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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와 언덕빼기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1. 20. 06:34

 

[1] 조사 ‘밖에’

 

"돈이 천 원밖에 없다."의 '밖에'와 "대문 밖에 누가 왔다."의 '밖에'의 띄어쓰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답변 : "돈이 천 원밖에 없다."의 '밖에'는 앞말에 붙여 쓰지만 "대문 밖에 누가 왔다."의 '밖에'는 앞말과 띄어 씁니다. '밖에'는 조사인 '밖에'가 있고 명사 '밖[外]'에 조사 '에'가 결합한 '밖에'가 있습니다. 물론 조사일 경우에는 앞말에 붙여 쓰고 명사일 경우에는 앞말과 띄어 씁니다.

그런데 이 둘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 조사 '밖에'를 '외에'와 동일하게 생각하여 띄어 쓰는 일이 많습니다.

(1) ㄱ. 그 밖에는 아무도 없다.

ㄴ. 철수는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야.

즉, '그 밖에는'은 '그 외에는', '돈 밖에'는 '돈 외에'는과 동일하게 생각하여 '밖에'를 앞말과 띄어 쓰는 것인데 이때의 '밖에'는 조사이므로 띄어 쓸 수가 없습니다.

조사 '밖에'와 명사 '밖에'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단어의 의미에 의존하기보다는 조사 '밖에'가 쓰일 때는 서술어가 부정을 나타내는 말들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2) ㄱ. 가진 돈이 천 원밖에 없어.

ㄴ. 철수는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야.

ㄷ. 이 일은 영수밖에 못해.

조사 '밖에'는 '없다', '모르다', '못하다'와 같은 부정을 뜻하는 말과 어울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명사 '밖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밖에'의 띄어쓰기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3) ㄱ. 생명체가 사는 곳이 지구밖에 없을까?

ㄴ. 우주 밖에 가 본 사람이 있을까?

다만 아래와 같은 경우 명사 '밖에' 뒤에도 부정을 나타내는 말이 오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는 긍정을 나타내는 말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조사 '밖에'와는 다릅니다.

(3) ㄱ. 누구 밖에 없어? ㄴ. 누구 밖에 있어?

조사 '밖에'는 '있다'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4) ㄱ. 가진 돈이 천 원밖에 없어.

ㄴ.*가진 돈이 천 원밖에 있어.

 

 

 

[2] ‘도록’과 ‘토록’

‘평생토록’인지 ‘평생도록’인지 또 ‘그도록’인지 ‘그토록’인지 그리고 ‘연구하도록’인지 ‘언구토록’인지 등등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한글맞춤법 제40항에 제시된 ‘연구토록’예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도록’은 어미이고, ‘토록’은 보조사입니다. 먼저 ‘토록’은 앞말이 나타내는 정도나 수량에 다 차기까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보통은 '평생', '종일', '영원' 등과 같은 일부 체언에 붙어 나타납니다. (예) 그는 평생토록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았다./중국에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가?/그들은 종일토록 일하였다./우리는 영원토록 함께하기로 했다.

한편 '-도록'은 어미이므로 동사 어간이나 일부 형용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나타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명사인 '열흘', '평생' 뒤에는 어미 '-도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 가도록 하다. 죽도록 공부했다. 좁도록, 드시도록 했다. 계시도록 했다.

 

 

[3] 한번

‘번’이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한 번’, ‘두 번’, ‘세 번’과 같이 띄어 쓴다. ‘한번’을 ‘두 번’, ‘세 번’으로 바꾸어 뜻이 통하면 ‘한 번’으로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한번’으로 붙여 쓴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라는 문장에서 ‘한번’을 ‘두 번’으로 바꾸면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한번’을 붙여 쓰지만, “한 번 실패하더라도 두 번, 세 번 다시 도전하자.”라는 문장에서 ‘한 번’은 ‘두 번’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므로 ‘한 번’으로 띄어 쓴다.

 

 

[4] 있으매

어미 '-으매'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연결어미로서 "나라가 있으매 우리가 있다."나 "물이 깊으매 고기가 모이고 덕이 높으매 사람이 따른다."처럼 쓰입니다.

'-으매'를 '-음에'로 잘못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애'와 '에'의 발음을 잘 분간하지 못하고 부사격조사 '에'도 "바람에 쓰러진 나무"나 "빗소리에 잠을 깨다."처럼 원인을 나타내는 용법을 가지는 데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때 부사격조사 '에'가 보이는 원인의 용법은 '-으매'가 보이는 이유의 용법과 같지 않으며, 또 원인의 용법으로 쓰이는 '에'는 그 앞말로 문장이 오지 못하고 명사구만 올 수 있는 데 비해 연결어미 '-으매'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가 결합하여 앞말이 문장임이 분명한 "비가 왔으매 강물이 불었으리라."와 같은 표현은 "비가 왔음에 강물이 불었으리라."처럼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라는 표현도 '그대 있으매'로 고쳐 써서 엉뚱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5] ‘배기’와 ‘빼기’

한글 맞춤법은 단어를 적을 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형태를 밝혀 적어야 할 때에는 형태를 고려한 표기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배기’와 ‘-빼기’의 경우는 소리가 [배기]로 나는 경우 ‘-배기’로 적습니다. 따라서 ‘한 살배기’, ‘공짜배기’, ‘진짜배기’로 씁니다.

다만, 소리가 [빼기]로 나는 경우는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표기를 정하였는데, [빼기]로 소리 나는 것의 앞 말이 형태를 밝힐 수 있는 것인 경우 ‘-빼기’로 적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배기’로 적습니다. ‘곱빼기’, ‘코빼기’, ‘이마빼기’, ‘얼룩빼기’의 경우는 소리가 [빼기]로 나는데 앞 말인 ‘곱’, ‘코’, ‘이마’, ‘얼룩’이 형태를 밝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빼기’로 적습니다.

반면, ‘뚝배기’의 경우는 [빼기]로 소리가 나지만 ‘뚝’이 ‘뚝배기’라는 단어에서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배기’로 적어 ‘뚝배기’라는 표기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언덕배기’의 경우는 위의 설명과 배치되는 예인데, ‘언덕빼기’를 버리고 ‘언덕배기’를 표준어로 인정하게 된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여기에 포함된 ‘-배기’의 의미가 위의 접미사 ‘-배기/-빼기’의 의미와 다르다고 보았거나, 복수 표준어인 ‘언덕바지’의 ‘-바지’와 형태적으로 유연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 단어의 경우는 1994년 국어심의회에서 ‘언덕빼기’를 버리고 ‘언덕배기’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배기’는 형태소 분석에서 ‘알-배기’가 아니라 ‘알배-기’이기 때문에 앞선 논의에 포함될 수 없는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