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ㄴ' 첨가와 반모음 첨가에 대하여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9. 17:31

 

첨가

 

 

(1) ‘ㄴ’ 첨가

선행 음운이 자음으로 끝나고 후행 음운이 ‘ㅣ’나 반모음 ‘ㅣ’로 시작한다는 음운론적 조건과 뒷말이 실질 형태소라는 형태론적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뒤 말의 첫소리에 ‘ㅣ’이 첨가되는 현상을 ‘ㄴ’ 첨가라고 한다.

 

 

맨입[맨닙], 늦여름[는녀름], 홑이불[혼니불], 막일[망일], 짓이기다[진니기다], 설익다[설릭따], 앞일[암닐], 삯일[상일], 내복약[내봉냑], 솜이불[솜니불], 공일[공닐], 물약[물략], 솔잎[솔잎]

 

 

위의 예에서 ‘물약[물략], 솔잎[솔잎]’의 경우 겉보기에는 ‘ㄴ’이 첨가된 것이 아니라, ‘ㄹ’이 첨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ㄴ’이 첨가된 것이다. 다만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은 ‘ㄴ’이 첨가된 이후에 유음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예와 달리, 음운론적 조건이 같아도 ‘밥이[바비], 죽이다[주기다]’처럼 뒤 말이 접사일 때는 ‘ㄴ’ 첨가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자어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위의 경우와 음운론적 조건이 같아도 ‘ㄴ’ 첨가가 규칙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형태론적 조건으로도 설명이 어렵다. 사전을 참고하여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공일(空日)[공일], 석유[서규], 협약[혀뱍], 흡연[흐변]

독약[도갹], 몰인정[모린정], 금요일[그묘일], 간염[가념], 송별연[송벼련], 탄신일[탄시닐]

독점욕[독쩜뇩], 연습용[연슴뇽], 회충약[회충냑]

 

 

(2) 반모음 첨가

 

어간의 끝소리가 모음이고 어미의 첫소리도 모음일 경우, 모음 연쇄가 일어나는데, 이때 이를 피하기 위해 반모음이 첨가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되어’의 경우 ‘[되어]’라 발음하기도 하지만, [되여]라 발음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를 반모음 첨가라 한다.

 

 

되어[되어/되여], 피어[피어/피여], 기어[기어/기여], 아니오[아니오/아니요], 책이오[책이오/책이요], 미시오[미시오/미시요], 오십시오[오십시오/오십시요]

 

 

위의 예들은 모두 반모음 ‘ㅣ’가 첨가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알아 둘 것은 표기상으로는 ‘되어, 피어’ 등만 허용되며, 발음상으로는 ‘[되어, 피어]’ 등을 원칙으로 하되, ‘[되여, 피여] 등은 허용된다는 것이다.

 

한편, 반모음 ‘[w]’의 첨가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좋아도’를 ‘[조와도]’와 같이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표준 발음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또 ‘이에요, 예요’의 경우 자음 뒤에서는 ‘이에요’, 모음 뒤에서는 ‘예요’로 표기한다.

 

 

밥이에요, 책이에요, 집이에요, 떡이에요, 저예요, 김진우예요

 

 

위의 예에서 ‘밥이에요’를 [바비예요]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반모음 첨가로 설명할 수 있다.

 

 

 

 

 

 

추사전별도

추사가 아버지를 따라 한양을 출발한 것은 순조9년(1809) 10월 28일이었다. 북경까지 대략 50일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북경 도착은 12월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 3월 17일에 순조에게 귀국 보고를 했던 것으로 보아 귀국일 50일 정도를 빼면 추사가 북경을 떠난 것은 2월초 쯤 된다.

 

이런 일정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추사전별도(秋史餞別圖)’가 있는데 또한 추사가 중국에서 만든 북경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810년 2월1일 추사의 송별연이 북경 법원사에서 열렸다. 노령의 옹방강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완원, 조강, 이임송 등이 모여 전별연을 베풀었다. 주학년은 송별연 장면을 즉석에서 스케치하고 거기에 참석자 이름을 모두 기록해 놓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추사전별도’다. 이 그림에 곁들인 제(題)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가경 경오(1810) 2월 조선 김추사선생이 장차 돌아가려고 하면서 책을 내놓고 그림을 요구했다. 바빠서 많이 지을 수는 없으나 경치를 보고 그대로 그려 한 때 멋진 모임을 기록하다. 함께 모인 자는 양주 완운대(揚州 阮芸臺), 백강 이심암(栢江 李心庵), 의황 홍개정(宜黃 洪介亭), 남풍 담퇴재(南豊 譚退齋), 번우 유삼산(番 劉三山), 대흥 옹성원(大興 翁星原), 영산 김근원(英山 金近園), 면주 이묵장(綿州 李墨莊), 양주 주학년(揚州 朱學年)이다. <양진건 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