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조지훈 동물원의 오후 감상과 문제 분석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3. 16. 19:32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앞서 올린 ‘언어영역 교재와 강의에 대한 단상’에 이은 두 번째 분석입니다. 현대시 두 번째 세트입니다. 그 중 조지훈의 <동물원의 오후>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動物園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앉아 시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詩集을 읽는다. 
철창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 보면 
四方에서 창살틈으로 
이방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無人한 動物園의 午後 顚倒정지된 位置에 
痛哭과도 같은 落照가 물들고 있었다.
-조지훈, <동물원의 오후>
(1) 우선 사소한 문제 같지만, 작은 표현의 차이에도 예민한 시라서 사소할 수 없는 원문 문제입니다. 위의 것은 <조지훈전집>(나남출판)의 것입니다. 교육방송 교재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전집에는 연 구분이 되어 있는데, 교재에는 연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하소해야지’가 ‘하소연해야지’로 되어 있습니다. 강의에서는 전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후자의 경우 작품에 따라 ‘하소’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다고 하네요.('하소연'이라고 한 것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뭘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네요. 시에서 원문의 정확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성스리’를 ‘정성스레’로 바꿔 놓았습니다. 이 처리 방식은 이해가 됩니다. 표준 어법에 맞게 바꾼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원문을 표준 어법에 맞게 고쳤다는 말입니다.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원칙의 일관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면 이어지는 작품에서 ‘길다랗고’는 ‘기다랗고’가 되어야 하고, ‘서러웁게’는 ‘서럽게’가 되어야 하고, ‘가늘은 국수’ 역시 ‘가는 국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실제 수능에서도 혼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기타, 띄어쓰기 교정에서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험생들에게 띄어쓰기 문제에서는 띄어쓰기에 신경 쓰지만, 그 외에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민망한 해결책입니다.)
(2) 5번 문제의 답지 ②[“(가)와 (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의 문제입니다. (가)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는 어떤가요. 문태준의 <가재미>(표준어는 ‘가자미’-방언에서 널리 사용되는 ‘ㅣ’ 모음 역행 동화가 일어난 ‘가재미’는 표준어로 삼지 않는다. 이 역시 작품 원문에 충실한 경우라면 ‘가재미’로 해야 하지만, 설명 중에는 ‘가자미’로 한다. 이런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입니다. (다)의 상황은 명료합니다. 암 투병 중인 ‘그녀’를 지켜보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안쓰러워하고 슬퍼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답지 ②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과연 적절할까요? 
사실 이 문제는 답지 자체가 너무 거칠다는 점 때문에 초래된 것입니다. 교재의 해설은 이 부분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만약 설명을 했다면,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현대시를 많이 감상해 본 축에 속할 텐데요. ‘이상과 현실’이라는 잣대로 감상했을 때,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이상과 현실이 괴리(= 서로 어그러져 동떨어짐)되지 않은 상황을 노래한 작품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이상과 현실의 괴리, 이것은 사실 근대이후 서정시의 본질입니다.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시를 논하면서 근대를 신이 떠나 버린 궁핍한 시대라고 말한 것도 이와 관련됩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죽어가는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가 정답을 고르는데 기여하는 바가 없는 상황인데, 과연 이 답지를 어떻게 작품에 적합한 설명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이상’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해야 할까요? 참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3) 6번 문제 보기 ‘ㄴ’의 문제입니다. 이 답지의 설명이 옳다는 전제라면, <동물원의 오후>의 화자는 대상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지 아니하는 것이 됩니다. 이 때 ‘대상’은 당연히 동물원의 ‘동물’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화자는 동물을 너무도 당연히 철책 속에 갇힌 이방(異邦)의 짐승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갇힌 것은 동물이 아니고 차라리 ‘나’가 아닐까 하는 것이 시의 중심 내용입니다. 자조(自嘲)가 시상의 핵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동물원의 동물에 대한 동류의식 나아가 연민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시의 시상 전개는 매우 어색해집니다. 연민의 상대 개념(등급적 반의 관계)은 시샘이나 부러움 정도가 될 터인데,  과연 그렇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렇게 시를 감상하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시 감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런 식의 설명이라면 김동명의 <파초>에서 화자가 파초를 시샘한다고 해야 할 터이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설도 없고, 강의도 그냥 넘어 갑니다. 
(4) 국어 교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문제나 해설의 어법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아성찰을 통한 반성의 태도’라는 표현은 매우 어색합니다. “㉮에 그려진 ‘명태’의 모습이 ㉰에서 ‘나’와 동일시되고 있다.”도 문장의 호응이 어색합니다. 같은 문제 세트에서 ‘암투병 중’과 ‘암 투병 중’을 같이 쓰는 것도 일관성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하나는 작품 원문이라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삶의 궤적이 꺼져가는’이라는 표현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참고} 교육방송 대표와의 대화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답변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