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임춘 기홍천원 전문 상세 해설 및 배경지식 정리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4. 1. 15:36

 

 

동야가 가난하게 살매 가구가 적어

東野居貧家具少

수레를 빌었으나 실을 것 없으매 스스로 웃었다

自笑借車無可載

 

두릉은 몸이 궁한데 또 난리를 만나

杜陵身窮更遭亂

섶을 지고 황정 캐는 신세를 못 면하였다

未免負薪常自採

 

나는 지금 밭은 없고 부숴진 벼루를 먹나니

我今無田食破硯

한평생 붓으로 살아 왔구나

平生唯以筆爲耒

 

옛날부터 우리들이 으레 곤액당하니

自古吾曹例困厄

하늘의 이 뜻은 진정 알기 어려워라

天公此意眞難會

 

다섯 솥 음식과 한 바구니 밥은 비교할 것 못 된다

五鼎一簞未足校

부자로 죽는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 어느 것이 유쾌한가

富死貧生何者快

 

편지 써서 유마힐에게 밥을 비나니

作書乞飯維摩詰

공문의 깨끗한 빚을 싫어하지 않도다

不厭空門淸淨債

 

선생은 생각이 있으면 나를 살릴 것이니

先生有意能活我

어찌 꼭 하감후에게 천 금을 빌리랴

千金何必河監貸

 

-임춘(林椿), <기홍천원(寄洪天院)>

 

 

 

 

 

 

먼저, 예천 임씨의 시조(始祖)인 작가 임춘(林椿)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과 문중의 기록을 참고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고려 의종∼명종 때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호는 서하(西河)이다. 문헌을 상고하여 보면 대략 의종 경에 태어나 30대 후반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건국공신의 후예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할아버지 중간(仲幹)과 상서(尙書)를 지낸 아버지 광비(光庇) 및 한림원학사를 지낸 큰아버지 종비(宗庇)에 이르러 구귀족사회에 문학적 명성으로 기반이 닦여 있었다.

 

1170년(의종 24)년 정중부의 난 때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1차 살육 때 일가가 화를 당하여 조상 대대의 공음전(功蔭田)조차 빼앗겼다. 개경에서 5년 정도 숨어 지내면서 출사(出仕)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친지들로부터도 경원 당하자, 살아남은 가속을 이끌고 영남 상주의 개령으로 옮겨가 7년여의 유락생활(流落生活)을 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글 중 많은 부분이 이 당시에 쓴 것인데, 대부분 실의와 고뇌에 찬 생활고를 하소하는 것들이다. 당시 정권에 참여한 아는 인사들을 통해 여러 번 자천(自薦)을 시도하여 정권에 편입하려고도 했다.

 

1180, 1183년에 절친한 친구였던 이인로와 오세재가 연이어 과거에 합격했는데, 이때쯤 개경으로 다시 올라와 과거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 뒤 경기도 장단(長湍)으로 내려가 실의와 곤궁 속에서 방황하다가 요절했다. 이인로가 그의 문집 서문에 쓴 것에 의하면, “청춘삼십 백의영몰(靑春三十白衣永沒)”이라 하여 30세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 가운데 “나이 40에 양귀밑털이 다 희어졌다”는 말이 있어, 1152년에 태어난 이인로와 동년배인 듯하다. 따라서 그는 30대 후반에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로·오세재 등과 더불어 죽림고회(竹林高會)에 나가 술을 벗하며 문학을 논하여 고려 중기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주기사상(主氣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기질이나 개성을 중시하는 문장론을 주장했다. 고사를 많이 사용하여 문장을 아름답게 수식하는 변려문을 많이 남겼으나, 속으로는 한유(韓愈)가 주장했던 고문운동(古文運動)에 찬동하여, 〈답영사서(答靈師書)〉에서 명유(名儒)라고 했던 사람은 모두 당·송대의 고문가(古文家)였다. 김부식 이래로 소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당시 문풍(文風)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특히 한문과 당시(唐詩)에 능했으며, 강렬한 현실지향성을 문학에서 표출하였다. 그의 시문은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기록되어 있다. 이인로가 그의 작품을 모아 《서하 선생집》 6권을 엮었다.

 

 

 

따라서 이 시 역시 경상도에서 유락(流落) 생활을 하던 시절, 당시 정권에 참여한 지인들에게 자천(自薦)을 시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썩 유쾌한 작품은 아닌 셈입니다. 왜 요즘 교육방송 교재에는 이렇듯 유쾌하지 않은 작품이 많이 수록되는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수험생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선정하는 집필자들의 안목이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이담명이나. 신지의 작품보다는 나은 편입니다. 작품성 자체는 우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임춘의 문장력이 뛰어났다는 점을 역시 무시할 수 없겠군요. 무엇보다 고사(故事)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춘의 독서량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사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현대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 감상에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 작품에 언급된 고사(故事)와 배경 지식이 필요한 어구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꽤 난해해 보일 수 있으나, 찬찬히 읽어보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동야(東野) : EBS 교재에서는 ‘맹교’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맹교[孟郊, 751~814]의 자가 동야(東野)입니다. 결국 같은 사람입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후저우[湖州] 우캉[武康] 출신이며 46세가 되어서야 겨우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하여 각지의 변변찮은 관직들을 맡아 보았습니다. 또한 가정적으로도 불우하여 빈곤 속에서 죽었습니다. 한유(韓愈)와 가까이 지냈으며 그의 복고주의(復古主義)에 동조하여 작품도 악부(樂府)나 고시(古詩)가 많았는데, 외면적인 고풍(古風) 속에 예리하고 창의적 감정과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북송(北宋)의 강서파(江西派)에 영향을 끼쳤으며, 《맹동야시집(孟東野詩集)》 10권이 있습니다.

 

약력에서 보듯 임춘(林椿)과 매우 흡사한 인생을 산 인물입니다. 시인의 처지에서 동질감을 느꼈을 법합니다. 맹동야(孟東野)의 이거(移居)하는 시에, “수레를 빌려 가구(家具)를 실으니 가구가 수레보다 적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시에서는 바로 그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맹교라는 인물이 다소 낯선 수험생도 많을 텐데, 사실은 한문학 쪽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유자음(遊子吟)〉은 널리 알려진 시인데, 바로 그 시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촌초춘휘(寸草春暉)'입니다. ‘풀 한 포기와 봄날의 햇볕’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손에 실 들고, 길 떠나는 아들 위해 옷을 지으시네. 떠나기에 앞서 촘촘하게 바느질 하는 뜻은, 돌아올 날 늦어질까 염려하시기 때문이라네. 뉘라서 말하리오. 풀 한 포기의 마음이, 석 달 봄볕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慈母手中線, 游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풀 한 포기는 자식을 비유하며, 석 달 봄볕은 어버이의 은혜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풀을 잘 자라게 하듯이 어버이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지만, 풀이 봄볕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듯이 자식은 무엇으로도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위의 시의 마지막 구절을 좀 더 살펴볼까요? 먼저 ‘寸(촌)’은 손목에서 맥이 뛰는 곳까지의 거리이며 한 치 즉 약 3.3cm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方寸(방촌)은 사방 한 치 넓이의 사람 마음을 가리키죠. 짧거나 작다는 뜻도 있으니, 寸陰(촌음)이나 寸刻(촌각)은 짧은 시간이고 寸志(촌지)는 작은 성의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寸草心(촌초심)은 한 치 작은 풀과 같은 마음으로 자식의 작디작은 효심을 뜻하게 됩니다.

 

또 報(보)의 왼쪽 부분은 刑具(형구)의 모양이 변형된 것이고, 오른쪽 부분은 손으로 사람을 꿇어앉히는 모습으로 다스림을 뜻하는 服(복)의 원형입니다. 報(보)는 죄인을 판결한다는 본뜻에서 報恩(보은)이나 報復(보복)처럼 ‘갚다’의 뜻, 通報(통보)나 報告(보고)처럼 ‘알리다’의 뜻으로 확대됩니다. 三春(삼춘)은 초봄부터 늦봄까지의 孟春(맹춘)과 仲春(중춘)과 季春(계춘)을 가리킵니다. 暉(휘)는 빛을 가리키며 빛나거나 밝거나 선명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春暉(춘휘)는 봄볕으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또는 은덕을 비유하게 됩니다.

 

 

★ ‘두릉(杜陵)’은 ‘두보(杜甫)’입니다.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인물이니 자세한 설명이 오히려 췌사(贅辭)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최근에 <정본완역 두보전집-두보재주낭주시기역해>(서울대출판문화원 간)라는 책을 옆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습니다. 일곱 명의 중문학자들이 15년에 걸쳐 번역 해설한 저서인데, 한 편으로 감동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 스스로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두보가 ‘섶’을 지고 ‘황정’을 캤다"라고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먼저 ‘섶(brushwood)’은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땔나무의 하나. 잡목의 우죽이나 굵지 않은 잔가지 따위와 같이 부러뜨려서 땔 수 있는 것들을 이르는 말)’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또 ‘황정(黃精)’은 몸이 허약하고 기운이 없으며 여위는 데 보약으로 쓰는 죽대의 뿌리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저희 집 정원에 가향(家鄕)의 사촌 형님이 보내주신 둥굴레 나무가 하나 있고, 그걸 보통 황정이라 하기도 하는데, 본초학에는 워낙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 다섯 솥 음식과 한 바구니의 밥 : EBS 교재에서는 ‘오정(五鼎)’과 ‘일단(一簞)’이라고 원시 그대로 노출하여 번역했습니다. 먼저 ‘오정(五鼎)’은 원래 남한 사전에는 없고 북한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입니다. ‘예전에, 다섯 개의 솥이라는 뜻으로 소ㆍ양ㆍ돼지ㆍ물고기ㆍ고라니를 다섯 개의 솥에 담아 신(神)에게 바치는 것을 이르던 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정(鼎)’은 세발솥을 가리키는 한자입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우리나라에는 ‘삼국지’로 잘못 알려져 있는)에서 위·촉·오를 가리켜 ‘정립(鼎立)’이라고 한 것은 유명하지요. 물론 원래 정(鼎)은 세발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네 발이 더 많습니다. ‘일단(一簞)’은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에서의 ‘일단’입니다.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에 담은 밥을 말합니다. 대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로 쓰이지요. 《논어》에 등장하는, “회[回 안회(顔回)]는 한 대바구니 밥과 한 바가지 물을 마시는 생활로서 누추한 거리에 산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유마힐(維摩詰) : 유마(維摩) 또는 비마라힐(毗摩羅詰)이라고도 하는 부처님의 속제자(俗弟子)입니다. 중인도 비사리국(毗舍離國) 장자(長者)로서 속가에 있으면서 보살 행업을 닦은 이입니다. ‘공문(空門)’은 불교에서 ‘제법개공(諸法皆空)’의 진리를 푸는 불교의 법문(法門). 삼론종(三論宗) 또는 선종(禪宗)의 다른 칭호이나, 보통 불문(佛門), 불가(佛家)의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 하감후(河監侯) : 장자(莊子)가 하감후(河監侯)에게 양식을 꾸어 주기를 청하니, 하감후가 말하기를, “내가 장차 읍(邑)의 금(金)을 얻어서 자네에게 꾸어 주리라.” 하였다.

 

“어느 날 장자는 굶주리다 못하여 하감후에게 양식을 빌리려갔다. 그러나 하감후은 세금을 많이 거두면 양식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장자가 말했다. 내가 여기로 올 때 길바닥 웅덩이에서 물고기가 나에게 말했소. 나는 동해의 신하인데. 물 한 바가지만 끼얹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대답했소. 좋다. 내가 곧 오나라와 월나라로 유세하러 가려는데, 그 때 용왕으로 하여금 너에게 강물을 끌어다 줄 터이니 기다리시오. 그러자 물고기가 나에게 말했소. 당신이 파는 운하가 다 되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건어물 가게에 들어가 있을 것이요.” -장자(莊子) - 외물편(外物篇)의 우화-

 

<작품 해설>

 

형식상 칠언고시(七言古詩)입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두 행이 한 의미 단락을 이룹니다. 쉽게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제1행-제2행]

맹교는 매우 가난했으며, 이사를 하려고 작은 수레를 빌렸는데, 그래도 그것을 모 채울 정도로 세간이 너무 적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마음이 씁쓸했다는 말입니다. 자신도 같은 처지임을 환기(喚起)하는 내용으로 보아 무리가 없겠습니다. 아마도 작자는 자신의 궁핍함을 말하고 싶었던 듯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고사(故事) 활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3행-제4행]

두보는 가난하기도 했고, 또 전란으로 인해 유랑할 수밖에 없었는데, 몸소 땔나무를 해야 했고, 몸소 산나물 따위를 캐야 했다는 내용입니다. 앞의 내용에 이어 자신의 궁핍을 말하는 것인데, ‘난리’를 언급한 것은 자신의 처지와 흡사하다는 뜻이겠지요. 두보가 겪은 ‘안녹산(安祿山)의 난’과 자신이 겪은 ‘정중부의 난’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제5행-제6행]

가난하여 전답은 없고, 벼루를 부숴 가루를 먹는다고 했고, 평생 붓을 쟁기 삼아 지냈다는 내용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그 전하는 바는 가난하다는 것과 책읽기로 한 평생을 보냈다는 내용이니 그리 어려운 시상 전개는 아닙니다. 맹교가 가난했으나 글을 잘 썼고, 두보가 가난했으나 글을 잘 썼고, 자신도 대충 비슷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이 보이네요.

 

 

[제7행-제8행]

참 묘한 지점입니다.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기점에 놓인 시행입니다. 전반부에 붙여야할 지, 후반부에 붙여야 할 지 의문입니다. 곤액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데, 그 나머지가 맹교와 두보일까요? 아니면 홍천원 정도일까요? 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해석하면 글 잘 쓰는 사람들은 으레 곤액을 당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해석하면, 문인들이 곤욕을 치렀던, 당시 상황을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둘 다 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곤액을 당하고 보니 이게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다소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제9행-제10행]

그리고 삶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오정을 누리며 사는 것, 벼슬을 하며 부유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비루하게 사는 것, 가난하게 선비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겠지요. 둘을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궁달(窮達)은 길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자로 살다가 위험에 처해 죽는 것과 가난하게 살면서 위험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 어느 것이 좋을 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둘 다 좋은 것이 아니지요. 일반적인 풍류의 시에서는 후자가 좋다고 하겠지만, 자신의 궁핍한 처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후자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겠지요.

 

 

[제11행-제12행]

그리고 지인(知人)에게 자리 청탁(請託)을 하는 뜻을 드러냅니다. 유마힐에게 밥을 비는 심정으로 자리를 비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에 깨끗한 빚을 지는 일인데, 자신 역시 깨끗한 마음으로 먹고 살만 한 자리를 비는 것입니다. 뭐 대단한 자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관직 하나면 좋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욕심 없이 먹고 사는 걱정 안 할 정도의 자리면 좋겠다는 뜻이겠지요.

 

 

[제13행-제4행]

시인은 지금 대단한 자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청탁의 심정은 간절합니다. 당신은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도움이 절실하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덧붙입니다. ‘나중에 좀 사정이 나아지면 도와줄게, 그 때 좋은 자리 하나 줄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자리라도 좋으니,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고상한 표현들을 구사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절박하니,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BS 문제 및 강의 분석]

 

 

정답 및 해설 25쪽에서 이 작품에 대해 “(나)의 경우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지만, (가)와 (다)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고 있다. 환언하면 임춘의 <기홍천원>에는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지 않다.”가 되는 셈입니다. 과연 이 해설이 적절할까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① ‘가난한 상황’ : 시적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가난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합니다. 당연히 궁핍한 처지입니다.

 

 

② ‘자신의 의지로 해결’ : 역시 당연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혹시 출제자는 지금 구직을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니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일까요? 그러나 이 해설은 그런 문맥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③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는가? : 아마도 출제자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위와 같이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한탄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한 평생 붓으로 살아왔구나.”에도 탄식이 내재되어 있고, “하늘의 이 뜻은 진정 알기 어려워라.”는 말 그대로 신세 한탄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출제자는 ‘직접적’으로 탄식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렇게 처리한 듯하나, 적절한 설명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을 ‘상상, 탄식, 성찰, 애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BS 수능 특강 분석(2)-누항사 관련]

 

수능특강 55쪽 8번 문제와 해설입니다.

 

 

화자가 소를 빌리러 가는 장면입니다. 답지는 이렇습니다.

 

 

② (고민하고 반신반의하며) ‘소주인 집에 빈손으로 갈까 아니면 값이 될 만한 무엇을 들고 갈까? 그런데 소는 빌려줄까?’

 

 

 

해설은 이렇습니다.

 

 

화자는 주인이 비록 대충한 말이기는 하지만 소를 빌려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기에 기대감을 갖고 소를 빌리러 간다. 따라서 소를 빌려줄지 않을지 반신반의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거저로나 값을 치거나 빌려 줄만도 하다마는’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빈 손일지라도 소 주인이 대가에 상관없이 소를 자신에게 빌려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 빈 손으로 갈지 아니면 값이 될 만한 무엇(물건, 돈 등)을 들고 갈지 고민한 것은 아니다.

 

 

 

문제 및 해설 분석

 

① 우선 띄어쓰기 : ‘빈 손’은 ‘빈손’이 맞습니다.

 

 

② 작품의 오독(誤讀) : 해설에 따르면 ‘거저로나 값을 치거나 빌려 줄만도 하다마는’은 화자의 생각이 되어 버립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소 주인이 변명하는 말의 일부입니다. 그 오독의 결과로 ‘소 주인이 대가에 상관없이 소를 자신에게 빌려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는 엉뚱한 해설이 도출되고 말았습니다.

 

 

③ ‘값이 될 만한 무엇’이라는 것의 예에 ‘돈’을 포함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우리말 어휘 사용입니다.

 

 

④ 해설의 논리 결여 : 해설의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의 논리적 연결이 매우 어색합니다. 작품과 아무런 관련 없이 읽어 봅시다. (소 주인이) 대충한 말임을 알고 있는 화자가 (소 주인이 소를 빌려 줄 것을) 확신을 했다는 논리가 되어 버립니다. 좀 덜떨어진 화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럴 리가 없겠지요.

작품과 관련하여 읽으면 더욱 문제가 있는 설명입니다. 화자가 소를 빌려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소 주인 집을 방문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전혀 확신에 찬 행동이 아닙니다. 우선 소 주인의 말을 ‘대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화자 역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문 밖에서 인기척을 꽤나 여러 번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염치없음을 안다고 미리 밝힙니다. 결국 화자는 소 주인이 소를 빌려 줄 것인지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