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두메산골의 어려운 형편(山居窮苦之狀)’을 묻자, 그에 답한 작품이라 전한다. ‘누항(陋巷)’이란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 가난한 삶 속에서도 학문을 닦으며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공간을 말할 때 자주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가난하나 원망하지 않는 ‘빈이무원(貧而無怨)’과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암시하고 있다.
조선전기의 가사는 자연에 은거하는 생활을 멋과 풍류로 그려 내고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찬탄하지만, 이 작품은 현실 생활의 궁핍함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이념적으로만 사대부의 정신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의 산림에 묻힌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이를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의 부조화를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조선전기의 서정적 가사에서 조선후기의 서사적 가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7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에서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하늘에 맡기고 누추한 곳에서 가난하게 살려고 하는 심정을 읊었고, ?에서는 가난한 생활에 굶주림과 추위가 닥쳤으나, 지난날 몸을 잊고 의를 좇아 5년간의 임진왜란에 고투하던 일을 회상하였다. ?에서는 몸소 농사를 짓고자 하나 농사일에 쓸 소가 없어 낙심하는 대목이고, ?에서는 소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받고 돌아오는 정경을, ?에서는 집으로 돌아와서 야박한 세상 인심을 한탄하며 봄갈이 할 생각을 그만두는 대목이다. ?은 청풍명월을 벗삼아 임자 없는 자연 속에 절로 늙기를 바라는 대목, ?은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고, 충효에 힘쓰고 형제들과 화목하며 벗들과 신의 있을 것을 다짐하는 대목으로 되어 있다.
표현면에서도 어려운 한자 어구를 구사하여 사대부적인 취향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평민들의 일상 언어를 대폭 수용하여 사대부 가사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설득력을 잃은 사대부의 자연 은거와 안빈낙도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그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EBS 수능 특강 분석]
수능특강 55쪽 8번 문제와 해설입니다.
화자가 소를 빌리러 가는 장면입니다. 답지는 이렇습니다.
② (고민하고 반신반의하며) ‘소주인 집에 빈손으로 갈까 아니면 값이 될 만한 무엇을 들고 갈까? 그런데 소는 빌려줄까?’
해설은 이렇습니다.
화자는 주인이 비록 대충한 말이기는 하지만 소를 빌려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기에 기대감을 갖고 소를 빌리러 간다. 따라서 소를 빌려줄지 않을지 반신반의했다고 보는 것은 절절하지 않다. 또한 ‘거저로나 값을 치거나 빌려 줄만도 하다마는’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빈 손일지라도 소 주인이 대가에 상관없이 소를 자신에게 빌려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 빈 손으로 갈지 아니면 값이 될 만한 무엇(물건, 돈 등)을 들고 갈지 고민한 것은 아니다.
문제 및 해설 분석
① 우선 띄어쓰기 : ‘빈 손’은 ‘빈손’이 맞습니다.
② 작품의 오독(誤讀) : 해설에 따르면 ‘거저로나 값을 치거나 빌려 줄만도 하다마는’은 화자의 생각이 되어 버립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소 주인이 변명하는 말의 일부입니다. 그 오독의 결과로 ‘소 주인이 대가에 상관없이 소를 자신에게 빌려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는 엉뚱한 해설이 도출되고 말았습니다.
③ ‘값이 될 만한 무엇’이라는 것의 예에 ‘돈’을 포함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우리말 어휘 사용입니다.
④ 해설의 논리 결여 : 해설의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의 논리적 연결이 매우 어색합니다. 작품과 아무런 관련 없이 읽어 봅시다. (소 주인이) 대충한 말임을 알고 있는 화자가 (소 주인이 소를 빌려 줄 것을) 확신을 했다는 논리가 되어 버립니다. 좀 덜떨어진 화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럴 리가 없겠지요.
작품과 관련하여 읽으면 더욱 문제가 있는 설명입니다. 화자가 소를 빌려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소 주인 집을 방문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전혀 확신에 찬 행동이 아닙니다. 우선 소 주인의 말을 ‘대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화자 역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문 밖에서 인적기를 꽤나 여러 번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염치없음을 안다고 미리 밝힙니다. 결국 화자는 소 주인이 소를 빌려 줄 것인지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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