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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의 영언(영언십이장) 상세 해설 및 분석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3. 25. 08:26

 

<영언>

-신지(申墀)

 

 

 

12785

 

 

 

청계상  반구정에 극목소쇄(極目瀟灑) 풍경일다

무심한 백구(白鷗)들은 자거자래(自去自來) 무삼일고

백구야 나지 마라 네 벗인 줄 모를소냐.

-제1수-

 

 

 

백로주(白鷺洲) 도라 드러 반구정을 돌나 가니

장연(長煙) 일공(一空)한데 호월(晧月)은 천리로다

아희야 풍광이 이러하니 아니 놀고 엇지하리.

-제2수-

 

<제2수 본문해설>

 

백로가 노니는 모래사장을 돌아 들어와서 반구정(경북 문경의 정자 이름)으로 돌아 나가니 / 구름은 하나 없고 맑고 밝은 달은 천 리로구나./ 아이야 풍광이 이러하니 아니 놀고 어이하리.

 

 

* 주(洲) : 흘러내려온 흙이나 모래가 두두룩하게 쌓여서 물위로 나타난 땅(섬)

* 장연(長煙) : ① 가로 길게 흐르는 연기(煙氣) ②또는, 그런 구름

* 일공(一空) : 텅 비어 아무 것도 없음

* 호월(晧月) : 썩 맑고 밝은 달

 

[참고] 신지(1706-1780)는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고, 말년에 시골에 내려와서 (현재는 경북 문경에 속하는 곳에)  반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냈음.

 

 

* EBS 교재(50쪽)의 경우 중장을 “긴 연기는 하늘 가득하고 흰 달은 천리로다.”로 풀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종장을 고려할 때, 어떤 경우든 풍경이 맑고 아름답다고 해야 문맥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긴 연기 하늘 가득하다”라고 해 버리면 문맥이 어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원문의 '일공(一空)'은 비어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 작품 원문을 보실 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고어는 입력이 안되어, 불가피하게 원문과 조금 다릅니다.

 

구버난 천심녹수(千尋綠水) 앙대(仰對)하니 만척단애(萬尺斷崖)

단애(丹崖)에 홍화발(紅花發)이오 녹수(綠水)에 백구비(白鷗飛)라

홍화발(紅花發) 백구비(白鷗飛)하니 한흥(閑興) 게워 하노라.

-제3수-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구로(鷗鷺)로 벗을 삼아

팔 볘고 물 마시고 반구정(伴鷗亭)에 누어시니

세상의 부귀공명은 헌 신인가 하노라.

-제6수-

 

 

<제6수 본문 해설>

고요한 산수의 경치(景致) 즉 자연을 집을 삼고, 갈매기와 해오라기로 벗을 삼아,/ 팔 베고 물 마시고 반구정에 누워 있으니/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공명은 헌 신짝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노라.

 

 

* 특별히 어렵거나 해석상의 논란이 될 만한 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EBS 교재에서 중장의 ‘누어시니’를 ‘누었으니’로 다듬은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결국 현대 국어 맞춤법에 맞게 다듬은 셈인데, ‘눕다’는 ‘ㅂ불규칙용언’으로서 어느 경우에도 ‘누었으니’로는 활용을 하지 않습니다. ‘눕는, 누운, 눕던, 누웠던, 누울’과 같이 활용을 합니다. 따라서 ‘누웠으니’라고 해야 옳습니다. 중학생도 잘 안 틀리는 기초적인 실수를 범했군요.(아니, 이 정도는 초등학교 받아쓰기 수준입니다.) 더구나 다음 연에서는 ‘누어시니’를 ‘누웠으니’라고 다듬었습니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습니다. 도대체 맞춤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지 없는지 한심한 수준입니다. [참고- 똥을 누다. 이 경우는 '누었으니'로 활용을 합니다.]

 

물론 강사가 이를 눈치채고 수정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수강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적으로 강사와 교재를 믿어버리면 수능에서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작년에 그런 학생들 많습니다) 따라서 EBS 강사의 해설은 하나의 참고용 정도로 보면 좋습니다. 제 눈에는 거의 '봉숭아학당' 코미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수능특강 전반부만 분석한 상태인데, 후반부 코미디가 기대됩니다. 자신이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정말 의욕 넘치게 떠드는 강의, 이게 진정한 코미디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요즘 '나는 가수다'를 즐겨 봤는데, 시들해졌습니다. 그를 대신할 고급(?) 코미디[한마디로 종합 예술이죠. 집필자, 강사, 편집자, 검토자가 힘을 합한] 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쩝------

 

 

좀 더 정확한 공부는 여러 참고 자료를 활용하여 다시 하는 것이 좋습니다. EBS 교재나 강의를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전적으로 믿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실제 수능은 교육방송의 교재나 강의를 참고하지만, 그리고 반영하겠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습니다.(제가 아는 선에서도 학교 현장에 참으로 유능한 분이 정말 많습니다. 학원가에는 없진 않지만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제가 많은 집필을 한 편인데요. 공저가 많지만 200여권 썼으니까요. 교과서도 5종이나 합격했고요. 100%로 합격입니다. 그런데 같이 공동작업하면서 대학 교수 이상의 식견에 감동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작년 올해 교육방송 저자들이나 강사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라고나 할까. 물론 제 주관이 다소 반영된 판단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의문이 나면 반드시 선생님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인적적(人寂寂) 야심심(夜深深)한데 반구정에 누어시니

천심(天心)에 월도(月到)하고 수면에 풍래(風來)한다.

아마도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를 어든 이 나뿐인가 하노라

-제8수-

<제8수 본문 해설>

인적은 드물고 밤은 깊은데 반구정에 누웠으니/ 달은 하늘 가운데 떠 있고, 물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맑음의 뜻을 얻은 사람은 나뿐인가 하노라.

 

 

* 역시 특별히 어렵거나 해석상의 논란이 될 만한 구절은 없습니다. 이 연은 창의적인 내용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매우 잘 알려진 소강절(邵康節)의 <쳥야음(淸夜吟)>을 번역하는 수준입니다.

 

 

“ 月到天心處 (월도천심처)

- 달이 천심에 이른 곳,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 바람이 수면에 올 때,

 

 

一般淸意味 (일반청의미)

- 일반의 청량한 기분의 멋을

 

 

料得少人知 (요득소인지)

- 아는 이 적음을 헤아려 알았노라.”

 

 

에고, 역시 EBS 교재는 아주 기초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군요. 이 연은 제9수가 아니고 제8수입니다.

 

 

* 주관적인 판단이겠습니다만, 이담명의 연시조도 그렇지만, 신지의 연시조 역시 문학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고등학생들에게 읽힐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전문 해설을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필요하신 분이 있으면 올려 드리겠습니다.

 

 

 

 

[참고] 소옹 [邵雍, 1011~1077] :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 ·시인.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을 만들었다. 그는 음(陰) ·양(陽) ·강(剛)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倍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호 안락선생(安樂先生). 자 요부(堯夫). 시호 강절(康節). 소강절(邵康節)이라 불릴 때도 많다. 허난[河南]에서 살았으며, 주염계(周濂溪)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이지재(李之才)로부터 도서 ·천문(天文) ·역수(易數)를 배워 인종(仁宗)의 가우연간(嘉祐年間:1056∼1063)에는 장작감주부(將作監主簿)로 추대받았으나 사양하고, 일생을 뤄양[洛陽]에 숨어 살았다.

 

사마 광(司馬光) 등의 구법당(舊法黨)과 친교하면서 시정(市井)의 학자로서 평생을 마쳤다. 남송(南宋)의 주자(朱子)는 주염계,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과 함께 강절을 도학(道學)의 중심인물로 간주하였으며, 강절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을 만들었다. 즉, 역(易)이 음과 양의 2원(二元)으로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있음에 대하여, 그는 음(陰) ·양(陽) ·강(剛)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倍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이 철학은 독일의 G.W.F.라이프니츠의 2치논리(二値論理)에 힌트를 주었다고 전한다. 그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62편을 저작하여 천지간 모든 현상의 전개를 수리로서 해석하고 그 장래를 예시하였으며, 또 《관물내외편(觀物內外編)》 2편에서 허심(虛心), 내성(內省)의 도덕수양법을 설명하였다. 또한 자유로운 시체(詩體)의 시집(詩集)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20권)의 작품이 있고, 《어초문답(漁樵問答)》(1권) 등이 있어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 그리고 기초적인 내용입니다만, '영언'은  "길게 끌면서 하는 말이라는 뜻으로, 시와 노래를 이르는 말."로 대개 시조를 말합니다.

 

문제 및 강의 분석은 이제 하기도 싫은 수준입니다. 시쳇말로 문제 해설 강의마다 ‘왕짜증’이거든요. 제 블로그를 보고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후배가 전화를 해서 한 말입니다. “선배님, 저는 벌써 포기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도 직업병인지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 이 미친 의무감(?)에 이번에도 한 문제만 보충 설명을 해 드릴게요. (아 참, 제가 후배에게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전국민의 우민화(愚民化)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라고 좀 거창하게 말하고 같이 한참 웃었습니다.)

 

3번 문항 해설입니다. 이런 작품을 우리는 흔히 강호가도(江湖歌道)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조윤제 선생이 쓴 말입니다. 사전의 해설은 이렇습니다.

 

“시가문학에서는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대부들이 창작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현상을 조윤제(趙潤濟)는 강호가도로 규정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 형성 원인을 찾았다. 사화와 당쟁의 와중에서 벼슬길로 나서 자칫 거기에 휩쓸려 일신과 가문을 위기로 몰고 가기보다는 고향의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유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향리에서도 토지나 명망을 기초로 한 독점적 지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예찬하는 강호가도의 구현은 도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학관 ·세계관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영남출신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현보(李賢輔)를 꼽을 수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으로서는 비교적 일찍 환로에 나서서 경상감사 ·형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줄곧 자연으로 귀의할 것을 꿈꾸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그 기쁨을 《농암가(聾巖歌)》와 같은 시조로 노래하였다.

그 후 이황(李滉)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권호문(權好文)을 비롯한 퇴계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벼슬을 사직한 치사한객(致仕閑客)이 그 유유자적한 심정을 자연에 담아 노래한 작품들도 강호가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강호자연마저도 군주의 통치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보의 《농암가》와는 차이가 있다.”

 

 

신지의 경우는 좀 다르기는 합니다. 과거에서 결국 낙방만 하고 마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큰 흐름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위의 사전 설명에서 “그 후 이황(李滉)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시조가 그런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제8수(교재에는 제9수라고 되어 있는)의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감상해야 합니다. 자연의 풍류도 즐기고, 한적한 가운데 독서도 하고, 뭐 그런 내용인 것입니다. 바로 이 연에 그런 내용 모두가 적시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전체적인 흐름을 왜곡하면 안됩니다. 연시조거든요. 그럼에도 교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강의도 마찬가지. “ ‘적적하고;, ’깊고깊고‘는 자연의 조용한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함이지, 학문과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여건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라고.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하는 문장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이런 식의 해설을 해야 하는지 크게 의문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자연의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그것을 풍류라고 하지 않나요.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참 이상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 원래 글을 EBS 대표와의 대화 게시판에 올려왔으나, 대표님 체면도 있고 해서 여기 올립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고민 중입니다. 사실 제가 바라는 것은 즉각적인 강의 및 교재 재검토와 수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제일 중요하죠. 많은 수험생들을 위해서. 저(전 따뜻한 남쪽 출신이나 서울에 일찍 유학을 왔습니다)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 봐서, 교육방송의 소중함을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저급한 강의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아닙니까?   전국의 수많은 특히 어려운 가정 형편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닙니까?

 

저는 대학 다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잘 가르치는 것 참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잘 알고 가르쳐야지,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죄악이다. 물론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달았으면 즉시 그리고 반드시 수정해서 다시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거짓으로 은폐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넘어가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러려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일을 하도록 해라.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현재의 교육방송 수능특강 언어영역 강의는 태반이 재촬영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뭘 잘못 가르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지요. 지금의 강의는 부실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입니다. 가소로워서 웃음밖에 안 나오는 오류 투성이의 강의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마음이 안 좋기는 참 안 좋습니다.     

 

* 이 글을 올린 이후 여러 수험생의 요청에 따라, 영언십이장 전문을 해설한 자료를 다른 게시글에 올렸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어 입력이 안 되어, 이미지 파일로 올렸습니다. 잘 안 보이면 화면 확대해서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