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국어어휘력

'비교, 대조, 대비'의 개념에 대하여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4. 25. 15:06

 

 

‘비교, 대조, 대비’에 대하여

 

전에 김광규의 <서울꿩>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의 강의와 교재가 무슨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올려져 있으니,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그 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최근에 EBS QnA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이 글을 씁니다. 먼저 학생의 질문과 교육방송 측의 답변을 보시죠.

 

 

<학생의 질문>

"1. (가)시 김광규의 '서울꿩'을 보면 3연 마지막에 '이 삭막한 돌산에 갇혀 버린 꿩들은 서울 시민들처럼 갑갑하게 시내에서 산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시에서 '자연을 인간과 대비한다'는 말은 맞는 설명 아닌가요?"이라는 질문에서는

"대비라는 것은 차이점을 찾기 위해 비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차이점을 찾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인 서울꿩과 인간인 서울시민들의 모습은 유사합니다. 따라서 대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답변하시고

 

" 21쪽에 1번문제의 2번 선택지에서요,

(가)에 '갇혀 버린 꿩들은 서울 시민들처럼 갑갑하게 산다'라고 했으니까 비교했으니까 대비한것 맞는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서는

" 예, 맞습니다. 인간의 삶을 서울 꿩으로 대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변 하셨어요 . . . . . .

무엇이 맞는 건가요 ㅠ.ㅠ ......?

 

<EBS 측의 답변>

박** 학생 반갑습니다.

 

'대비'는 차이점 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드러내는 설명 방식입니다.

'서울 꿩'에서도 보면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고 있는데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이 드러납니다.

즉, '대비'가 '대조'와 다른 의미라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둘을 대응시켜 비교하다보면 차이점도 드러나고 공통점도 드러납니다.

대비는 둘을 '대응'시켜 비교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언제든 질문 올려주세요.

 

 

 

<같이 생각해 봅시다>

 

작품을 오독하고 있는 문제는 이전 글에서 다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개념 사용의 측면에서 교육방송 측의 답변이 적절한지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생은 사실 매우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답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작품 감상의 오독에 대한 문제 제기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 문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교육방송 측에서는 뭐라고 하고 있나요? 핵심은 ‘대비’와 ‘대조’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개념이 완벽한 동의어일 수는 없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다르냐의 문제이겠지요. 우선 공신력의 차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를 참고해 봅시다.

 

 

 

*대비(對比) : 두 가지의 차이를 밝히기 위하여 서로 맞대어 비교함. 또는 그런 비교.

** 대비(對比)하다 : 두 가지의 차이를 밝히기 위하여 서로 맞대어 비교하다.

 

*대조(對照) : (1) 둘 이상인 대상의 내용을 맞대어 같고 다름을 검토함. (2) 서로 달라서 대비가 됨.

** 대조(對照)하다: 둘 이상인 대상의 내용을 맞대어 같고 다름을 검토하다.

 

참고로 ‘비교’도 같이 살펴봅시다.

* 비교(比較) :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

**비교(比較)하다 :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다.

 

 

저는 위 사전의 설명이 대체로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설명은 어떻습니까?

 

 

“'대비'는 차이점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드러내는 설명 방식입니다.”

 

 

 

개념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설명임이 금세 드러납니다. ‘대비(對比)’의 목적은 사전에서 적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두 가지의 차이를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답변자는 ‘對比’를 ‘對+比’로 파악한 모양입니다. 초보적인 오류입니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고 있는데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이 드러납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이 뒤따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언제든 질문 하세요."라고 하고 있지만, 참 위험한 발언입니다. 엉터리 지식을 전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하고 싶은 말은 ‘공부 좀 하고 답변하세요!’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에서 ‘비교’는 공통점을, ‘대조’는 ‘차이점’를 밝히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적절한 개념 사용이 아닙니다. 사전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런 기준으로는 ‘비교’와 ‘대조’의 개념을 변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그냥 ‘비교와 대조’라고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불가피하게 앞의 설명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차원이라면,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은 ‘대비’라고 설명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점에서 교육방송 측의 설명은 완벽한 오류입니다.

 

대학에서 두 개념을 굳이 변별하지 않는 이유는 공통점이 전제되지 않는 차이점을 상정하기 어렵고, 차이점이 전제되지 않는 공통점은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든 반의어는 유의어라는 말도 이와 관련된 것이지요.

 

그래도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두 개념을 변별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습니다. 사전의 뜻풀이를 꼼꼼하게 현미경처럼 살펴 보세요. 두 단어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맞대다’와 ‘견주다’가 그것입니다. ‘대조’를 설명하면서는 (대상의 내용을) ‘맞대다’를 사용했고, ‘비교’를 설명하면서는 (사물을) ‘견주다’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두 단어의 뜻풀이를 살펴볼까요?

 

 

* 견주다 : 둘 이상의 사물을 질(質)이나 양(量) 따위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 맞대다 : 같은 자격으로 서로 비교하다.

 

 

먼저 확인되는 바는 ‘대조’는 ‘비교’와 달리 두 대상의 위상이 엇비슷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상’이라고 안 하고 ‘대상의 내용’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과 북한이 대조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문맥상 ‘어떤 측면에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 “자연과 인간을 대조하고 있다”라고 할 때도, 거기에는 명시적이든 아니든 ‘어떤 점에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에 비해 '비교'의 경우는 좀 더 느슨합니다. 비교의 결과로 어떤 유의미한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비교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조하는 상황과는 이 점이 사뭇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비교는 그 과정에서 대조를 위한 ‘비교의 틀’을 마련하는데 더 많은 주안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이 점에서, ‘대비’는 ‘비교’보다는 ‘대조’에 좀 더 가까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개념의 변별점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의 차이’라는 설명과 ‘둘 이상의 대상’이라는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대비’의 경우는 위상이 비슷한 두 대상을 맞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차이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요. 이에 비해 ‘대조’의 경우는 둘 이상을 맞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같음과 다름을 모두 검토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비교>대조>대비’의 의미역을 갖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졸견에 대한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상은, 정우성, 정현철-이들은 비교되나 대조되나 대비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