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국어어휘력

수능 국어의 문장 수준이 이 정도라면

국어의 시작과 끝 2022. 7. 13. 10:23
사회의 각 영역은 제 나름의 역할이 있다. 그것에 충실하고 난 다음에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맞는다. 요즘 대입 국어영역 시험을 보면, 평가 내용이 참 다채롭다. 현란하다. 아무튼 방향에는 공감하며 긍정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국어 시험의 중핵은 국어 사용 능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어 능력의 기본은 어휘 사용 능력이다. 우리말 단어를 그 의미와 쓰임에 맞게 정확하게 쓸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뭘 더 바랄 수가 없다. 멋지게 높이 쌓아 올려 봐야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시쳇말로 개폼일 뿐이다. 

 

그러면 현실은 어떨까? 다음 문장은 작년 수능 국어영역의 지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참고로 수능 지문은 20명 이상의 국어 전문가가 거의 한 달 동안 합숙하면서 100회 이상 검토를 거친 것이다. 아마 그 이상일 거다.
 
“이 얼굴 지녀 있어 어려운 일 하고 많다.-정훈, ‘탄궁가’ 중에서”
 
물론 이러저러해서 어려운 일이 많디많다는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우리는 싸구려 국어 문장의 전형이라고 한다. 국어 어휘력과 문장 수준이 3류(작가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출제 위원인 교수들과 검토하는 교사들 말이다. 올바른 지문을 그들이 틀리게 다듬은 것이다.)다. ‘어려운 일(이) 하고많다’가 맞는 문장이다. ‘일(이) 하고많다(많디많다)’라고 써야 할 것을 ‘일(을) 하고 많다’로 써 버리는 코미디를 하고 말았다. 어이가 없다. 전에는 또 ‘녹양방초(綠楊芳草)’를 ‘녹양방초(綠陽芳草)’라고 하더니. 하하.
 
그저 띄어쓰기 실수라고 위로받고 싶겠지만, 실은 어휘력 부족이 문제다. '하고많다'라는 초동급부도 알 만한 쉬운 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거다. 이러고도 자칭 국어 전문가들이 모여 출제하고 검토했다고? 우하하.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런 오류가 너무 많다. 좀 더 심오한 오류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수능이 이러니 EBS를 포함한 각종 교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처참하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나는 그 책임이 수능 자체에 있다고 본다. 요컨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문해력이니 사고력이 뭐니 하기 전에, 정확한 국어 어휘 사용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국어 교육과 수능 시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어 어휘 실력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저런 부실한 문장은 실수가 아니라 실력 부족 탓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