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조승구, <꽃바람여인>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25. 03:20
 

꽃바람여인 조승구


가슴이 터질듯한 당신의 그 몸짓은

날 위한 사랑일까 섹시한 그대 모습

한모금 담배연기 사랑을 그리며

한잔의 삼페인에 영혼을 팔리라

세월의 향기인가 다가선 당신은

꽃바람 여인인가 나만의 사랑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어쩔수 없었네 꽃바람 여인


영혼의 사랑인가 숨이 막혀 오네요

망가진 내 모습은 어쩔수 없는 사랑

한모금 담배연기 사랑을 그리며

한잔의 샴페인에 영혼을 팔리라

세월의 향기인가 다가선 당신은

꽃바람 여인인가 나만의 사랑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어쩔수 없었네 꽃바람 여인


서울대 교문이나 학교 배지(badge)를 본 사람이 많을 듯싶다. 국립서울대학교에서 ‘ㄱ, ㅅ, ㄷ’를 따와서 만든 것. 한 때 ‘계집, 술, 담배’의 이니셜(initial)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다. 농담치고는 고약하다. 하지만 각각을 이성간의 연애, 친구들과의 사귐, 개인적인 고민 정도를 뜻할 터. 결국 묶어서 젊은 시절의 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장르 불문하고 많은 사랑 노래가 사실은 이 세 소재를 적절히 조합한 것들이다.


좀 다른 게 있다면 트로트로 불리는 가요는 그것을 좀 더 솔직히 드러내 놓고 노래한다. 예컨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는 ‘마담’과 ‘도라지 위스키’가 등장한다. 조승구의 <꽃바람여인>도 예외가 아니다. 중심 소재인 ‘여인, 샴페인, 담배’가 그것이다. 역순으로 각각이 가지는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노래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일 듯싶다.


먼저 담배. 바야흐로 요즘은 웰빙의 시대. 담배는 세금을 많이 내는 충신(?)이지만, 대접은 말 그대로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하지만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시간에 담배만한 좋은 친구가 있을까?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이육사, <자야곡>에서)처럼, 담배는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라면 참 달콤할 수밖에 없다. ‘한 모금 담배연기’에 ‘사랑을 그리며’라고 했다. 추억의 대상으로서의 사랑이란 것의 맛이 그렇지 않을까? 그 쓴 담배를 뭐하러 피느냐고 묻는 아이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살만큼 산 어른들은 안다. 지나가버린 사랑, 굳이 그 맛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씁쓸하다. 하지만 동시에 달콤한 것. 쌈채로 먹는 겨자 잎 같은 맛 말이다.


다음은 샴페인. “한잔의 샴페인에 영혼을 팔리라”라고 했다. 솔직히 샴페인보다는 위스키가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알코올의 맛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아닐까? 그런데 갑자기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영혼을 팔리라’는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영혼은 질료를 갖지 않지만,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질료를 찾는다면 알코올이 가장 먼저 떠올려지지 않겠는가? 투명성, 불이 닿으면 곧 증발해버리는 것 등등. 이성관계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이해타산 같은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영혼과 영혼의 만남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인.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어쩔 수 없었네. 꽃바람 여인”이라고 했다.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꽃바람과 여인은 동의어인 셈이다. 진달래 피고 개나리 피는 시절에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꽃바람이다.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것까지는 없다. 꽃 피는 봄이 오고, 꽃향기 담은 봄바람이 불 때면 어떤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은가? 아름다운 여인을 볼 때의 젊은이의 마음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바람이 불고 그것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영혼을 뒤흔들기라도 한다면 심각해질 수밖에. 남들이 보면 시시껄렁한 것일 수 있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할 도리밖에. 노예라도 사랑의 노예라면, 참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늘 그렇게 봄바람처럼 가볍게 와서는, 영혼의 뿌리까지 뒤흔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들 그렇지 않은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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