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청은 지난해 1월 '서예 글씨로 쓰인 석판의 많은 글자가 독립선언서 원문과 다르다'는 한 시민의 이의신청을 받고 독립기념관 자문과 종로구 문화재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0만원을 들여 석판을 교체했다. 옛 석판 위에 새 석판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새 석판은 독립선언서 원문과 다른 컴퓨터 활자체로 쓰였으며 곳곳에 오·탈자가 있다. 석판을 검토한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은 "뒷부분 공약삼장(公約三章) 등 모두 11곳 이상에 원문과는 다른 잘못 쓴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새 석판에는 공약삼장의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 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는 부분에서 ' (까 발음)'자가 빠진 '…어대지던지'로 돼있다.
- ▲ 1967년부터 탑골공원 독립선언서 석판(石板)에 새겨졌던 여초 김응현 선생의 해서체 글씨(왼쪽)와 종로구가 지난달 9일 새로 교체한 석판의 활자체 글씨(오른쪽). 새로 교체한 글씨는 독립선언서 원문과도 다른 정체불명의 컴퓨터 활자라고 서예가들 은 지적한다.
이 석판은 1967년에 처음 건립됐다가 1980년 지금과 같은 높이 2.25m, 폭 5m의 크기로 다시 세워졌다. 석판의 글씨는 '20세기 한국 최고의 서예가'로 불리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1927~2007) 선생의 작품이었다. 독립선언문을 활자체로 재현하지 않고 당대 대가의 서예 작품으로 했던 것이다.
서예계 관계자들은 "새 석판에 오류가 많다는 것도 문제지만, 여초의 작품을 교체한 것도 문화적 무지의 결과"라며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여원구 동방연서회장은 "여초의 글씨는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이체자(異體字)를 쓴 작품으로 이는 활자체와는 달리 서예에서 허용된다"며 "그걸 바꾼다면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금석문(금속이나 비석에 새긴 문자)을 교체하자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을 찾은 시민 조공훈(58)씨는 "그전 글씨는 힘과 정성이 깃든 달필이었는데 왜 이걸 굳이 지금 같은 활자체로 바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44년동안 3·1 독립선언의 현장에 서 있었던 여초의 석판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가치와 예술성을 지닌 문화유산"이라며 "이것을 정체불명의 오자투성이 활자체로 바꾼 것은 문화 말살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요즘 사람들이 누가 서예 글씨를 알아보겠느냐"며 "문화재 지정이 안 돼 있어 문화적 가치도 적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세기 최고의 한국 서예가'로 손꼽히는 인물. 형인 일중 김충현, 백아 김창현씨와 함께 형제 서예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해서·행서·초서·예서·전서 같은 모든 서체들을 연습해 그 정화(精華)를 흡수한 뒤 마음과 손의 조화를 이룬 작품세계를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94년 출간한 10권 분량의 서예 교본 '동방서범(東方書範)'에서 동양 서법의 대표적인 문헌·금석문 중 글자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을 골라 직접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