로부터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어문규정이 제정된 것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처음입니다. 현행 한글맞춤법은 1998년도 개정 맞춤법입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시 등을 감상하면서 단순히 표기법이 오늘날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적 허용 운운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안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1933년 이전에도 관습적인 차원(성문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어문규범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관례를 의도적으로 찌그러뜨린 시인의 표현은 당연히 시적 허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시인 이상이 보여주는 띄어쓰기 무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프린스턴 시학 사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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