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일. 재·보궐 선거를 앞둔 강원도지사 후보의 하루는 길고도 짧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와 그를 추격하는 민주당 최문순 후보의 강행군은 심야에 끝나고, 새벽에 다시 시작한다. 둘 다 MBC 사장을 지냈고, 같은 고교(춘천고)를 졸업했는데도 공방전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엄 후보는 “지지자가 느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고, 최 후보는 “여론조사는 강원도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두 사람을 접촉해 선거 이야기를 들었다.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가 21일 모교인 평창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창·태백=연합뉴스]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는 21일 모교인 평창초등학교를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강원도의 아이들이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무상급식의 단계별 추진, 초·중등 분야 공교육 지원 두 배 확대 등을 공약했다. 전날 오후엔 150여㎞ 떨어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원주가 연고지인 프로농구팀 ‘원주동부’의 경기를 관람했다. 그는 이날 삼척시·동해시·강릉시 등을 돌았다. 엄 후보는 “하루 600~800㎞를 이동한다 ”고 말했다.
-10%포인트 안팎으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승리를 장담하나.
“지지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다 보면 선택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도민들이 소외당하고 있다며 여당에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지 않나.
“도민들이 ‘우린 왜 만날 이러냐’고 할 때 가슴이 아팠다. 짜증이 많이 나 있더라. 강원도 사람이 그냥 현실에 안주하는 성품이어서 그렇지, 다른 동네 사람들 같으면 데모라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싸우더라도, 청와대 가서 드러눕더라도 강원도가 얻어낼 것은 얻어내겠다’고 말한다.”
-민주당 소속 이광재 전 지사에 대한 동정론이 투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역이 배출한 젊은 정치인이 중도 낙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도민들은 이번 보궐선거를 왜 치르게 됐는지 잘 알고 있다. 110억원이 넘는 도비를 들여 선거를 치르게 된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재판을 받던 이 전 지사를 후보로 내세우지 않았나. 도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엄 후보가 MBC 사장으로 있을 때 민주당 측과 가까운 걸로 비쳤다. 그런 엄 후보가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정치권 일각에선 배신이니, 해바라기이니 하는 비난이 나온다.
“MBC 사장 하고 나면 꼭 민주당에 가야 하나. 민주당 가면 로맨스고 한나라당 가면 불륜인가. 언론인으로서 정도를 걸었다. 자연인 엄기영은 정당 선택을 소신껏 할 수 있다. 강원도의 발전을 위해 한나라당을 택한 것이다.”
김승현 기자
“여론조사, 실제 민심과 거리 현장선 심판 여론 압도적”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태백시 농협 삼거리에서 시민들과 악수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평창·태백=연합뉴스]
20일 오전 1시. 민주당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가 탄 카니발 승용차가 원주시 한 찜질방에 멈췄다. 최 후보가 찜질방으로 들어가 아직 잠들지 않은 시민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는 지난달 3일 예비 후보로 등록한 뒤 이렇게 50여 일째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 ‘찜질방 노숙’을 하면 “피로도 풀 수 있고 유권자를 만날 수도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게 최 후보의 얘기다. 그는 예비후보 등록 후 강원도 18개 시·군을 세 번 돌았는데, 곳곳에서 “강원도민은 변화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에게 뒤지는 걸로 나오는데.
“성난 민심은 전화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는 실제 민심과 거리가 멀다.”
- 현장 민심이 어떻게 다른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민심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여론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 막바지까지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가 적게는 8.7%포인트에서 21%포인트까지 이광재 후보를 앞선다고 했다. 실제론 8.7%포인트 차이로 이광재 후보가 이겼다.”
-최 후보와 엄 후보는 모두 MBC 사장을 지냈고, 춘천고 선후배인데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도민들은 어떻게 보나.
“ 사적 인연을 떠나 공적으로 본인의 역량을 드러냄으로써 도민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엄 후보에 대한 ‘추격전’을 전개할 것인가.
“ 현장에서 만난 도민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수첩에 적고 있다. 도지사가 되면 꼼꼼하게 챙기고 실천할 거다. 제가 가진 진정성이 도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엄 후보는 ‘민주당이 재판 중인 사람(이광재)을 후보로 공천해 강원도만 피해를 봤고, 최 후보는 이광재 동정 심리만 자극하려 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엄 후보는 이 전 지사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그런데도 좀 지나칠 만큼 비판을 한 걸 유감으로 생각한다. 강원도민들은 이광재 전 지사가 재판 받고 있는 걸 알면서도 지방선거 때 그를 선택한 것이다. 도민들은 이 전 지사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강기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