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들

노량진 고시촌에는 이맘때가 되면 항상 묘한 기류가 흐른단다

국어의 시작과 끝 2013. 12. 8. 06:57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혼자서 공부하다 보니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할 때가 많아요. 합격이라는 희망고문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청춘들이 넘쳐나는 곳이 노량진 고시촌입니다."

안개와 미세먼지가 뒤엉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지난 5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육교 너머에 있는 '고시촌'.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바지와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고시 수험생들이 쏟아졌다.

무표정한 이들 사이로 아무렇게나 신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쫓기듯 걸음을 옮기는 전모(29)씨를 만났다.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컵 모양 그릇에 김치볶음밥이나 오무라이스 등을 담아 파는 노량진의 명물인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컵밥은 2000~3000원 안팎의 싼 가격과 빨리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고시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있단다. 컵밥을 파는 노점상 주변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전씨와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한 손엔 컵밥을, 다른 한 손엔 가방을 든 채 연신 숟가락질을 하기에 바빴다.

"가난하고 바쁜 수험생들에게는 이만한 식사가 어디 있겠어요. 불편하지만 간편하게 빨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허겁지겁 배를 채운 전씨는 서울 동작경찰서가 훤히 보이는 학원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는 콩나물시루처럼 학생들로 가득찬 강의실에서 익숙한 듯 빼곡하게 차있던 책상사이를 가로질러 자리를 잡았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전씨는 올해로 2년째 경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일컫는 말)'이 됐다.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생활패턴 탓에 지칠 대로 지쳐서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수십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1년 정도만 준비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당찬 각오로 시작했던 고시 수험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매달 나가는 방값과 학원비, 인강(인터넷 강의)비용도 감당하기가 벅찼다.

그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 청소와 정리 등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료로 수업을 듣는다.

전씨는 "취업문이 갈수록 더욱 좁아지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노량진에서 1년 넘게 생활하다보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다른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 때문에 스스로 위축된다"며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웠다.

전씨는 학원에서 10여분 떨어진 골목에 있는 월세 35만원짜리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 방 한 칸을 얻어 생활한다. 건물 한 층에 방이 20여개나 있다보니 통로는 어둡고 비좁았다. 방은 겨우 한 평 남짓. 창문도 없고 환기구라고 해봐야 출입문 위의 작은 구멍이 전부였다.

한 켠을 차지한 침대 때문에 다리를 뻗을 공간조차 제대로 없었다. 잠을 잘 때는 다리를 책상 밑으로 넣어야만 제대로 누울 수가 있을 정도로 불편했다.

전씨는 "고시원 생활 1년여 만에 소리 내지 않고 침대에서 돌아눕고, 소리 내지 않고 걸음을 옮기는 법을 체득했다"며 "어느 순간부터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마저도 무감각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순찰차를 운전하고 싶다"며 "물리도록 먹은 지긋지긋한 컵밥은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노량진 고시촌에는 이맘때가 되면 항상 묘한 기류가 흐른단다. 공무원 시험이 사실상 끝나면서 합격 여부가 판가름이 나는 탓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최종 면접만을 앞 둔 수험생과 불합격이라는 좌절을 경험하고 주저앉아 갈등하는 수험생 사이에 희비가 교차한다.

여기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문을 실감한 뒤 '1년만 공부하자'며 보따리를 지고 고시촌으로 입성하는 새로운 공시족들의 등장은 이제는 익숙한 고시촌의 풍경이란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문이 '바늘구멍'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20~30대 청춘들. 공무원을 꿈꾸는 청춘들은 오늘도 도심의 또 하나의 쪽방 고시원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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