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들

바보의 계보

국어의 시작과 끝 2012. 3. 8. 20:09

 

 
"송의 한 젊은이가 남을 따라하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원샷으로 술잔을 비우자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따라했다가 낭패를 봤다.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중국에서 바보(愚人)의 기원은 상당 부분 송(宋)과 기(杞) 두 나라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싹이 빨리 크라고 손으로 쑥쑥 뽑아 주거나(助長) 영악한 토끼의 불행을 고대한(守株待兎) 멍청한 농부,벌거벗고 문신하고 사는 나라에 갓을 팔러 간 장보(章甫) 장수는 모두 송인이고, 행여나 하늘과 땅이 꺼질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기우(杞憂)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기의 주민이었다.

물론 흐르는 강물에 빠진 검을 찾겠다고 배에다 표시를 해 둔 미련한 초(楚)인이나, 제 발로 신발가게 가면서 발본을 집에 두고 왔다며 되돌아간 차치리(且置履) 같은 정(鄭)인도 있다. 하지만 유독 송인과 기인이 회자된 것은 그들이 다름아닌 망국의 유민이기 때문이었다. 나라 없는 백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같은 바보라도 장자(莊子)에 오면 약간 심각한 유형으로 등장한다. 정작 자신이 바보이면서 남더러 함부로 바보라 하는(愚人而謂人爲愚者), 지적 능력에 이상이 있는 바보(癡)이다.

"사성기(士成綺)가 노자를 만났다. '나는 당신이 성인(聖人)이라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마다 않고 왔는데,만나 보니 아닙니다. 어질지도 못하고 욕심만 많군요. ' 노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사성기가 다시 왔다.

'어제는 제가 선생님을 헐뜯었는데 오늘은 그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

'나는 그대와 다르다네.그대가 어제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소가 되고, 말이라고 했다면 말이 되었을 것이야(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呼我馬也而謂之馬).그대가 그렇게 부른 곡절이 반드시 있어서 그랬을 터인데, 내가 거기에 아니라고 한다면 더 큰 화를 받을 것이 아닌가. 난 그저 무심히 받아들인 것이지, 꼭 그대 말이 옳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네.'

사성기는 그제서야 노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가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가 말했다.

'그대는 겉으로 인의를 가장하고 교만함이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사나운데,이런 태도는 모두 믿을 수 없는 것들이네.일찍이 어떤 곳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그 이름이 도둑놈이었다지(凡以爲不信.邊竟有人焉,其名爲竊).'"―<외편 천도(天道)>

어리숙한 바보처럼 비쳤던 노자가 마침내 거들먹대는 사성기에게 일갈하는 장면이다. 미련하지만 그 우직함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해 온 낭만적인 바보가 이쯤 와서는 사람들에게 해를 주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옛날에는 어리석다고 하면 곧아서 융통성이 없음을 말했는데,지금은 어리석다는 것이 거짓만 일삼는 것을 이를 따름이다(古之愚也直,今之愚也詐而已矣)." ―<논어 양화(陽貨)>

그래서 공자도 이런 세태를 개탄해 마지않았는데, 자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승의 입을 빌려 진짜 바보 3대 유형을 적시하기에 이르렀다.

"어리석으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비루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사람,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옛날 방식만 고집하는 사람,이런 사람은 그 몸에 재앙이 미칠 것이다(愚而好自用,賤而好自專,生乎今之世 反古之道.如此者,災及其身者也)."―<중용(中庸)>

우리 사회에 우직한 바보가 화두다. 사랑과 감사를 당부하고 떠난 추기경이 남긴 바보 신드롬이 이제 힘만 믿고 설쳐 대는 영악한 세태에 질린 사람들의 희망으로 번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바보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날,하릴없이 옛날 책을 뒤적이면서 나는 과연 어떤 바보로 살 것인지 생각해 봤다.
                                                       -펌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