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들

감자탕에는 원래 감자가 없었다

국어의 시작과 끝 2015. 1. 4. 02:42
감자탕에는 원래 감자가 없었다
헬스경향 한동하 한의학 박사 | 한동하 한의원 원장 gamchoo@hanmail.net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얼큰한 감자탕을 찾는 이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감자탕이란 이름은 감자가 들어있기 때문에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감자탕의 주인공은 감자가 아니었다. 

감자라는 이름은 돼지등뼈를 부르는 한자어란 것이다. 돼지등뼈를 감저(甘猪;단맛이 나는 돼지고기)라고 하는데 이를 넣고 끓인 것이 바로 감저탕(甘猪湯)이고 거기에 감자가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감저탕(甘猪湯)’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자탕으로 변했다는 설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감자도 감저(甘藷)라고 했다. 기록에 의하면 감자는 순조 때(1824년) 청나라에서 전해졌는데 북저(北藷) 혹은 토감저(土甘藷)라고 했다. 또 북쪽에서 들어와 북방감저(北方甘藷)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자탕의 시초가 감저탕(甘猪湯)이 아니라 다른 한자인 ‘감저탕(甘藷湯)’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감저탕(甘藷湯)을 ‘감자를 넣어 끓인 감잣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저탕(甘藷湯)에는 돼지등뼈가 없고 감자만 있는 것이다.

돼지를 길렀던 시기는 감자가 유입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이다. 문헌상으로는 부여, 옥저, 고구려 등에서 소나 돼지, 말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돼지뼈를 넣고 끓인 감저탕(甘猪湯)이란 이름이 먼저 생겼고 이후 감자가 감자탕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돼지를 의미하는 한자어로는 저(猪)나 돈(豚)이 있다. 저(猪)는 멧돼지를 의미한다. 저돌적(猪突的)이란 말은 멧돼지처럼 돌격한다는 말이다. 반면에 가축으로 키우는 집돼지는 돈(豚)이라고 한다. 돈(豚)자의 고기육(⺼)변에 붙은 ‘시(豕)’도 돼지를 의미한다. 감저탕이 감돈탕(甘豚湯)이 아닌 이유로 최초의 감자탕은 집돼지가 아닌 멧돼지뼈를 넣고서 끓인 탕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원래 우리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자어에서 출발한 것들이 많다. 바로 해장국도 그렇다. 해장국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속풀이로 먹는 국을 말한다. 보통 해장(解腸)국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해장국의 어원은 바로 해정탕(解酲湯)이다. 해정(解酲)이란 숙취(酲)를 풀어준다(解)는 의미이다. 정확하게 해정(解酲)국이 해장국이 된 것이다.

설렁탕도 조선시대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소고기를 국으로 끓여 나눠먹었다고 해서 선농탕(先農湯)이란 설이 있다. 또 눈처럼 진한 국물이라고 해서 설농탕(雪濃湯)이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설들은 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또 몽골음식이었던 고기를 넣고 삶은 맑은 국물을 ‘공탕(空湯)’이라고 하는데, 공탕을 ‘슈루’라고 발음한다고 한다. 이 말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공탕(空湯)이 곰탕, 슈루가 설렁탕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름의 변천은 한자를 쓰고 읽지 못했던 서민들 사이에서 비슷한 발음으로 전해지면서 정착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상관없겠지만 유래를 알고 먹으면 또 다른 깊은 맛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감자탕집에서 감자가 적다고 억지 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