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므로’와 ‘-(으)니’] 에 대하여
요즘 문장 다듬기 파트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시중 기출 문제 해설서를 보니 어처구니없는 해설이 난무하는군요.
멀쩡한 조사를 접미사라고 하지를 않나, 멀쩡한 명사절을 두고 관형사절이라고 하지를 않나 등등.
너무 어이없는 것은 좀 그렇고, 좀 맛있는(?) 예를 하나 소개합니다.
2006년 국가직 9급 기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 사람들이 위험한 건물에서 대피해야 하므로 혼란이 예상됩니다. 이 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경찰의 협조를 얻어 치안 유지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발문] 다음은 재난 상황에 직면한 공무원이 방송한 내용이다. 어법에 맞고 의미가 분명한 것은?
[‘-(으)므로’와 ‘-(으)니’] ㉩은 어법에 맞지 않고,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문장의 예로 제시된 문장이다. 우선 앞 문장의 ‘-므로’는 적절하다. ‘-므로’는 이유를 나타내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같은 까닭으로 뒤 문장의 ‘있으므로’도 무방하지만, ‘-(으)니’를 쓰면 좀 더 구어적인 표현(←발문 고려)에 가까워진다. ‘-므로’는 대체로 문어적 표현에 가깝다. 물론 ‘하므로’도 구어체로 바꾸면 ‘대피해야 해서’가 된다.
그런데 ‘대피하다’는 ‘안전한 곳에 대피해’ 또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처럼 쓰인다. 즉 ‘대피하다’ 앞에는 ‘~에’ 또는 ‘~(으)로’가 온다. ‘待避’가 ‘위험이나 피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待) 잠시 避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의 ‘위험한 건물에서 대피해야’는 어법에 어긋나기도 하고 의미도 불분명한 표현이다. 한편 ‘혼란이 예상됩니다’의 자연스러운 어법은 ‘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이다. 또 ‘만전을 기하다’는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순화 대상어다.
→ 사람들이 안전한 건물로 대피해야 하므로(또는 ‘대피해야 해서’) 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경찰의 협조를 얻어(또는 ‘경찰과 협조하여’) 치안 유지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가지고 있는 교재에 대부분 이 문제가 수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 해설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출제자가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다음은 재난 상황에 직면한 공무원이 방송한 내용이다."라는 문장을 발문에 왜 넣었을까에 대해서도 꼭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내용도 참고하세요.
[참고](국어의 시작과 끝) 수록 내용임
[‘-어서’와 ‘-으니(까)’]
㉠ ㄱ. 강이 깊어서 아이가 건너기는 어렵다.
ㄴ. 길이 좁아서 차가 못 지나간다.
[참고 문장] 인부들이 짐을 덜어서 다른 차에 실었다.[시간적 선후]
㉡ ㄱ. 약속을 했으니 가기 싫어도 갈 수밖에.
ㄴ. 그렇게 음식을 마구 먹으니까 배탈이 나지.
‘어서(또는 아서)’는 시간적 선후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처럼 선행절과 후행절의 주어가 다를 때 또는 선행절의 서술어가 형용사일 때 그리고 선행절이 부정문일 때는 대체로 인과 관계를 나타낸다. ‘-으니(또는 ‘-니, -(으)니까’)도 인과 관계를 나타낸다. ‘-어서’가 주로 신정보를 이끄는 것과 달리, ‘-으니까’는 주로 구정보를 이끄는 특징이 있다.
㉢ ㄱ. 어제는 몸이 아프니까 학교를 결석했다.
→ 어제는 몸이 아파서 학교를 결석했다.
ㄴ. 네가 형이어서 동생한테 양보해라.
→ 네가 형이니까 동생한테 양보해라.
두 부사형 내포어미의 차이는 아주 미묘하다. 우선 ‘-어서’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원인: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를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반면 ‘-으니까’는 주관적인 인과 관계(=이유: 상황에 따른 주관적 근거)를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즉 ㄱ의 경우 몸이 아프다는 것은 학교에 결석하는 원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미로 ‘-어서’를 써야 한다. 반면 ㄴ의 경우 형이라는 것이 동생에게 양보하는 이유는 될 수 있어도 원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미로 ‘-으니까’를 써야 한다.