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국어어휘력

잘못 알고 있는 어원 몇 가지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3. 15. 22:28

 

잘못 알고 있는 어원 몇 가지

 

1

 

궁금하고 관심이 많은 것에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더 많이 따라붙게 된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제각기 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이야기 속에는 믿을 만한 정보는 거의 없고 잘못된 정보가 판을 친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원’도 그와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특정 단어의 ‘어원’에 큰 관심을 보여 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떠돌지만 대부분이 잘못된 것이다. 전문학자가 내놓는 빗나간 어원론까지 가세하게 되면 더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러한 혼란 양상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러다가 간혹 특정 어원 설이 정설인 양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잘못된 어원 설이 정설로 둔갑하면 그 잘못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을 일깨우는 데 꽤나 오랜 세월이 걸린다. ‘행주치마’의 어원이 ‘행주대첩(幸州大捷)’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치게 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잘 증명해 준다.

때로는 정설처럼 굳어진 잘못된 어원 설이 교육을 통해 권위를 부여받기까지 한다. 진실과 먼 어원 설이라도 선생님 말씀이라는 것 때문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어원이 ‘아이를 낳는 주머니가 있는 여자’이고, ‘화냥’의 어원이 ‘환향(還鄕)’에 있다는 잘못된 어원 설이 아직도 학교 주변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 이들 이외에도 잘못 교육된 어원 설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가랑비, 으악새, 짱깨집, 환장’ 등도 그와 같은 성격의 것들이다.

 

 

 

2

 

2.1. 가랑비

 

옛날에 어떤 집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주인이 꾀를 내어 “가라고 가랑비 오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님은 “있으라고 이슬비 오네.”라고 응수하며 버티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긴 말이 “가라고 가랑비, 있으라고 이슬비”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라고’ 하여 ‘가랑비’일 리 없고, ‘있으라고’ 하여 ‘이슬비’일 리 없다. “가라고 가랑비, 있으라고 이슬비”라는 표현은 ‘가랑비’의 어원을 알 수 없던 차에 그저 재미로 붙여본 것이다. ‘이슬비’야 ‘이슬’처럼 내리는 비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지만, ‘가랑비’는 어떤 비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가랑비’의 옛말을 찾아 그 어형을 분석해 보면 그 답을 못 낼 것도 없다. ‘가랑비’는 이른 시기에는 ‘’였다. 이 ‘’는 ‘’와 ‘비[雨]’가 결합된 구조이다.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ㅂ’이 유성음화하여 ‘비’가 ‘’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는 ‘雨’의 뜻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다. 이 ‘’의 정체가 드러나야만 ‘’의 어원, 더 나아가 ‘가랑비’의 어원이 밝혀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가루[粉]’가 옛날에 ‘’였고, ‘가랑비’가 언뜻 보면 ‘가루’가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인다는 점에 이끌려 ‘’를 ‘가루처럼 내리는 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루[粉]’와 관련시킬 수 있는 비에는 ‘가랑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슬비, 이슬비’ 등과 같은 여타의 가느다란 비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크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를 동사 어간 ‘-[分]’로 간주하여 ‘’를 ‘갈라진 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 이름에 굳이 ‘-[分]’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해석도 믿음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가랑비’를 ‘-[分]’와 연계시켜 해석한 것은, ‘-[分]’와 관계가 있는 ‘가랑머리, 가랑비녀, 가랑이’ 등에 쓰인 ‘가랑’에 유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럼 ‘’는 무엇인가? ‘’는 ‘안개[霧]’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杜詩諺解>(1481)의 “늘근 나햇 고  소개 보 도다(늙은 나이의 꽃은 안개 속에 보는 듯하도다).”에 나오는 ‘’가 바로 ‘霧(무)’를 뜻하는 그것이다. 초간본 <杜詩諺解>(1481) 속의 ‘’는 중간본 <杜詩諺解>(1632)에는 ‘안개’로 바뀌어 나온다. 이로써 ‘’가 ‘안개’와 같은 의미의 단어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로 해석된다. ‘이슬비’가 ‘이슬처럼 내리는 비’라면, ‘’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인 것이다. 지금도 ‘가랑비’를 ‘안개비’라 하고 있다.

15세기의 ‘’는 17세기에는 ‘랑비’로 변하여 나온다. ‘랑비’의 ‘랑’은 ‘’에 접미사 ‘-앙’이 결합된 어형으로 파악된다. 이 ‘랑비’는 18세기 이후 ‘가랑비’로 변하여 지금에 이른다.

‘’가 ‘랑비>가랑비’로 어형이 크게 달라져 유연성이 상실되자 ‘랑비>가랑비’의 어원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더군다나 ‘霧(무)’를 뜻하는 ‘’가 ‘안개’라는 단어에 밀려나 일찍 사라지면서 ‘랑비>가랑비’를 ‘안개’와 연계해서 생각하기란 더욱 어렵게 된다. 그래서 가라고 하여 ‘가랑비’라 했다느니, ‘가랑가랑’ 내리는 비여서 ‘가랑비’라 했다느니 하는 등의 엉뚱한 어원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비’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 한 그것이 ‘가랑가랑’ 내릴 리 없다.

그런데 지금의 ‘가랑비’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저 ‘가늘게 내리는 비’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안개처럼 내리는 비’는 ‘안개비’를 먼저 연상하게 된다.

 

 

 

2.2. 으악새

 

원로 가수 ‘고복수’ 선생이 부른 ‘짝사랑’(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그 첫머리는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한다. ‘으악새가 아주 구슬프게 울어대는 것을 보니 벌써 가을이 온 것이 아니냐’는 애절한 심정을 담고 있는 가사이다. 이 노래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이 노랫말을 읊조리며 깊은 상념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애창하는 사람들도 정작 ‘으악새’가 어떤 새인지 잘 모른다.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으면 그저 ‘으악, 으악’ 우는 새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만 한다. 새 이름에는 그 울음소리를 흉내낸 의성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는 점에서 ‘으악새’를 ‘으악, 으악’ 하고 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도 크게 잘못은 아니다. ‘뻐꾹, 뻐꾹’ 울어서 ‘뻐꾹새’이고, ‘종달, 종달’ 울어서 ‘종달새’가 아닌가.

문제는 그러한 새를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으악, 으악’하면서 우는 새를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흔든다. ‘으악새’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으악새’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도 생소하다.

그래서 이 노래에 나오는 ‘으악새’를 새 이름이 아니라 풀이름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사실 필자도 그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으악새’가 포함하는 ‘새’가 ‘풀’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실제 ‘으악새’가 ‘억새’라는 풀의 경기 방언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그 강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으악새’를 ‘억새’로 보는 사람들은 “으악새 슬피 우는”이라는 구절을, 억새가 가을바람에 물결치듯 흔들릴 때 우는 듯한 마찰음이 나는데 그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설명한다. 억새가 소슬바람에 스치는 소리는 정말로 스산하고 처량하다. 그래서 그 소리를 얼마든지 풀이 우는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 표준어인 ‘억새’가 아니라 방언인 ‘으악새’로 표현한 것은 노래의 가락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시적(詩的) 해석으로 말미암아 이 노래는 더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 속의 ‘으악새’가 ‘억새’라는 풀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일 뿐이니 어찌하랴. 이 노래의 작사자는 노랫말을 쓴 배경을 설명하면서 ‘으악새’를 뒷동산에 올라가 보니 멀리서 ‘으악, 으악’ 우는 새의 소리가 들려 붙인 이름으로 설명한다.

그럼 이 ‘으악, 으악’ 울던 새는 어떤 새였을까? 딱히 그 새의 종류를 말할 수는 없지만 ‘왜가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 ‘왜가리’를 ‘으악새’니, ‘왁새’니 하기 때문이다. ‘왜가리’의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으악, 으악’으로 들릴 수도 있고, ‘왁, 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으악, 으악’ 우는 소리를 근거로 ‘으악새’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고, ‘왁, 왁’ 우는 소리를 근거로 ‘왁새’나 ‘왜가리’라는 명칭이 만들어질 수 있다. ‘으악, 으악’ 우는 소리와 ‘왁, 왁’ 우는 소리는 그렇게 다른 소리가 아니다. ‘왜가리’라는 새의 울음소리를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들을 수 있다면 ‘으악새’니, ‘왁새’니, ‘왜가리’니 하는 서로 다른 명칭이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래 속에 나오는 ‘으악새’가 새 이름이라는 사실은 그 노래의 제2절을 들어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제2절은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한다. ‘으악새’와 대응되는 ‘뜸북새’가 조류 이름이기에 그에 대응되는 ‘으악새’ 또한 조류 이름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는 ‘으악새라는 새가 슬피 울어대니 가을이 아닌가요’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으악새’를 ‘억새’로 풀이할 때의 시적 이미지는 싹 가신다. 그러나 어찌하랴. ‘으악새’는 풀이 아니라 새인 것을.

 

 

 

2.3. 짱깨집

 

어린 시절 먹어본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하나 들라고 하면 ‘자장면’을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별한 기회에 먹어본 ‘자장면’ 맛은 놀라움과 환히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옛날 자장’을 찾아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 시절에는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으로 불렸다. ‘짜장면’은 어린아이들의 대표적인 ‘외식’이었다. 무엇인가 색다른 것이 먹고 싶으면 ‘짜장면’ 사달라고 얼마나 졸라댔던가.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에 ‘짜장면’은 아무 때나 얻어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아니었다. 생일이나 졸업 때와 같은 특별한 날에나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맛있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짜장면’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니 ‘짜장면’이라는 이름 또한 중국어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짜장면’의 ‘짜장’은 중국어 ‘炸醬[Zhajiang]’에서 온 말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그들의 된장을 ‘炸醬[Zhajiang]’이라 하는데, 이를 이용한 음식이 ‘炸醬[Zhajiang]’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면’은 한자 ‘麵’이다. 중국어로는 ‘멘’이지만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면’이다. 이렇게 보면 ‘자장면’은 ‘중국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의 단어가 된다.

최근 ‘짜장면’은 ‘자장면’에 표준어로서의 자격을 내주었다. 외래어는 원지음(原地音)의 발음을 존중해서 표기한다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대체되면서 ‘짜장면’에 대한 명성은 추억 속에나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자장면’을 파는 음식점을 ‘중국집’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중국집’이라는 말 이외에 ‘짱깨집’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짱깨집’에는 좀 비하(卑下)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 그렇게 호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짱깨집’은 ‘짱깨’와 ‘집’이 결합된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큰 사전을 보면 ‘짱깨’를 ‘자장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해 놓고 있다. 그렇다면 ‘짱개집’은 ‘자장면을 파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 중국집에서 파는 대표적인 음식이 ‘자장면’이니 중국집을 ‘자장면을 파는 집’으로 이해해도 될 듯도 하다.

그런데 ‘짱깨’가 ‘자장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짱깨’는 중국어 ‘掌櫃’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掌櫃’는 중국 음으로 ‘짱궤이’인데 이것이 변하여 ‘짱깨’가 된 것이다.

그러면 ‘掌櫃’는 어떤 의미인가? 한자 뜻 그대로 ‘돈궤를 장악하는 사람’이니 ‘주인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짱깨집’은 ‘자장면을 파는 집’도 아니고 ‘중국 음식을 파는 집’도 아닌 ‘주인장 집’이라는 조금은 모호한 의미가 된다. ‘주인장 집’과 ‘자장면을 파는 집’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렇듯 ‘짱깨집’이라는 엉뚱한 단어가 생겨난 것은 ‘주인장’을 뜻하는 ‘짱깨’를 음식 이름 ‘자장면’으로 잘못 받아들인 결과이다. ‘짱깨’를 ‘자장면’의 뜻으로 잘못 이해한 뒤 이 단어에 ‘집’을 붙여 ‘짱깨집’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다. 아마도 ‘짱깨집’은 최근에 조어(造語)된 단어로 추정된다.

‘掌櫃’는 중국어로서뿐만 아니라 한자어로서도 국어에 들어와 있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장궤’라 한다. 사전에서는 ‘장궤’에 ① ‘부자’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 돈 많은 사람, ③ 가게의 주인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달고 있다. 이 가운데 ③이 그 원래의 의미에 가깝다. 장사를 하는 가게의 주인은 돈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자’라는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2.4. 환장(換腸)

 

‘환장’은 ‘간장(-醬), 된장(-醬)’ 등과 같은 조미료는 절대로 아니다. 아울러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과 같은 오장(五臟)의 하나도 아니며, ‘대장, 소장’과 같은 창자의 하나도 아니다.

그러면 ‘환장’은 무엇인가? 이 ‘환장’을 ‘煥腸’으로 보고, ‘속에서 불꽃이 튀다’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환장’이 ‘腸’을 포함하는 한자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빛날 煥’ 자를 포함하는 ‘煥腸’은 아니다. 설령 ‘煥腸’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환장’은 한자어 ‘換腸’이다. 한자 ‘換’은 ‘바꾸다’의 뜻이고, 한자 ‘腸’은 ‘창자’라는 뜻이다. 이것만 보면 ‘환장(換腸)’은 ‘장을 바꿈’이라는 의미가 된다. 장이 꼬이고 뒤집히는 것을 ‘환장(換腸)’이라 이해하고, 장이 꼬이고 뒤집힐 정도로 크게 흥분되고 화가 나는 것을 ‘환장(換腸)’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장’이 ‘換腸’인 것은 분명하나 ‘장이 뒤집힘’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여기서의 ‘腸’은 ‘창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腸’에는 ‘창자’라는 뜻과 아울러 ‘마음’이라는 뜻도 있다. ‘환장(換腸)’을 ‘환심(換心)’이라고도 하고, ‘환심장(換心腸)’이라고도 하는 것만 보아도 ‘환장(換腸)’의 ‘腸’이 ‘마음’의 뜻임을 알 수 있다.

‘환심(換心)’이라는 한자어는 ‘腸’이 ‘心’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기뻐서 즐거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환심(歡心)’과 혼돈하여서는 안 된다. 한편, ‘환심장(換心腸)’은 ‘腸’이 ‘心腸(심장)’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심장(心腸)’은 ‘마음의 속내’라는 뜻이다. “그가 비록 좋은 낯으로 나를 대하나 그 심장은 실로 알 수 없었다.”에 쓰인 ‘심장’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마음’이나 ‘속내’와 뜻이 통한다. 물론 ‘심장’이 ‘心臟’이 아님에 유념해야 한다. ‘心臟’은 ‘염통’이라 하여 오장(五臟) 중의 하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심장에 불을 지피다’, ‘심장에 새기다’, ‘심장을 울리다’ 등과 같은 관용어에 자주 등장하는 ‘심장’은 물론 ‘心臟’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유념해야 할 것은 ‘환심장(換心腸)’이 줄어들어 ‘환장(換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설명이 널리 퍼져 있다. ‘환장(換腸)’의 ‘腸’만으로도 ‘마음’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없으므로 굳이 ‘환장(換腸)’을 ‘환심장(換心腸)’의 준말로 바라볼 이유는 없지 않나 한다. ‘환심장(換心腸)’은 ‘환장(換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단어로 볼 수 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웬만하면 ‘준말’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준말이 아닌 것들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가령, ‘색시’를 ‘새색시’의 준말로 설명하지만 ‘새색시’는 ‘색시’에 ‘새’가 첨가된 단어이므로 준말이 아니다.

‘환장(換腸)’의 ‘換’이 ‘바꾸다’의 뜻이고, ‘腸’이 ‘심장’과 같이 ‘마음’을 뜻하므로 ‘환장(換腸)’은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이 된다. 마음이 전과 전혀 달라지는 것이 ‘환장(換腸)’이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바꾸게 되면, 곧 마음이 변하면 전과 전혀 딴판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환장’에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달라짐’이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환장을 안 할 어미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표현은 아들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 전혀 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환장’은 또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이 됨’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 사람 환장을 했데.”, “저 친구, 하는 짓을 보니 실성 아니면 환장이다.” 등에 쓰인 ‘환장’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크게 충격을 받거나 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맬 수가 있다.

 

 

 

3

 

잘못된 어원 정보는 우리말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유 세계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원 정보 하나하나를 검토해서 그 정오(正誤)를 판단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일은 전적으로 국어학자들이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실 밖의 국어 혼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반성을 해 본다. 이 글은 그 반성의 첫 장이다. 그런데 반성문을 쓰다 또 틀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가랑비’는 ‘’로 소급한다. ‘’가 ‘안개’와 같으므로 ‘’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비’로 이해되고 있다.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2) 유행가 속에 나오는 ‘으악새’는 의성어를 이용한 새 이름이다. 어떤 새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왜가리’를 ‘으악새’로 부르는 지역이 있다는 점에서 ‘왜가리’일 가능성이 높다.

(3) ‘짱깨집’의 ‘짱깨’는 중국어 ‘掌櫃(짱궤이)’이다. ‘掌櫃’는 ‘주인장’의 뜻이므로 ‘짱깨집’은 잘못 조어된 단어이다. ‘짱깨’를 ‘자장면’의 뜻으로 오해하고 거기에 ‘집’을 결합하여 ‘중국집’이라는 의미의 ‘짱깨집’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4) ‘환장’은 한자어 ‘換腸’이다. 한자 ‘腸’은 ‘마음’의 뜻이다. 그리하여 ‘換腸’은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이 된다. ‘換心, 換心腸’ 등과 같은 의미이다.

 

[참고]

[밀물썰물] 가을

24절기에서 가을의 절기는 입추,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의 순이다.

가을의 우리 민속 명절로서는 7월 칠석,백중(음력 7월 15일),

8월 추석,중양절(음력 9월 9일)을 들 수 있다.

절기상 추분이 모레이고,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도 이레 앞이다.

이제 어느덧 계절이 가을로 성큼 접어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가을은 결실과 수확에 따른 풍요,기쁨,감사의 이미지와 함께 쇠퇴

,쇠락,쇠잔,소멸의 이미지도 동시에 갖는다.

시듦과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대중가요 '짝사랑'도 그 시간적 배경이 이 같은 가을이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이 가요는 으악새를 놓고

'억새다','새다'라는 논쟁을 불러와 더욱 유명세를 탔다.

90년 이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에서는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였다.

따라서 당연히 '억새'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그 이후'우리말 큰사전'(1991,한글학회),'국어 대사전'(1991,삼성문화사)에서는

으악새가 '억새' 외에도 '왜가리'의 방언이라고도 적고 있다.

 

또 '우리말 큰사전',북한의 '현대 조선말 사전'(1981), 북한의 '방언 사전'에는

왜가리의 또 다른 방언이 왁새라고 밝히고 있다.

이제는 으악새 즉 왁새는 곧 왜가리라는 주장이 더 세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요의 노랫말은 당시 OK레코드사 문예부장이던 금릉인이 지었으나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작곡가 손목인은 1999년,

가수 고복수는 1972년에 각각 사망했다.

'증인'이 아무도 없는 셈이다.

단지 고복수가 태어난 울산시 중구의 북정동 동헌 앞에 그의

대표작인 '타향살이' 노래비가 서 있을 뿐이다.

또 고복수가 부산 내성초등학교로 5학년 때 전학왔고,

1930년 동래고보를 졸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확인 후 교정에 자랑스러운 선배를 기리는 '

표지석'이라도 하나쯤 세운다면 이 조락의 계절 가을이 조금은 덜

쓸쓸할 것 같다.

lms@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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