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권진원, 삶이란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살다보면>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4. 29. 07:33

 

살다보면

-권진원

 

 

 

 

살다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 너무도 많아

나도 한번 꿈같은 사랑 해봤으면 좋겠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걱정 멀리 던져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우우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살다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 너무도 많아

나도 한번 꿈같은 사랑 해봤으면 좋겠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걱정 멀리 던져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우우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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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무거운 주제다. 이 물음에 간명한 답은 애초에 없다. 하지만 걸음마를 배울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일어서고. 그러다가 제 스스로 걷는 법 배우기라고.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울 수 없는 것처럼, 코에 물 들어가는 일 없이 수영을 배울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무릎방아 한번 찧지 않고 걷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내게는 지금 중3인 딸이 있다. 아직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워할 나이는 아니지만, 딸은 아빠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의 일이다. 나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 주다가, 딸이 모르는 사이에 손을 놓아 버린다. 그것도 모르고 자전거를 타다가 딸은 어느새 혼자 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내 전략을 딸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딸은 그 아슬아슬했던 추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두 발 자전거로 홀로 처음 운동장을 돌 때의 그 두려움과 설렘 말이다. 물론 몇 번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세상살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홀로 서기 위해서는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고독하고, 힘들다. 살다보면 하늘 아래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살다보면 참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이 고달픈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온갖 근심과 걱정 다 벗어 던져 버리고 “맘껏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절실하게 갈구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외면할 때도,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 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갈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볼 때에도, 단 한 사람만은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면서 같이 걸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슴 시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말을 한참이나 에둘러 하고 말았지만, 쉽게 말해 나와 ‘꿈같은 사랑’을 나눌 동반자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랑 안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울 것 같고, 한없이 아름다울 것 같은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우-

 

누구에게나 삶은 잘 닦여진 포도(鋪道)가 아니고, 서덜길이다. 그 길을 가다보면 돌부리에 채이고, 발을 물에 적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꿈이 있지 않은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라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고단함에 좌절하지 않고, 힘을 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희망만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것은 삶이 편안해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삶은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지만, 언제나 가파른 돌계단이고, 언제나 가시밭길이다. 진정한 행복은 그 돌계단을, 그 가시밭길을 같이 갈 동반자의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노래는 삶의 고단함과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노래하고 있지만, 축 처지지 않고 맑아서 좋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사노라면’과 ‘살다보면’을 비교해 보라.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은가? 나는 이 산뜻한 느낌이 ‘살’의 ‘ㄹ’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한다. 설측음 ‘ㄹ’이 갖는 긴장감과 산뜻함이 이 노래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렇다. 우리말에는 외형상 유음(流音)이 하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둘이다. 즉 유음 ‘ㄹ’은 때로 설측음[l]로도 발음되고 설전음[r]로도 발음된다. ‘살다’의 ‘ㄹ’은 설측음이고, ‘사노라면’의 ‘ㄹ’은 설전음이다.

 

설전음과 설측음은 유음이라는 점에서 한가지이지만, 그 느낌이 다르다. 하나는 ‘서 있는’ 무엇을 연상케 하고, 다른 하나는 ‘구르는’ 무엇을 연상케 한다. 이 노래는 이 설측음과 설전음의 주기적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분도 한번 꼼꼼하게 따져 보라. 너무나 절묘하게 두 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변주된다. 다음 노랫말을 살펴보자.

 

 

“㉠살다보면하루하루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모두 유음 ‘ㄹ’이 등장하지만, 그 양상은 각기 다르다. ㉠에서는 설측음으로, ㉡에서는 설전음으로, ㉢에서는 애초의 설측음이 설전음으로 바뀌고 있다. 삶이 그런 것이다. 산다는 것은 설측음의 긴장감으로 홀로 서는 일이다. 그런데 삶은 어떤가? 하루하루가 홍진(紅塵) 속에서 뒹구는 일이다. 고달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설전음으로 살 수 있지만, 고독하게 홀로 서서 설측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든 것’이다.

 

 

이 노래는 이러한 설측음과 설전음의 주기적 반복과 변주를 통해 말하고 있다. 삶은 넘어져 구르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그런 것이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그러니 좌절하지 말라고. 다시 일어서라고. 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누군가 실의에 빠져 힘들면 서로 보듬어서 일으켜 주며, 의연히 살아가라고.

 

 

 

권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