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임재범의 <여러분> 뒤집어보기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11. 16:45

 

 

 

 

여러분

 

작사 : 윤항기 작곡 : 윤항기 노래 : 윤복희/ 임재범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나는 너의 형제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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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일이다. 윤복희를 소개하는 일은. 신세대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그녀는 늘 말 그대로 연예계의 핫 이슈였다. 잘못 알려졌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미니스커트를 한국에 소개한 것이 그녀라고 알려져 있다. 남진과의 결혼 그리고 이혼도 역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또 가수 윤항기와 남매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 60대 중반인 그녀의 가요 이력이 60년에 달한다는 점도 놀랍다. 이래저래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그녀다.

 

그리고 참 묘한 인연이다. 지난주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남진의 <빈잔>을 멋지게 소화해서 화제가 되었다. 임재범이 그 다음에 부른 노래가 윤복희의 <여러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윤복희와 남진은 한때 부부였다. 남진이야 이미자, 조용필 등과 함께 한국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물(?)이니 여기서 더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정말 묘하지 않은가? 임재범이 <빈잔>을 부르고 그 다음에 <여러분>을 부른다는 것이 말이다. 우연일까?

 

나는 임재범을 보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배우 최민수가 떠오른다. 이미지가 겹쳐진다. 가정사가 비슷하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둘 다 넓은 의미의 방송인 집안 출신이다. 겉으로 보아 유복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저간의 사정은 가수 손지창이 임재범의 이복동생이라는 점을 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둘이 겹쳐지는 것은 아마도 고독한 남성적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재범이 <빈잔>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티베트의 고승을 연상시키는, 편곡된 <빈잔>을 부를 때의 임재범의 모습이 그 증거이다. 아마도 최민수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편곡하여 부른다면 비슷한 이미지일 것 같다. 바로 이 점이 임재범을 보면서 내가 최민수를 떠올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가요는 그 바탕에 여성성이 흐르고 있다. 여자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대부분 여성적이다. 변화 지향적이기보다는 안정 지향적이고, 명분을 중시하기보다는 정감을 중시하며, 권위와 형식보다는 내면과 질을 중시한다. 많은 노랫말이 보여주는 생태학적 상상력도 사실은 여성중심주의적 세계관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랫말의 경향이 가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시가 바로 그러하다. 김소월, 김영랑, 박목월, 박재삼 등 많은 시들이 사실은 여성적 정조 또는 여성적 상상력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시가문학과는 천지 차이다.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쓴 정철의 가사문학 정도가 여성적일 뿐, 대부분의 조선시대 문학은 남성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임재범의 노래는 백로 가운데 섞인 까마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대중들이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을 보고 환호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실상 임재범은, 좋지 않는 몸 상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전만큼의 엄청난 가창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그의 노래에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그것을 만회하려는 의도의 반영인지 모르지만, 윤복희의 <여러분>을 택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바로 이 점이 궁금하다.

 

생각해 보건대, 윤복희의 <여러분>은 노랫말만으로 보았을 때, 윤복희의 노래가 아니다. 그의 오빠인 윤항기의 노래이다. 실제로 작사, 작곡이 윤항기이다. 오빠가 여동생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노래가 <여러분>인 것이다. 괴로울 때면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도 오빠의 마음이요, 서러울 때면 눈물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도 오빠의 마음이다. 그리고 오빠는 말한다.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이며, 너의 영원한 친구이며, 너의 영원한 노래라고 말한다. 모두가 여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오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노래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다른 곳이다.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를 주목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어둔 밤거리는 수컷들의 공간이 아닌가? 그 밤거리는 남성의 논리, 힘의 논리만이 허용되는 공간이 아닌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공간이 아닌가? 그 길을 여성인 동생이 걷고 있는 것이다. 위험할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찢기고, 짓밟힐 것이다. 격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오빠는 격리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불이 되겠다고 한다. 그 전제가 무엇인가? 그 길을 당당하게 가라는 것이 아닌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그 길을 가라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점에서 겉은 단순한 오빠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속은 여느 오빠들과는 사뭇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오빠는 자신과 여동생의 관계를 ‘오누이’ 관계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 ‘형제(兄弟)’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형제’라는 단어에 ‘동기(同氣)’라는 용법이 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그것은 형과 그 남동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바로 이 점이 <여러분>에서 오빠가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다른 비슷한 설정의 노래와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임재범은 왜 이 노래를 부른 것일까? 임재범의 노래가 갖는 최대 강점은 '감정 이입' 쉬운 말로 '몰입'이다. 그는 거의 완벽하게 노랫말의 화자에 동화되어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임재범의 음이탈마저도 아름답게 느끼게 한다] 이를 위해 그가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면 임재범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화자에 몰입한 것일까? 오빠일까? 여동생일까? 오빠일 것이라고 쉽게 판단하기 쉽다.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여동생의 입장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윤항기가 아닌 윤복희에 몰입했음에 분명하다. 남진의 아내였던 윤복희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결국 <빈잔>을 부를 때의 자신, 그 맞은편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얼마나 히스토리가 있는 전개인가? 그는 무대에서 한 편의 애정 서사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문제, 그는 윤복희라는 가면을 쓰고, 이전 무대의 빈잔을 들고 있는 또 다른 가면을 쓴 자신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로 이 점이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인생에 봄날은 없었다.

내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는가?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나무의 거친 껍질 속에

참으로 연한 속살이 있고, 그 속에 봄의 씨앗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내 거친 남성성 속에 상처받기 쉬운 여성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라는 노래 속의 어둔 밤길을 걷는 여인의 모습을

좌우를 바꿔 비춰주는 거울에 비춰보면 그러한 것처럼

 

 

 

물론 임재범이 들고 있는 거울은

좌우가 아닌 남성과 여성을, 겉과 속을 뒤집어 보여주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